긴 논둑길이었다. 그의 등이 보이고, 동생들도 있었을까. 양쪽 옆은 논이었으니 길 자체가 좁은 폭이었을 텐데, 그 한 가운데서 나는 고집스레 울고 있었고, 행여나 뒤돌아볼까 기대하던 그는 그냥 내처 앞만 보고 걸어가고 있었다. 울면서 쫓아갔던가, 아님 기억에는 없지만 그가 돌아섰을까. 집으로 돌아가긴 했으니 둘 중 하나가 고집을 꺾긴 했겠지. 집에서 가까운 장소였어서, 혼자 울다울다 집으로 찾아들어갔을 수도.
되짚어 보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오래된 기억인데 딱 저 장면만 남아있다. 왜 울었는지,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고, 그가 나를 내버려두고 냉정하게 돌아서서 굳세게 걸어가던 뒷모습으로만 이따금 떠오르곤 했다.
아기 때 그렇게 우는 아이였다던가. 뭐가 그렇게 못마땅했는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 총각 시절에 잠시 같이 살던 작은 아버지가 그만 울라며 아이에게 손찌검을 해도 더 크게 울면 울었지 소용이 없었다던가. 버스 안에서 울음이 잡혀 내내 울기만 해서 결국 아부지가 버스 종점에 아이를 버려두었는데 주저앉지는 않고 따라 걸으면서 계속 울더라고 얘기해준 사람은 그였다. 그렇게 울던 아이가 울음을 뚝 그쳐 버린 게 언제쯤부터였을까. 저 논둑길 이후 내 기억 속에 우는 모습의 나는 없었다.
딸도 만만치 않게 우는 아기였다. 울기도 많이 했지만 웃기도 잘 웃는 아기였던 딸은 주로 엄마에게서 떨어트려 놓으면 울기 시작해 안아 올려주기 전까지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지만 일단 품에 안으면 포옥 안기면서 언제 울었느냐는 듯 울기를 그만두었다. 내가 들었던 나의 아기 때 모습과 이게 가장 다르구나, 아이가 울다가도 젖을 물리면 울음을 뚝 그치고 젖을 쭉쭉 먹다가 금세 곯아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한 번 울음이 잡히면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어 결국 본인이 지칠 때까지 울고 나서야 그치는 아이를 본 적이 있다. 아마도 딸보다 나는 그 아이 같았겠다 싶었던. 결혼하자마자 1년이 채 안 되어 태어난, 울고 울고 울고 또 우는 딸을 보살펴야 했던, 여러 모로 힘겹고 어렵고 낯선 환경에서 그야말로 살아남기에도 버거웠을 이십 대의 그는 자신이 낳았지만 뜻대로 보살펴지지 않는 첫딸이 울 때마다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