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52

by 포근한 바람

오늘처럼 달이 그야말로 눈썹처럼 선명하고 가느다란 곡선으로 뜨는 날이면 그린 듯이 까맸던 그의 눈썹이 떠오른다. 아부지는 짙고 굵은 눈썹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진 속 할아버지 눈썹을 점점 닮아가고 있다. 사진 속의 할아버지 눈썹은 굵고 희끗하면서 끝이 길게 나 아래로 쳐진 모양을 하고 있었다. 저 눈썹은 계속 길게 자라 그림책에 나오는 신선처럼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할 만한 생김새였다.


그의 눈썹을 가장 많이 닮은 자식이 나다. 어릴 때는 빼박은 듯이 그의 눈썹과 비슷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눈썹의 중간 부분을 기준으로 앞쪽은 진하고 가느다란 그의 눈썹 그대로인데 뒷부분은 흐릿하고 넓직하게 퍼진 모양새가 점점 아부지 눈썹을 닮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가 입술만 붉게 칠하고도 화장을 한 듯이 보인 데에는 날렵한 갈매기처럼 생긴 눈썹이 한 몫을 했다.


일찍부터 머리가 세서 염색을 하지 않으면 온통 새하얗던 머리카락과는 달리 눈썹은 돌아가실 때까지 까만색의 기운찬 갈매기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아프기도 하고 피부에 맞지도 않아 아예 염색을 하지 않았던 마지막 몇 년 동안엔 눈썹은 새까맣고 머리만 하얀 모습이 독특해 보이기도 했다. 외모 참견이 많은 한국 아짐들의 문화 속에서 아직 칠십도 안 된 그가 머리를 하얗게 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하는 바람에 스트레스 깨나 받기도 했다.


그는 육십 초반에 뇌경색으로 인한 일시적인 시력 상실을 겪은 일이 있다. 고혈압을 오래 앓고 있었고, 그로 인한 뇌 관련 질환을 늘 염려하던 중에 갑자기 눈이 안 보여서 온 가족이 깜짝 놀랐던 날. 전화로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아직 직접 확인한 게 아니어서 덤덤한 마음이었는데, 남편에게 전화를 하면서 엄마가 갑자기 눈이 안 보인대, 라고 말하는 순간 눈물이 왈칵 터졌다.


그에 대한 소식에 덤덤한 반응이 자연스럽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내 안에 냉담하지만은 않은 엄마에 대한 다른 맘이 있었구나 알게 된 날이기도 했다. 응급실에 가서 처치를 받고 다행히 그는 다시 시력을 찾았으나, 그 후로 내내 그의 눈썹과 그의 일시적 실명은 내게 같은 강도의 기억으로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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