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닐 때는 짙은 립스틱을 사서 발라보기도 하고 선물 받은 아이섀도우로 이렇게 저렇게 눈화장을 하기도 했다. 귀를 뚫지는 않았지만 요즘에 귀찌라고 말하는 형태의 귀걸이를 하고 다니기도 했고, 하이힐이나 미니스커트를 입어보기도 했는데 보통 20대 여성들이 하는 이런저런 외모에 대한 시도를, 대학 졸업 무렵부터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얼굴을 포함해서 몸에 누가 무엇을 뒤섞어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화학제품을 사용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강해지고, 여성의 화장을 '예의'라고까지 말하는 데 대한 반감이 더해져 오히려 얼굴이 트지 않게 보호하는 정도로 화장품을 사용하는 일 외에는 화장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소위 풀메이크업이라는, 가장 짙은 화장을 해본 것은 그래서 장소 대여를 하면서 묶음으로 할 수밖에 없었던 신부화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안색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그는 나에게 이따금 화장 좀 하지, 이미 나의 생각이 명확해져서 귓등으로도 안 듣는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스무 살 중반 무렵부터 지금까지 화장을 하지 않는 이유를 부드러운 수준부터 상대방이 더 이상 화장에 대해 두 번 다시 꺼내지 못하도록 입을 막을 수 있는 수준까지 말할 수 있는 건 순전히 나 혼자 생각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남 보기 좋을 정도로는 화장을 하라고 말하곤 했던 그가 했던 화장이란 게 사실은 스킨, 로션에 이따금 영양크림을 바른 후 빨간 립스틱으로 입술을 강조하는 정도였어서, 그런 모습만 보고 자라 화장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요즘 들곤 한다. 엄마의 영향이 컸다고만 하기에는 여동생은 또 최소한 그가 했던 정도의 화장은 하기도 하고 나보다 훨씬 멋 부리는 데 관심을 많이 갖곤 했으니 내 성향도 작용을 했던 것이긴 하겠으나.
한동안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화장을 포함해 외모를 가꾸는 것을 가부장 문화가 강요하는 '꾸밈노동'이니 거부해야 한다는 생각과 이미 너무 일찍부터 외모를 가꾸는 습관에 길들여져 맨 얼굴로 바깥에 나서는 일이 매우 어색한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딸들에게는 꾸미고 다니라면서 정작 자신은 립스틱 바르는 것으로 화장을 다 했다고 여긴 외할머니와 자신이 태어난 후 거의 화장을 하지 않은 엄마를 둔 이십 대 딸은 아직까지 화장에 통 관심이 없다. 나를 닮은 것일까, 딸 역시나 보고 자란 엄마의 생활방식과 자신의 기질이 적절히 섞여서 지금 같은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따금 재밌어하며 생각해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