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가득한 기계에다, 막대에(소시지가 끼워져 있었을까?) 밀가루를 휘휘 감아 푸욱 담가서 핫도그를 만들어내는 엄마. 조금 떨어진 거리의 방안에 기운 없이 누워있는 아부지가 준 동전을 쥐고 엄마에게 달려가 핫도그를 사 먹는 나. 그가 아주 짧은 시기 동안 핫도그 장사를 했던 때가 내가 세 살 때였다고 들었으니 이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장면이겠다. 무기력한 아부지와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엄마의 표상처럼 떠오르기도 하는 풍경 한 토막.
버스 안에서 엄청나게 슬프게 우는 아부지. 누군가가 아빠 주라고 쥐어주는 요구르트를 아부지에게 전하는 나.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장례버스 안이었고 바로 직전의 기억이 눈을 뜬 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꼼짝 않고 누워있는 모습이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고 나는 기억하지만, 어린 아이를 시신과 혼자 두었을 리는 없으니 아마도 내게 너무 강렬한 장면이었어서 주변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일 게라고 해석한다.
내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에는 일하는 그가 있고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눈을 뜬 채 멈춰버린 시신을 지켜보고 있는 나에 대한 기억에는 엄마도 아부지도 없다. 때때로,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나름의 생각과 기준이 이 두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자라면서 내내, 엄마보다 아부지에게 마음이 쓰였던 것은, 피곤해서였는지 아파서였는지 누워있던 모습과 내 눈 앞에서 그가 가장 아프게 슬퍼했던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나마, 부모 모두에게 그다지 사랑받았다는 기억이 없는 채, 아부지에게 마음을 쓰는 만큼 엄마에게 원망이 많았던 것은, 그래도 그가 더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내게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저 두 기억 외에는 그는 언제나 전업주부였고 아부지는 늘 일하느라 부재 중인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마음 속 깊이 박힌 두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실제의 그들과 완전히 반대였어서. 아마도 저 두 기억이 그 이후의 경험을 덮어씌우기 할 만큼 나에게 강렬했던가 보다고 생각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