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물으면 불교라 말하기도 하고 말년에 불교대학에 다니고 법명까지 받았지만 어린 마음에도 그가 단지 미신을 믿는 것뿐이라고 여겨졌던 더 예전에, 그의 신앙생활이 나를 화나게 한 일이 두 번 있었다.
당시 어린 아이들이 대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어릴 때는 집 근처의 교회에 다녔다. 지금도 친정 동네에 있는 그 교회는 당시에는 교회 건물도 변변치 않아서 빈터에 블럭을 줄세워 놓고 우리를 앉으라 하고 찬송가와 무용 같은 걸 가르쳐줬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먹을 것도 줬겠지. 오라는 날 성실히 가서 노래도 배우고 찬송가에 맞춘 무용도 따라하고 주기도문도 외우며 재미있게 다녔다. 열심히, 성실히 다니는 중에 사도신경을 외우는 단계까지 갔으니 꽤 오래 다녔지 싶다.
당연 교회에서 나눠주는 성경책과 찬송가를 소중히 잘 보관하고 가지고 다녔겠지? 그런데 어느 날 그 두 책이 사라진 거다. 그때만 해도 그들이 하는 얘기들을 소신 있게 취사선택하기보다 단골 만신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았던 그는 한 집에 두 종교가 있으면 좋지 않다는, 만신들이 흔히 하는 말을 듣고 교회에서 준 성경책과 찬송가를 내다 버린 것이었다. 내 물건이랄 게 별로 없던 시기에 내 것이었던 물건을 그가 말도 없이 없애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길길이 화를 냈었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서 얼마 안 되어 그는 방문 판매로 무지개빛으로 채색된 50권짜리 '계몽사 소년소녀 동화전집'을 집에 들여놓았었다. 동네에 도서관은 당연히 없고 서점도 변변한 게 없었기 때문에 저 전집을 마르고 닳도록 읽게 되었는데 그 책 중 하나인 '성서이야기'를 읽으며 '기독교 하나님 별로'라고 이미 결론을 내렸으므로 저 사건은 표면상으로는 그와 나 사이의 종교 전쟁이었으나 실은 내 소유권을 침해한 그에 대한 저항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이따금 이 날 일을 떠올리며 혼자 웃곤 한다.
비슷한 일이 중학교 때 또 있었는데, 처음으로 장거리 여행을 다녀온 수학여행 때 탈 모양의 장식품을 사다 내 방에 걸어놓았었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직접 골라 사서 걸어놓은 소품이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좋았는데, 어느 날 이 장식품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린 거였다.
전적이 있었으므로 그에게 내 물건의 행방을 물었고, 아니나 다를까 같은 만신이었는지, 여러 번 갈아탄 점쟁이 중에 한 명이었는지 집에 와서 둘러보다가 그 탈 모양을 보더니 그것도 사람 형상이어서 귀신을 탄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내다 버리라고 했다면서, 그는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그 말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여. 이전 일을 생생히 기억하는 나로서는 남의 말에 따르느라 묻지도 않고 딸 물건을 함부로 처분해버렸다는 이유로 불같이 화를 냈었다.
그가 더 나이 들어서 경험도 쌓이고 시야도 넓어져서 만신이든 점쟁이든 찾아다니기는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겪은 일들에 견주어 들을 말은 듣고 무시할 말은 무시할 수 있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 그랬겠구나. 농사일 거들며 초등학교만 겨우 다니다가 어느 날 문득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된, 매일이 살얼음판같은 일상을 살다가 조금 안정되는 듯이 느껴져 그 안정을 더 잘 지키고 싶은 젊은 여성이 그나마 말이 통하는, 신과 가깝다는 이의 말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을 테니 그 말이 그리 중했던 게지, 그저 그에게 화났던 일들로 기억했던 저 사건들이,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떠오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