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뱃속에 있을 때, 태몽인가 싶은 엇비슷한 꿈을 두 번 꾸었다. 일명 '곡식창고꿈'이라 명명하고 이따금 딸에게 들려주는데 그러면 딸은
"그래서 내가 먹을 복이 있지."
하곤 한다. 그래 그래 웃으며 맞장구를 치지만 동시에 옛 기억이 소환되곤 한다.
꿈작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에 꿈을 드라마로 표현하는 강좌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꿈작업을 안내할 때 참가자들에게 얘기하는 경험인데, 한국인이라면 누가 들어도 태몽이라 할만한 꿈에도 실은 태어날 아이에 대한 어떤 계시보다는 꿈 꾼 이의 강력한 소망과 무의식이 담겨 있단 사실을 눈 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당자가 태몽이라 여기는 꿈이 곧 태몽은 아닐 수 있다 생각하는 편이다. 한편으론 집단무의식 혹은 한 사회의 문화적 속성이 개인에게 작용하는 힘이 무시하기 어려울 강도로 작동하므로 태몽을 믿는 사회에서 태몽이 갖는 힘 또한 작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기도 한다.
만신을 찾아다니고 두어 차례 굿을 해본 경험이 있는 그는 막상 그 만신들에게
"기운이 세서 도깨비집에서도 살 수 있는 사람“
이란 소릴 듣곤 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은 못 살아도 그는 도깨비터를 깔고 앉아 살 수 있다나. 믿거나 말거나인 말이지만 기댈 데 별로 없이 자수성가하는 삶의 여정에서 저 말은 그에게 꽤 힘이 되었을 테다.
도깨비와의 관계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는 꽤 오랫동안 제법 잘 들어맞는 예지몽을 꾸곤 했다고 말하곤 했다. 자식들 태몽도 한 명 당 두 개씩 꿔서 태몽과 얼추 얽을 수 있는 일이 생기면 그때 그 태몽이 이 뜻이었던가보다 말하곤 했다. 꿈작업을 업으로 하며 사는 입장에서 예지몽이란 무시하지는 않지만 부추기지도 않는 영역이나
"이런 일 있으려고 내가 그 꿈을 꿨나보다."
하던 그의 말엔 별다른 토를 달지는 않고 잠자코 듣고만 있는 편이었다.
그런 그가 자식 셋 중 입시에서 누가 떨어지고 누가 붙을지 이미 꿈으로 알았다 했던 일이 생각난다. 여적지 별 생각 없다가 어, 역시나 예지몽이 개인의 성장에 별 무소용이라는 배움이 어긋나지 않구나 싶은 것이.
이미 알고 있었다면서도 입시 탈락해서 코가 석자나 빠진 자식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그가 먼저 자리보전하고 드러누워 버렸으니. 지켜보는 입장이었어서 더 씁쓸했던 그 날의 기억과 예지몽의 쓸모없음이 겹쳐지며 그의 그 날 그 모습이 내게는 자식에게 보이지 말아야 할 태도로 콕 박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