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44

by 포근한 바람


지금은 정찰제가 안착되어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가격 흥정할 일이 없어졌지만 우리 집에선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사면 같은 물건을 얼마나 싸게 샀느냐가 재미난 얘깃거리가 되곤 했다. 낯선 이들과 말 섞기 자체를 어려워하던 나로서는 장사로 이골이 난 상인들과 가격 흥정을 한다는 게 할 때마다 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시장의 물건은 꼭 흥정해서 사야 한단 걸 몸으로 가르쳐 준 사람은 그였다.


내가 초등학교 1, 2학년 쯤이었을 거다. 아직 한 겨울은 아니었지만 꽤 추운 어느 날 그가 막내를 업고 나와 동생을 데리고 시장에 갔다. 이것저것 물건을 사고 슬슬 피곤하고 발이 시리다 싶을 무렵 그의 눈에 막내에게 입히면 딱 좋을 유아용 외투가 들어왔으니.


그가 그 옷을 가리키며 가격을 묻는데 어린 눈에도 디자인이 고급진데다 겨울에 입으면 아주 따스하고 포근하겠다 싶었다. 막내에게 그가 입히고 싶어할 만큼. 가게 주인이 부른 가격이 그가 생각한 가격의 세 배쯤 되었던 것 같다. 아마 자릿수 하나가 더 있었지 싶다. 그는 처음엔 암말 없이 그 가게를 지나쳐 시장을 돌다가 다시 그 집으로 가서 흥정을 시작했다. 터무니없는 가격에 주인이 고개를 저었지.


그리고는 그 시장을 몇 바퀴를 더 돌았을까. 따라다니던 나와 여동생이 너무 춥고 지쳐서 이제 그만 포기하고 돌아갔으면 싶은 맘이 굴뚝같아졌을 때 그는 드디어 가게 주인으로부터 못 당하겠단 소리를 들으며 원하는 가격에 그 옷을 수중에 넣었다. 가게 주인의 하는 수 없다는 듯한 모습과 그의 만족스러워하는 얼굴과 남동생 옷에 들이는 그 정성에 대한 원망과 시린 발의 기억이 아주 오래 남았다.


명절 전이면 그는 더 먼 데 있는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으로 진출해서 가족이 입을 옷을 사오곤 하기 시작했고 그를 따라다니며 흥정하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하다가. 드디어 동생과 둘이 혹은 친구들과 남대문이나 동대문 시장으로 다니면서 다년 간 그를 보며 배운 흥정의 기술을 사용하여 늘 원하는 가격에 원하는 물건을 사곤 했으니.


일단 시장을 한 바퀴 돌며 대략의 시세를 확인한다. 마음에 드는 물건의 가격을 묻는다. 저 쪽에서 부르는 값의 절반 값을 얘기하고 상대가 손사래를 치면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뜬다. 그 값은 너무 하고 얼마를 빼주겠단 얘기가 뒤통수로 날아오면 돌아서서 내가 첨 얘기한 가격보다 살짝 높은 가격을 부른다. 그렇게 주고받다 보면 대체로 가게 주인이 불렀던 가격의 70% 쯤으로 거래가 성사된다. 서로가 만족해하며 물건과 돈과 함께 덕담도 오간다.


그렇게 해서 산 물건들에 대해 얼마 부르는 걸 얼마에 샀다고 세 모녀가 모험담처럼 주고받던 재미가 꽤 쏠쏠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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