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42

by 포근한 바람

내가 키가 커서 중앙에 섰잖아. 키가 크니까 눈에 잘 띄는 데 선생님이 세워주더라고.

동네 여성회관이나 복지관 같은 데 다니며 오카리나도 배우고 단체 운동도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가 자랑스레 자주 한 말이

"내가 키가 크잖아."

였다. 키가 커서 발표회 때가 되면 강사가 꼭 맨 앞 줄 중앙에 세우더라고. 남들 눈에 띄는 걸 안 좋아하는 속성을 지닌 두 딸들은 그의 자랑에 장단을 맞추면서도 그게 그리 대단한 일일까 하는 맘을 동시에 갖곤 했다.


농사 일이 바쁘면 늬 할머니가 학교에 못 가게 했지. 그래서 며칠 결석을 하다가 학교에 가면 시험 기간인 거야. 근데 또 점수는 잘 받는 거지. 그러면 선생님이 이렇게 잘 하는데 학교엔 왜 안 나오느냐고 오히려 야단을 쳤지.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그에게 학교란 이따금 가더라도 머리가 좋아서 확실히 존재감을 확인했던 공간이면서 동시에 그 존재감을 계속 유지하긴 어려운 곳이었을 게다. 할머니가 딸들 공부보다 농사일을 중히 여겼던 것 같고 학교와 집의 거리도 고개를 네 갠가 다섯 개를 넘어야 하는 정도였어서 혼자서는 오가기 어려웠다던가.


초등학교 때 몇 번 그것도 야단과 함께 공부 잘 한다 소리를 들은 일 외엔 살면서 남에게 인정이란 걸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가 나이 들어 세상이 달라지면서 접하게 된 작은 사회에서 '키가 크다'는 이유로 중앙에 서게 되고 앞줄에 서게 되는 일이 여러 차례 생겼으니 단지 타고난 특성일 뿐이었더라도 뒤늦게 자랑스러워할만한 장점으로 느꼈을 법도 하겠다.


그를 보내놓고 한 동안까지도 동생과 엄마의 키 얘기를 나눌 때면 약간은 흉을 잡는 느낌이 있었다. 그는 왜 키 큰 것이 그다지도 자랑스러웠을까. 내 엄마라 해도 그 삶을 다 알지 못하면서 우스개처럼 넘기다가 아하! 칠십 평생 받지 못했던 타인들의 인정이 맘에 콕 박힌 때문이었겠구나 싶어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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