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40

by 포근한 바람

아부지는 농사를 지을 줄도 모르고 동물 키우기도 잘 하지 못하면서 동물을 함께 기를 수 있는 공간에 세 들어 살기를 바라곤 했다고 한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까지 아부지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세를 들어도 꼭 짐승을 키울 수 있는 공간, 이를 테면 돼지 우리 같은 곳의 옆방을 얻더라.

고 그는 불평하듯 말하곤 했다.


아부지가 정말로 동물을 키우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였을 수도 있지만, 그 때만 해도 아이 셋이 있다 하면 집주인이 고개를 젓곤 하던 시대였으니, 돈 없고 애도 많은 부모가 셋집을 얻기 위해서는 살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기대치를 한참 낮추기는 해야 했을 게다.


우리 가족이 마지막으로 세 들어 살았던 방은, 안집은 저어 안쪽에 따로 있고 마당을 사이에 두고 길게 행랑처럼 마주본 두 채의 단층 건물에 속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부뚜막이 보이고 부뚜막 옆 문을 열면 달랑 방 한 칸인 공간.


일곱 살이었던 내 감각에 상당히 큰 집이었는데, 대문을 들어서서 긴 마당을 질러가면 안채가 있고 안채 마당에는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리게 되어 있는, 꽤 큰 우물과 펌프, 동네 아이 00과 너무너무너무 싸운다며 그가 우리 둘을 묶어 두었던 커다란 나무와 토끼장이 있었다. 우리 소유의 토끼도 그 토끼장에서 키웠는지 어쨌는지 토끼풀을 뜯어다가 토끼에게 주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 날 토끼가 죽었던가 새끼를 낳았던가, 어른들이 탕을 끓여먹었던가.


어느 한 날에는 마당에서 그야말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세 들어 살던 집에서 키우던 돼지 한 마리가 다리가 묶인 채 옆으로 누워 계속해서 울어대고 있었다. 그 돼지도 아마 주인집과 동네 어른들이 어우러져 함께 먹었지 싶은데, 그 고기를 나도 먹었을지, 그 기억은 없다.


그 셋집의 단칸방에서 막내 동생이 태어났고, 어느 날엔가 친구들과 모여서 놀던 중에 밖에 무슨 일이 있어 우르르 나오다가, 친구 중 누구 한 명에게 밀려 마침 부뚜막에서 끓고 있는 솥단지로 엎어지는 바람에 팔꿈치가 그대로 데었다. 아프다고 울며불며 소리를 질렀겠지.


뜨거운 솥뚜껑에 덴 팔을 그는 차가운 소주를 구해다가 대야에 한 가득이 되도록 붓고 팔을 담가주는 걸로 응급처치를 해주었는데, 그 후에 병원에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행히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흉터가 생기기는 했지만 자세히 보아야 알아챌 수 있는 정도의 대수롭지 않은 흔적으로 남았다.


그리고, 이후에 이따금 어딘가를 델 때마다 나는 소주를 먼저 떠올린다. 마침 소주가 있으면 그걸 먼저 그릇에 붓고 덴 부위를 푸욱 담그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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