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둘 다 농촌 출신답게 부지런했다. 아부지는 어린 시절에만 시골서 살았는데 열네 살부터 안 해본 일 없는 도시 노동자로 살아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여기저기가 아플 만큼 몸 쓰는 일이 몸에 배어있다. 스물 네 살에 결혼하면서 친정을 떠난 어머니는 농부의 일상을 살아 그런지 새벽부터 일어나 일하고 상대적으로 일찍 잠자리에 드는 편이었어서 늦게 자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자식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고는 했다.
좀 커서 방학 때였던지, 그와 오전 시간을 함께 보내는 날들이 생기면서 새벽에 일어나 오전까지 일을 마치는 대신 9시나 10시 쯤에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 꼬박꼬박 조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럼 그렇지, 일찍 일어날 뿐 잠을 적게 자는 건 아니었단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 잠이 많은 데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을 만큼 그들은 부지런히 움직이는 어른들이었다.
종일 재바르게 움직이며 무슨 일이든 잘 해내는 게 미덕이라 여기는 그가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했던 친척이 있다. 그가 평생 마음으로 가깝게 여기며 의지하던 사촌 올케. 내게는 5촌 외당숙모지만 워낙 그가 친밀하게 여겨서 사시는 동네 이름을 붙여 ㅇㅇ동 외숙모라 부르던 분. 딸은 고등학교까지만 가르쳤지만 두 아들은 소위 명문대를 보내서 그 중 큰 아들은 심지어 그 세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전문가가 되었으니. 그가 칭찬한 사람은 그 오촌 조카의 아내였다.
그의 말로는 결혼하고 시가의 전적인 지지를 받으며 공부를 더 해 박사까지 마치고 일도 하며 교수가 되었는데 시부모와 함께 사는 집으로 귀가하면 도착하자마자 몸빼 바지로 갈아입고 집안일부터 하더라는 거였다.
어른들끼리만 내왕을 해서 육촌들을 만난 지도 가물가물하니 그가 칭찬한 육촌 올케는 당연 본 일이 없다. 당사자들 결혼식에서나 봤을까. 나는 기억도 잘 안 나는 어느 훌륭한 며느님에 대한 그 칭찬을 들으며, 그러니까 나더러도 결혼해서 시집에 가면 그렇게 하란 말인가 싶어 그닥 달갑게 들리지는 않았다.
안팎이 전문직인 그 부부가 그 정도가 되기까지 그가 좋아하고 존경하던 사촌 올케가 물심양면 뒷바라지를 매우 잘 하셨다는 사실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보면, 며느리가 시집에서 그렇게 행동할 만할 정도로 시어머니도 잘 해야 한단 사실을 그도 알았던 듯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