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학이 아니었으면 그는 더 일찍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열에 시달리다 암진단을 받고 돌아가셨지만 삼십 대에도 같은 증상으로 소위 '대수술'이란 걸 받았으니. 막상 개복을 하고 보니 열의 원인인 줄 알았던 부분엔 이상이 없었다던가. 아마도 병원에서 자세한 설명을 잘 해주지 않아서인지 어떤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가 그 수술을 받았을 때와 또다른 수술을 받았을 때는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옛날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아부지가 최근에 하신 얘기로는 여하튼 두 수술 중 한 번을 받았을 때가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름시름 아팠던 그가 이 무렵 내게 밥하는 방법을 가르친 까닭이 당신의 건강과 연결되었을 수도 있겠다.
바로 밑 동생은 초등학교에 막 입학을 했을 때고 막내는 다섯 살 무렵이었어서 그가 수술받고 입원해 있는 동안 막내는 친척집에 맡겼다 한다. 아부지는 아침에 출근했다가 잠시 집에 와서 나와 동생을 학교에 보내고 퇴근 후 아내를 보러 가면 그가 혼자 남아있는 것을 무서워해서 병원에서 밤을 보냈다 한다.
그렇다는 것은 이 시기에 나와 바로 밑 동생만 집에서 밤을 보내곤 했다는 것인데 이 시기에 대한 기억이 나는 거의 없다. 내가 가족 중에 가장 기억력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세 살 무렵부터 기억하는 일들이 여러 가지 있는 데 비해 이 때 기억이 없다는 것은 나로서는 꽤나 이상한 일이다.
이 시기 앞이었는지 뒤였는지 확인해봐야 하지만 내게 또렷이 남아있는 부모가 부재했던 순간은 일어나 보니 부모님 둘 다 감쪽같이 사라졌던 어느 아침이었다. 아랫방에 세 들어 사는 아주머니가 와서 아부지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가셨고 그 날로 수술을 받았다고 알려주기까지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던 시간.
아부지는 급성 충수염이 발병해 수술을 받은 것이어서 일주일 정도 병원에 있다가 퇴원해서 이 일은 그의 수술에 비하면 그리 큰 사건이 아니었을 텐데 이 때의 기억만 선명하다. 어른들 누구도 없이 동생과 단 둘이 꽤 오랜 날을 보냈을 텐데 왜 그 시간들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걸까. 생각할수록 궁금한데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