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가마니를 들여놓고 연탄을 백 장 이백 장 쌓아두고 김장을 마치고 나면 정말 든든했지."
그는 옛 기억을 떠올릴 때면 그때의 고생에 대해 되새기기보다 그렇게 겨울채비를 할 수 있게 된 상황에 대한 감사함과 대견함, 자랑스러움이 더 도드라지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고는 했다.
해마다 담근 김장이 이백 포기는 너끈히 넘곤 했지 싶다. 다섯 식구가 겨우내 먹어야 할 양이 그 정도는 되었던가. 결혼 후 시누집과 큰집, 시부모와 다섯이 사는 우리 집 몫까지 해서 세 집의 김장으로 늘 이백 포기 정도의 김장을 하면서, 그 옛날 다섯 식구 한 집이 먹던 양으로 지금은 세 집이 먹는구나, 생각하곤 했다.
아직 겨울이 되지 않았으나 충분히 쌀쌀하고 추운 가을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오면 배추가 담장 옆에 차곡차곡 쌓여있고, 다음 날엔 넓고 기다란 고무다라이 가득 절여져 있던 배추를 건져내어 씻고 있는 그와 동네 아짐들이 있었다. 품앗이로 김장을 하는 아짐들이 다 모여 본격적으로 속을 버무려 배추에 넣고 항아리에 담고, 배추김치가 마무리되면 총각김치, 깍두기, 동치미까지 만들어 지하실에 두거나 땅에 묻고 나서야 겨울 채비가 끝이 났다.
날무와 날고구마를 좋아하던 아부지는 김장철이 되면 밤마다 껍질을 깐 무와 과도를 들고 다니며 방과 마루에 흩어져 있는 아이들에게 한 입 먹어볼 테냐고 묻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 입에 달콤한 날무 조각을 잘라 내밀고는 했다. 여름무의 찝찌름하고 매운 맛만 보다가 물기 많고 달큰한 가을무를 먹으면 참말 맛이 있어서.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이제부터 무는 무조건 맛있지, 생각하곤 한다.
결혼 후에는 동생이 친정 부모와 함께 김장을 했고 나는 내내 시집 식구들과 김장을 했다. 김장하는 시기가 늘 비슷했기 때문에 그가 김장하는 모습을 이십 여년 동안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아플 줄 모르고 때맞춰 심었던 배추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테니, 어서어서 나아서 그 배추로 이번에는 같이 김장을 하자고, 그래그래, 세 모녀가 다 모여서 김장을 하면 그것도 좋지, 그도 고개를 끄덕였었는데.
부모님 모두 병원에 계시느라 밭에서 저희들끼리 자란 배추는, 장례 끝나고 가서 살펴보니 그렇게 실할 수가 없어서, 저 배추가 저리 자란 모습을 엄마가 봤다면 참으로 뿌듯했겠다 싶을 정도였다. 함께 하자 약속한 이는 세상에 없지만 그래도 약속이었으니, 그의 자매들과 그 딸들이 서툴게 서툴게 밤을 지새우며 김장을 했더라지. 절인 배추에 처덕처덕 속을 넣으며, 왜 그리 일찍 떠났느냐, 자리에 없는 이에게 퉁박주는 이모와 장단 맞추며 두 딸들은 그래도 엄마가 씨뿌려 자란 배추를 버려두지는 않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두고두고 다독거렸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