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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여행

암 환자 아내의 시점

by 복덕


서울로 가는 M버스를 탔다. 자꾸 놀러 가자는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청와대 방문을 신청했다. 초행길이라 딸이 동행해 주었다. 우선 안심이 되었다. 딸은 회사 일을 집에서 하는 중이라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서 일하면 된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청와대로 향했다. 처음에 우리는 서울시청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멋진 시청 건물에 감탄했다. 두리번거리며 거리 구경을 하면서, 비록 처음 와본 거리지만 TV에서 많이 본 곳이라 모든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옛날로 치면 한양, 임금님이 살던 궁궐에 온 셈이다. 먼 시골에서 봇짐 하나 메고 올라온 촌사람의 서울 나들이 같은 느낌이었다.


계엄을 벌인 대통령이 탄핵되었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최근에는 새 대통령이 다시 청와대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말이 돌아, 마음이 급해졌다. 혹시라도 다시 출입이 어려워질까 봐, 남편과 함께 청와대 구경을 서둘러 나선 것이다. 요즘은 TV를 거의 볼 기회가 없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 마산 집에 있었다면 마음 친구들과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들었을 텐데. 딸 집에 머무는 지금은 눈치가 보여 TV를 넋 놓고 볼 수도 없다. 요즘 아이들은 TV도 잘 안 보는지 모르겠다. 선거철에도 어떤 공약이 오가고,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조차 모른 채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살다 보면 참 여러 변화를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종종, 내가 겪은 가장 큰 사회적 변화를 1970년대 마산 거리에서 체감했다. 고등학교 시절, 마산역 부근에서 친구들과 헤어져 버스를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다. 시야가 뿌였더니 문득 이상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고, 그 냄새는 점점 눈물과 콧물을 쏟게 만들었다. 우왕좌왕 주변 사람들은 급히 뛰기 시작했고, 영문도 모른 채 나도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함께 뛰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것이 바로 체류탄 가스 냄새였고, 그날은 한창 데모가 벌어지던 날이었다. 경찰과 학생, 시민들이 충돌하던 그 거리에서 처음으로 사회라는 것의 거친 냄새를 맡았다. 그 후로도 뉴스 속에서 수많은 시위와 정권 교체를 보았지만, 그날의 충격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전혀 다른 방식으로 또 한 번의 변화를 체감한 날이 있었다. 바로 청와대 여행을 다녀온 날이다. 시민의 출입이 금지됐던 공간이 개방되었다는 건,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청와대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웅장했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기품이 느껴졌고, 고즈넉한 북악산과 어우러진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파란 기와 아래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을 텐데, 그토록 좋은 자리를 두고 왜 어떤 대통령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을까. 권력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걸까, 아니면 그 무게를 감당할 그릇이 처음부터 없었던 걸까. 국민이 준 밥그릇을 스스로 깨뜨린 모습이 못내 서글펐다. 자리를 욕심으로만 채우려 했던 이들은 결국 비운의 주인공이 되어 떠나게 된다.


남편의 고집으로 방향을 틀어 전망대 쪽 오르막으로 접어들었다. 길옆으로는 낮은 돌담이 이어지고, 그 위로는 산의 숨결이 그대로 묻어 있는 소나무들이 높고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햇살은 잎 사이로 스며들었다가 흩어지며, 마치 산이 숨을 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빈 초소는 하나둘씩 눈에 띄었다. 한때 누군가가 밤낮없이 나라의 경계를 지키던 곳이었을 텐데, 이제는 그저 바람과 낙엽이 드나드는 집처럼 쓸쓸했다. 창문 틈에 들러붙은 먼지와 굳게 닫힌 철문은 지나온 시간의 무게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군인들의 땀 냄새, 긴장된 대기, 교대 시간이 가까워 올 때의 묵직한 발걸음. 모두 지금은 산속의 적막에 묻혀 있었다.


길은 생각보다 가팔랐고, 잘 정돈된 계단 옆에는 나무뿌리와 돌이 어지러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러나 쉬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이 묘하게 마음을 다독였다. 나도 모르게 남편의 어깨를 가볍게 밀며 웃었다. “이 길을 왜 굳이 올라가자고 한 거야?” 투정 섞인 말이었지만, 속으로는 그가 아니었으면 이런 풍경을 보지 못했겠다는 고마움이 문득 일었다.

소나무들은 제각기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몸체가 붉은 소나무, 가지가 여기저기 부러진 나무, 어느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몸을 휘며 하늘을 향한 나무, 그리고 그 옆에서 어린 소나무가 조용히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누군가가 정성껏 다듬어놓은 조경의 소나무가 아니라, 바람과 비, 계절을 견디며 스스로 모양을 만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눈을 들면 소나무의 끝은 한없이 위로 솟아 있었고, 발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점점 높아질수록 청와대의 지붕이 조금씩 다른 각도로 드러났다. 파란 기와는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가, 구름이 지나면 금세 차분한 청색으로 돌아왔다. 멀리서 보면 권력의 상징 같았지만, 산길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 풍경은 묘하게 인간적이었다. 수십 년의 정치가 있었겠지만, 결국 누군가의 하루, 누군가의 식사와 잠, 누군가의 외로움도 함께 있었을 것이다.

전망대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말투는 조금씩 느려졌다. 숨이 가빠져서인지,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서인지 알 수 없었다. 나 역시 고개를 돌릴 때마다 서울의 지붕들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보며 걸음을 멈추곤 했다. 저 아래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한눈에 펼쳐졌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나이고, 남편이고, 우리가 살아온 날들이었다.


문득, 나이 예순을 넘기고도 또 다른 길을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발밑의 흙, 투덜거리는 말을 못 들은 채 앞장서는 남편, 그리고 나무 사이로 번져오는 햇살. 그 모든 것이 오늘 나를 전망대까지 밀어 올리는 힘이었다.

그 길을 오르며 나는 생각했다. “인생도 참 이 산길 같구나.”

숨이 차오르고, 뜻밖의 풍경을 만나며, 때로는 뒤 돌아보기도 하면서. 그래도 천천히, 끝까지.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남편은 사진 몇 장을 더 찍고 다시 꺼내 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한 번 와 보긴 잘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딸은 카페에서 일하다가 다시 우리를 만나러 왔고, 셋이서 서울 거리를 조금 더 걸었다. 청와대를 내려오니 민속박물관도 있고, 현대미술관도 있었다. 날이 참 좋았다. 푸른 하늘, 불어오는 바람, 여유로운 오후. 더 무슨 바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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