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물이 Mar 19. 2024

아이를 낳고 나니 친정 엄마가 밉다.

엄마가 된 후 내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생각해 보면 난

우리 엄마에게 큰 불만 없이 살아왔다.



우리 엄만 몸이 허약하니까,
우리 엄만 예민한 사람이니까,
그래! 아빠가 엄마를 힘들게 하니까,
엄만 기댈 만한 주변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엄만 우리 가족이 이렇게 불행해진 모든 이유가

아빠 때문이란 걸 너무나 명확하게 알려줘 왔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래서 내 무의식 속엔

'나'라도, 그래 '나'라도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는 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어릴 적 불안정한 회색 시간 속에서

난 누구나 겪는다는

사춘기라는 격변의 시간도 갖지 않고

조용조용 하루하루를

견뎌나갔다.



그 시기 혹자는 나를

매사 반듯한 모범생이라고 생각했겠지.

중학교 3년 내내 한 두어 번 빼고는

늘 반에서 1등을 했던,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불평불만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런 아이.



하지만 난 엄마의 따뜻한 칭찬을 받아 본 기억이 없다.

엄마 손을 편하게 잡고 길을 걸어본 적이 없다.

따뜻하게 엄마와 껴안고

속닥속닥 이야기 나누며 잠든 적이 없다.



엄마와의 추억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도



'우리 엄 참 이상하네.

역시 보통 엄마와는 달랐어.'



이런 생각뿐인데.

어렸던 나는 런 엄마를

어떻게 생각했걸까.

이해하려고 노력했걸까?

어릴 땐 내 우주의 주인이

마치 우리 엄마인 것처럼 느꼈던 걸까?



그 어렸던, 미성숙했던

 때의 나는

 때의 엄마를 이해해 줬는데

다 자란 30대인 나는

왜 지금의 엄마를 이해할 수 없는 걸까?



내 아이를 낳고 나니

나의 우주의 주인이 우리 엄마에서

 나의  아기로 바뀐 걸까?



내 아이들이 이렇게 귀한데,

이렇게 예쁜데,

상처라곤 1도 주지 않고 키우고 싶은데...



 때의 우리 엄만

 나에게 왜 그랬을까?

엄마의 상처가 너무나 커서

아픔은 보이지 않았던 걸까?



아이를 낳고 나서

엄마와의 사이는 좋았다가 나빴다가를 반복한다.

사실 좋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언제나 착했던 딸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선

10대 때 겪지 않았던

사춘기가 30대에 뒤늦게 찾아온 것처럼

엄마에게 짜증을 낸다.

엄마의 전화를 받기 싫다.



엄마가 되고나니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울 때가 많다.



주변 친구들이 친정 엄마 도움을 받는 얘기를 할 때마다

난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는다.

할 말이 없다.



물론 그런 친정 엄마를 둔 그녀들이 부럽다.

많이 많이 부럽다.

그렇다고 질투하진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난 나를 응원해 준다.



'자기 아이는 자기가 키워야지.

난 누구의 도움 없이 쌍둥이 둘을 혼자 키웠어.

내가 못할 게 뭐 있어!'



새삼 갑자기 우리 엄마한테 고마워는 밤이다.



고마워요 엄마.

나를 강한 사람으로,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셔서 감사합니다.



내 딸들에게  상처주지 않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할게요.

하지만 쉽진 않네요.

엄마도 그랬겠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