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나니 친정 엄마가 밉다.
엄마가 된 후 내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생각해 보면 난
우리 엄마에게 큰 불만 없이 살아왔다.
우리 엄만 몸이 허약하니까,
우리 엄만 예민한 사람이니까,
그래! 아빠가 엄마를 힘들게 하니까,
엄만 기댈 만한 주변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엄만 우리 가족이 이렇게 불행해진 모든 이유가
아빠 때문이란 걸 너무나 명확하게 알려줘 왔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래서 내 무의식 속엔
'나'라도, 그래 '나'라도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는 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어릴 적 불안정한 회색 시간 속에서
난 누구나 겪는다는
사춘기라는 격변의 시간도 갖지 않고
조용조용 하루하루를
견뎌나갔다.
그 시기 혹자는 나를
매사 반듯한 모범생이라고 생각했겠지.
중학교 3년 내내 한 두어 번 빼고는
늘 반에서 1등을 했던,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불평불만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런 아이.
하지만 난 엄마의 따뜻한 칭찬을 받아 본 기억이 없다.
엄마 손을 편하게 잡고 길을 걸어본 적이 없다.
따뜻하게 엄마와 껴안고
속닥속닥 이야기 나누며 잠든 적이 없다.
엄마와의 추억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도
'우리 엄만 참 이상하네.
역시 보통 엄마와는 달랐어.'
이런 생각뿐인데.
어렸던 나는 그런 엄마를
어떻게 생각했던걸까.
이해하려고 노력했던걸까?
어릴 땐 내 우주의 주인이
마치 우리 엄마인 것처럼 느꼈던 걸까?
그 어렸던, 미성숙했던
그 때의 나는
그 때의 엄마를 이해해 줬는데
다 자란 30대인 나는
왜 지금의 엄마를 이해할 수 없는 걸까?
내 아이를 낳고 나니
나의 우주의 주인이 우리 엄마에서
나의 아기로 바뀐 걸까?
내 아이들이 이렇게 귀한데,
이렇게 예쁜데,
상처라곤 1도 주지 않고 키우고 싶은데...
그 때의 우리 엄만
나에게 왜 그랬을까?
엄마의 상처가 너무나 커서
딸의 아픔은 보이지 않았던 걸까?
아이를 낳고 나서
엄마와의 사이는 좋았다가 나빴다가를 반복한다.
사실 좋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언제나 착했던 딸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선
10대 때 겪지 않았던
사춘기가 30대에 뒤늦게 찾아온 것처럼
엄마에게 짜증을 낸다.
엄마의 전화를 받기 싫다.
엄마가 되고나니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울 때가 많다.
주변 친구들이 친정 엄마 도움을 받는 얘기를 할 때마다
난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는다.
할 말이 없다.
물론 그런 친정 엄마를 둔 그녀들이 부럽다.
많이 많이 부럽다.
그렇다고 질투하진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난 나를 응원해 준다.
'자기 아이는 자기가 키워야지.
난 누구의 도움 없이 쌍둥이 둘을 혼자 키웠어.
내가 못할 게 뭐 있어!'
새삼 갑자기 우리 엄마한테 고마워지는 밤이다.
고마워요 엄마.
나를 강한 사람으로,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딸들에게 상처주지 않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할게요.
하지만 쉽진 않네요.
엄마도 그랬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