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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머리앤 Jul 01. 2024

전세금을 빼서 신협에 넣어놨더니..

뭐라고?! 얼마가 올랐다고?!

"뭐? 삼천만 원?!"


남편을 따라 

제주도로 내려와서 

살게 된 곳은 

직장에서 제공하는

관사 같은 곳이었습니다.


서울 신혼집보다 많이 넓었지만

너무 오래된 집이라

새시가 나무였어요.

새시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나무창틀이었습니다.

옥색이었어요.

오래된 집을 

살아보시거나 보신 분들을 

익숙한 옥색 나무창틀이요.


제주도는 겨울에도 따뜻한 줄 알았거든요.

생각보다 춥더라고요.

바람이 많이 불어요.

나무 창틀 사이로 바람이 비집고 들어옵니다.


변기도 옥색,

문도 옥색,

하나 있는 붙박이장 문짝도 옥색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인테리어 메인 컬러가 옥색이었나봐요.


저희 윗집에 먼저 와서

살고 계셨던 언니는

옥색 화장실에 기겁을 하고

도저히 못 살겠다고 했데요.

자비를 들여서 

욕실 리모델링을 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분께는 참 죄송하지만

그 당시에는 

리모델링을 왜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었거든요.

본인 집도 아니고

곧 허문다는 이야기가 있는 집을

몇 백씩이나 들여서 고치는 게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 사람의 소비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가치를 알 수 있잖아요.


그분은 어린 아기가 있기도 했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참 소중한 분이셨던 것 같아요.


욕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할 텐데

마음에 안 들면 

얼마나 짜증이 나겠어요.


욕실 공사에 이백을 썼다고 가정하고

3년을 그곳에 산다고 했을 때

3년이면 1095일,

하루에 약 1827원을 쓴 거더라고요.


그런데 윗집 언니보다

더 대단한 언니도 있었어요.


이런 낡은 집에 

살기 싫다고

따로 집을 구하시는 분도 있었거든요.


집을 구했다고만 해도 놀랄 일인데

집을 아예 샀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남편 친구라고 했던 거 같은데

결단력이 엄청나신 분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분이 3년 정도 살다가

제주도를 떠날 때

그 집을 팔았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가 남편에게

삼천만 원을 벌었다고 이야기했데요.


"뭐.. 뭐라고?!

얼마가 올랐다고?

삼천만 원?!"


그 당시 제 월급을 생각해 보면

정말 큰돈이었거든요.


좋은 집을 원해서

좋은 집에 살았더니

돈을 벌었다고?!


이런 논리가

머릿속에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단톡방에는 저를 포함해

세 명이 있었습니다.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다가

제가 그랬습니다.


"요즘 제주도가 땅값이 많이 올랐다고 하더라.

남편 친구도 3년 만에 삼천만 원을 벌었데."

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굳이 남의 이야기를 

카톡에 왜 올렸는지 참 부끄럽지만 

저에게는 그때 그 일이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거든요.


제가 예상했던 

친구들의 반응은

"아 그래? 진짜 많이 올랐다."

였거든요.


친구들이 그러더군요.

"삼천만 원?"

"그게 뭐가 많이 올라.

서울은 더 올랐어.

우리 집값은 얼마나 올랐다는데."

"맞아. 내가 사는 분당도 엄청 올랐는데..."


이 반응은 뭐지?!


두 가지가 놀라웠어요.


한 가지는 그들에게 삼천만 원이 별거 아니었다는 사실과

나머지 한 가지는 그들이 모두 집이 있었다는 사실이었어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제가 살던 서울 신혼집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정확히 삼천만 원이 올랐더군요.


제가 신혼집 전세금을 빼서

제주도에서 금리가 제일 높은 

신협에 예금으로 넣어놨었거든요.


이따금씩 예금을 갱신하러 갈 때마다

치약 몇 개를 챙겨주셨어요.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신협을 나왔었는데

그제야 제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일본 속담에 

공짜보다 비싼 것은 없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해요.


그때 제가 신협에서 받은 치약은 

삼천만 원 이상의 값어치가 있었던 거예요.


실제로 제가 받은 이자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제주도에 3년을 살 예정이라

서울에 집을 사거나 이런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어요.

서울에 집을 사서 

세를 주고 나면

서울에 다시 올라왔을 때 

제가 산 집에 들어갈 수도 없고

다른 집을 구할 돈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관사는 허물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서울로 이사 가기 

한 달 반 전에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고

한 달 반 만에

서울로 다시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남편에게 이야기를 듣는데

단전에서부터 깊은 한숨이 

저도 모르게 새어 나왔습니다.


'휴...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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