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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더 Nov 20. 2024

EP091. 폭우로 인한 정전

고요와 어둠 속의 요가 수업

2024.11.12. (화)


 아침부터 전기가 나갔다. 다행히 충전할 것들은 완충해 뒀고, 아침도 이미 먹었고, 흐리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있어 큰 불편함은 없었다. 곧 있을 스페인어 수업이 걱정될 즈음, 전기가 다시 들어왔다. 그저 비가 많이 오나 보다 했는데 전기가 나가니 당황스러웠다.


 스페인어 수업에서 새로운 과거 시제를 배우기 시작했다. Pretérito indefinido라고 완료과거인데 꼭 과거 특정 시점을 언급해야 쓸 수 있다. 변형에 tilde라는 강조 악센트가 들어가는데 안 그래도 다른 것들로 신경 쓸게 많은데 이제 발음까지 신경 써야 한다. 특히 완전히 똑같이 생겼는데 tilde 여부로 1인칭 단수 현재 동사인지, 3인칭 단수 완료 과거 동사인지가 완전히 달라져서 차이를 두고 발음하는 게 중요하다.


 내 기준에서 열심히 강조한다고 읽은 건데도 선생님은 성에 안 차시나 보다. 그러면서 언제나 한국인들은 다른 국가에서 스페인어를 제2 외국어로 배우는 학생들에 비해 발음에 특유의 악센트가 없고 대부분 발음이 아주 좋다고 하시는데, 선생님 한국인은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학생들만 가르치시잖아요, 아주 편향된 샘플 아닙니까? 속으로만 생각했다.


 열심히 수업을 듣고 점심으로 해물 크림 파스타를 해 먹었다. 지난주 목요일에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을 때 다른 친구들의 메뉴를 한 입씩 돌아가며 먹었는데 특히 프렌치딥이랑 크림파스타가 맛있었던 기억이 있어 직접 만들어 보았다.  프랜치딥은 아예 튀겨져 있어 만들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제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 시리즈를 보는데 우연히 배우들이 프렌치딥의 근본에 대하여 심도 깊은 토론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제 보니 튀기지 않는 게 정석인 것 같고 또 대충 만들기 쉬워 보여 다음번에 도전해 봐야겠다 결심했다. 그렇게 만든 해물 크림 파스타는 놀랄 정도로 맛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또 비가 오는 창 밖을 보며 나갈까.. 말까.. 고민만 하다 이렇게 된 김에 오늘은 아예 요가 수업을 일찍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항상 Yoga1 수업만 듣다 Intro al Yoga 수업을 들으니 안 그래도 운동이 안되는데 너무 쉬운 자세만 하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걱정할 것은 따로 있었다. 오늘 수강생이 너무 없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날씨 때문인 것 같았다. 아니 저 보고 따라 할 표본이 필요한데요.. 거기에 오늘 선생님은 처음 보는 선생님이었다.


 물어보시는 간단한 질문들에 대답했더니 내가 스페인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눈치였다. 거기다 말이 너무너무 많으셨다. 왜 이렇게 말이 많으시지? 몰랐는데 또 전기가 나간 것이었다. 그래서 불도 못 키고 노래도 못 트니 그 여백을 말로 채우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와 한 커플 이렇게 딱 셋이 수업을 듣는데 말하시는 중간중간 como ~ siento ~하시는데 자꾸 대답해야 하는 건가? 그냥 어떤지 느끼라는 건가? 계속 헷갈렸다.


 사실 수업 중에는 이게 정말 전기가 또 나간 건지, 무슨 디톡스 데이라 불도 끄고 음악도 끈 건지 헷갈렸는데 길에 나와보니 그냥 이 지역 전체 전기가 나간 것을 알게 되었다. 가게들도 컴컴한 상태로 영업 중이었고(?) 가로등도 꺼진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니 칩으로 여는 대문을 열 수가 없어서 친구에게 전화해 안에서 열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NO전기=NO대문=NO인터넷=NO부엌=NO저녁.. 저녁을 못 먹게 되었잖아? 수업 가기 전에 워낙 이것저것 많이 먹고 가서 배가 고프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슬퍼서 빵을 주워 먹었다. 깜깜한 방에 누워 데이터로 인스타그램을 넘기며 망고까지 먹고 있자니 불이 들어왔다. 왓츠앱 채팅방은 오오 불이다!!!! 하고 난리가 났다. 불을 발견한 구석기시대사람들은 얼마나 기뻤을까?


 지난 정전 때엔 냉장고에 있던 마파두부가 상했는데 오늘은 상할 음식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이후 저녁에 한국인분이 한국쌀과 라면, 우동 등 구호식품을 챙겨주시고 가셨다. 아니 사실 지금 상황과 무관하게 챙겨주신 것인데 밖에 비가 오고 사무실은 폐쇄되고 건물은 정전되었다 전기가 마악 들어온 상태로 먹을 것을 들고 올라오니 재난사태에 받은 구호 물품 같이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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