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스더 Nov 20. 2024

EP097. 결론: 드디어 뚫었다, 코!

이게 그니까 코스타리카에 온지 100일을 기념하는건데 왜 벌써 뚫었냐면요

2024.11.18. (월)


 코스타리카 공휴일 보다 훨씬 와닿는 아르헨티나 공휴일이다! (아르헨티나 선생님이 쉬어야 해서 스페인어 수업이 없기 때문이다. 코스타리카 휴일에도 수업은 계속된다.) Día de la Soberanía Nacional 주권의 날 당일은 20일인데 가까운 월요일로 공휴일을 옮겨 주말을 늘린 것이라고 한다. 나와 코스타리카의 100일도 11월 20일이지만 같은 원리로 오늘로 옮겨 기념해 보았다. 이번 100일은 예전부터 계획해 온 코 피어싱으로 축하했다. 얼마나 예전이냐? 무려 9년 전부터 계획해 온 일이다.


 ~라고 할 때 살걸. 이라는 말이 있듯이 ~라고 할 때 뚫을걸. 이라는 말이 있다.(내가 만듦)


 2016년 미국 교환학생 시절 처음 코피어싱이 하고 싶어졌는데 지금도 쫄보지만 더욱 쫄쫄보였던 나는 지나가는 사람마다 코피어싱을 하고 있으면 혹시 뚫을 때 많이 아프니?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감히 할 생각을 못하고 아 미국에 있을 때 할걸.. 했다.

 이후에 유럽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는 아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할걸.. 하고

 한국에 돌아와 학부 막학기 학생으로 한창 인터뷰를 하고 다닐 땐 아 유럽에서 학생일 때 할걸.. 했다.

 또 호주에서 회사를 다닐 땐 아무래도 학생일 때 할걸.. 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대학원을 다닐 땐 그래도 호주에서 자유롭게 다닐 때 할걸.. 했다.

 대학원을 졸업해 회사에 다닐 땐 그래도 대학원생일 때 할걸.. 하고

 코로나가 지나고서는 마스크 끼고 다닐 때 은근슬쩍 뚫을 걸.. 하다가(심지어 당시 팀장님 포함 팀원들에게 뚫고 오겠다고 선포까지 해놓고 결국 못 뚫음.) 여기까지 온 것이다.


 무슨 뜻이냐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뜻이다!


 사람들한테 딱 100일에 코를 뚫겠다고 했을 때 코스타리카 사람들 조차 부모님은 뭐라셔? 물어봤는데 선타투 후뚜맞.. 선피어싱 후뚜맞.. 이 아니라 벌써 10년 가까이 코피어싱코피어싱 거리니 차라리 엄마아빠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있을 때 할 것 다~하고 들어올 때 빼렴 수준의 허락 말씀을 받아냈다.


 어제도 또 잠깐 눈을 감는다는 것이 아예 잠들어 버려서 새벽 다섯 시에 잠깐 일어나 씻고 커튼치고 불을 꺼서 아홉 시에 일어났다. 항상 아침 출근 시간의 도로 소음으로 일찍 깼는데 오랜만에 늦잠을 자니 상쾌했다. 다가오는 스페인어 수업이 없으니 더욱 상쾌했다. 밀린 빨래도 돌리고 방도 치웠다. 항상 스페인어 수업 시간과 겹쳐서 못 갔던 요가 2 수업에 가려고 했는데 나갈 준비를 하다 늦어버려서 그냥 평소 가던 저녁 수업에 가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다. 하루 한가운데 11시 수업만 없으면 시간을 되게 잘 쓸 것만 같은데 종일 아무것도 없어도 여전하다. 수업이 있었어도 아마 이 즈음 나왔겠다 싶은 시간에 나와 예전에 친구의 친구에게 추천받은 타투&피어싱 샵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 추천받았던 티코피어싱이라는 곳에 가고 싶었는데 (이름도 마음에 들고 타투가 아니라 피어싱 전문샵이라서) 예약 문의에 답도 없고 구글 리뷰 중 최근 몇 개가 너무 안 좋아서 산호세 곳곳에 여러 지점이 있는 타투&피어싱 샵에 왔다. 엄청 긴장될 줄 알았는데 너무 오래 생각해 온 것이라 생각보다 긴장되지도 않았다. 앞으로 가끔 가야 할 수도 있으니 집과 가장 가까운 지점으로 왔다. 오는 길에 갑자기 문득 해보고 싶었던 입술피어싱이나 눈 아래 더멀피어싱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가장 오래된 염원을 먼저 해결해야 했다.


 평일 낮인데도 안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코피어싱을 하러 왔는데 스페인어 잘 못하니 이해 부탁! 했더니 좀 긴장한 게 보였는지 피어싱 처음이야? 괜찮아~토닥토닥해주시더니 영어 쪼끔 가능자를 불러주셨다. 그리고 속전속결로 피어싱 종류를 고르게 되었다. 알록달록한 무지개 큐빅이 콕콕 박혀있는 피어싱이 너무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뭔가 처음이니 베이직한 것으로 해야 할 것 같아서 가장 기본 큐빅을 골랐다. 두 가지 사이즈 중에 조금 더 큰 쪽을 추천해 주셨지만 얼굴에 어떻게 보일지 아예 상상이 안 가서 우선 가장 작은 걸로 하고 나중에 바꾸겠다고 했는데 이게 아주 후회 포인트이다. 나는 귀걸이든 코걸이든 쪼끄마한 건 굳이..? 하는 사람인 걸 이제 확실히 알았다.


 그렇게 피어싱을 고르고 동의서에 개인정보와 함께 서명을 했다. 그리고 들어간 방.. 눈앞에서 소독된 기구들을 뜯는 것을 보여주고 언제 만들어진 뭐인지 날짜도 읽어주고 보여줬다. 근데 이때부터 갑자기 실감이 나서 쫄기 시작했다. 스페인어 선생님이 내 계획을 듣고 고통을 잘 참는 편이냐고 물어봤었는데 그래봤자 1,2초인데 뭐! 센척했는데.. 타투, 피어싱을 공부 중이라는 수습생이 한 명 더 들어와서 옆에서 코피어싱 강의를 들었다. 나중에 링도 하고 싶은지 물어보시고 뚫을 위치를 찍어줬는데 뚫는 건 줄 알고 아악 하다 민망해졌다. 거울을 보고 약간 너무 사이드에 찍으신 거 아닌가 싶었지만 고수의 말을 듣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오케이.. 했다. 그리고 이게 또 두 번째 후회 포인트이다. 그렇지만 나중에 뺄 걸 생각하면 아주 정면에서 보이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정신 승리 중.


 이젠 정말 뚫을 것 같아서 할 때 지금이야!라고 꼭 말하세요.(나의 스페인어의 한계..)라고 말했더니 하나 둘 셋 팍 해주셨다. 그리고 또 피어싱이 들어올 때 한 번 더 팍.. 하긴 했지만 나는 그냥 겁이 너무 많은 거지 고통에 예민한 편은 아니라 잘 넘겼다. 그 9년의 기간 동안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코피어싱 브이로그는 거의 다 본 것 같은데 꼭 그 코피어싱 위치가 눈물 뭐랑 연결되어있어 저절로 눈물이 주룩 나온다는 얘기가 항상 있었다. 왜인지 나는 예상과 달리 눈물도 별로 안 났다. 그리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거울을 봤는데 생각보다 튀지 않아서 마음에 들면서도 좀 아쉬웠다. 다음 피어싱을 바꿀 때까지 두 달은 이렇게 지내야 한다는데 아까 그 무지개 피어싱을 할걸! 했다. 그리고 하루 두 번 뿌려야 한다는 용액까지 받아 들고 결제를 하는데 한국에서 하는 가격보다 2~3배 비싸서 조금 놀랐지만 일주일 후에 체크업도 받기로 해서 좀 마음이 놓였다.


 빨개진 코와 함께 카페에 와서 지난번에 놓친 까눌레에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는데 까눌레가 너무 맛있어서 또 행복했다. 할 일이 많았는데 뭔가 마음이 붕 떠서 또 계획만 잔뜩 세우다 요가 시간이 되어버렸다. 빈속으로 가려다 좀 허기져서 근처 서브웨이에 와서 이제는 익숙해진 오늘의 서브웨이 15cm 주세요! 했는데 변수가 있었다.


 오늘은 월요일이라 pizza sub라는 샌드위치였는데 이건 무슨 빵+고기를 먼저 굽는 게 아니라 위에 토마토소스랑 피자 야채들(올리브, 양파, 피망 등)은 먼저 올리고 구운 뒤에 추가 채소를 올리는 식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내가 계속 빵 구워달라니까 안 구워주고 뭘 물어보면서 올리브랑 양파 같은 거 올리길래 뭐 하는 거지.. 했는데 다 계획이 있으셨다. 그렇게 마카다미아 쿠키까지 먹고 요가 수업에 들어왔다. 요즘 요가 수업 우우였는데 오늘 수업은 너무 좋았다! 그리고 옆에 귀여운 친구가 있어서(그래서 수업 좋았던 거 아님) 유 쏘 큣!말해주려다가 어머니와 같이 왔길래 봐줬다. 사실 이 요가원은 한국에 있을 때부터 알아봤던 곳인데 오늘 이렇게 오래 생각해온 피어싱을 뚫고 또 한국에서 상상만 하던 지구 반대편의 요가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벌써 다음 주면 11월의 마지막 주라 곧 요가원과도 이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EP096. 추수감사주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