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규 Jul 22. 2024

좋은 질문

나는 좋은 질문에 대한 기준이 엄격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들었을 때, 내가 배울 점이 없다고 생각되면, 그 질문을 안 좋게 평가했다. 질문을 듣는 다수에게 통찰력을 주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질문을 좋아했다. 질문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어야 좋은 질문이라고 정의했다. 단순하고, 인터넷에 찾아봐도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묻는 질문은 정말 싫어했다. 다른 학생이 내 기준에 어긋나는 질문을 하면, 질문의 수준을 무시했고, 수업 시간을 잡아먹는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들었다. 질문 자체를 왜 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높은 수준의 어려운 질문을 좋아했고, 그런 질문을 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내가 정말 궁금한 내용보다는 있어 보이는 내용을 얻기 위해서 전전긍긍했었다. 질문에 답을 해줄 교수님뿐만 아니라, 같이 수업을 듣는 주변 친구들한테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으로 질문했다. 


여행하는 선생님들에서는 전공 지식이 아닌 나, 관계, 세상에 대한 질문을 한다. 그럼에도 질문의 퀄리티에 대한 나의 기준은 여전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머릿속에서 많은 상상과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여행하는 선생님들에서 하는 질문들에 대한 답은 이미 내 머릿속에서 많이 되새겨본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부워크숍에서 하는 질문들로부터 얻어가는 것이 매우 적었다. 그리고 이 질문들로부터 동아리원들이 얻어가는 게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이 던져주는 질문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게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민과 경험 끝에 삶을 관통하는 자신만의 질문을 던지고, 혼자서 헤쳐나가 답을 찾는 것만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와 주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었기에 여행하는 선생님들에서 하는 질문은 불만족스러웠다.


카이스트 물리학과를 다니면서, 내가 얼마나 모자란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가 정말 궁금해서, 이해가 가지 않아서 하는 질문이 물리학과 친구가 봤을 때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하는 질문은 절박했고, 진심으로 궁금해서 한 질문이었지만,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퀄리티의 질문이었다. 내가 하는 질문의 답은 주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하는 질문은 물리를 잘 못하는 내게는 신세계였다. 내가 묻는 질문의 퀄리티와 친구들이 묻는 질문의 퀄리티가 너무 차이 난다고 느껴졌다. 물리학과에 들어간 지 1년이 넘어가지만 나는 여전히 모두가 궁금해할 만한 높은 수준의 질문을 하지 못한다. 내가 너무나 당연한 것을 물어볼 때,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한 친구의 날카로운 눈빛은 지금 생각해도 아프다. 자연스럽게 그 친구한테 또 질문하기가 두려워졌다. 


이런 가슴 아픈 시간과 경험이 반복되니까, 엄격했던 좋은 질문에 대한 기준이 조금씩 바뀌었다.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난 요즘은 진짜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 좋은 질문인 것 같다. 인위적이지 않고, 정말 궁금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질문은 뭐든 다 좋은 질문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진짜 궁금한 것들을 나만의 언어로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다른 친구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질문을 해도,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답을 내리려고 노력한다. 배울 게 없는 질문도 많지만, 꼭 내가 뭘 배워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다.


여행하는 선생님들에서 나온 질문들도 새로운 기준에 따라 재평가를 했을 때는 꽤 괜찮은 질문이 됐다. 배워가는 게 많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배우지 못한 내가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 자주 보지는 않고 스쳐가는 인연일지라도 말 한번 섞어보는 경험. 여행하는 선생님들에서 질문은 내게 저 역할을 잘 수행했고,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나에게 선물해 줬다. 자신만의 질문을 던져야 하고, 혼자서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여전히 굳건하다. 그래서 나는 여행하는 선생님들이 질문의 답보다 질문 자체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현재는 교육팀만이 내부워크숍에서 다룰 질문을 제작하지만, 모든 동아리원이 자신만의 질문을 제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수업의 영향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