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머 Oct 25. 2024

고급 해산물 뷔페식당에서

뜻밖의 것을 맛보다

이십여 년 전 해산물 뷔페식당에 처음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고급형 해산물 뷔페식당이 유행처럼 생겨나고 있었고 값도 비쌌다. 회사 동료들과 모처럼 큰맘 먹고 혜화동에 있는 멋진 곳으로 갔다.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커다란 초콜릿 분수가 과일과 과자를 코팅해 주려고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디저트 코너에는 여러 과일, 맛있어 보이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이 있었고, 음식 진열대에는 온갖 신선한 회에다 바닷가재며 대게 다리며, 아주 먹음직한 음식들로 가득했다. 말 그대로 산해진미였다. 우리들은 자리를 잡고 나서 각자 접시를 들고 음식 진열대들을 돌기 시작했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어찌나 다양하게 많은지 나는 접시에 하나도 집어 담을 수가 없었다. 우와, 이걸 어쩌지. 한 점씩만 집어도 몇 가지 담을 수가 없겠는걸. 한 점씩 담아가서 반입씩만 베어 먹더라도 여기 있는 것의 절반도 맛을 볼 수가 없잖아. 그렇다고 음식을 잔뜩 베어 남길 수도 없고.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같이 간 동료들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그들은 그저 싱글벙글한 얼굴로 진열대를 돌며 음식을 담고 있는 거였다. 아, 저 사람들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을 먼저 먹으려는 것이구나.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나는 왜 이러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으려 들면 될 것을. 대식가도 아닌 내가 그곳에 나온 해산물이며 과자며 분수초콜릿까지 모두 다 먹고 싶어 쩔쩔매던 거였다.


음식은 담지 못한 채 빈 접시를 들고 사람들 사이에서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맛보았다. 소욕지족, 작은 욕심으로 만족할 줄 아는 이들은 천국을 누리며 행복해했고, 나처럼 그날의 음식을 하나도 빼지 않고 한꺼번에 다 맛보려 드는 자는 지옥을 경험해야 했다. 나처럼 선택도 못하고 괴로워하거나, 실컷 먹어 배가 부르면서도 여전히 먹고 싶지만 더 먹지 못해 괴로워하거나, 아니면 억지로 더 많이 먹고 탈이 나서 괴로워하거나. 어쨌든 욕심 다스리지 못하는 자들이 벌 받는 곳이었다.


천진한 듯 그저 즐거워하는 동료들을 보며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래, 오늘 한 점씩 이 접시에 가득 담아보자. 오늘이 인생 마지막 날인 듯 꼭 다 맛봐야 하는 건 아니잖아. 오늘 먹지 못한 것은 다음에 다시 와서 먹으면 되는 거야. 어렵게 자신을 설득해서 접시에 담았다. 자리로 돌아와 보니 내 접시에 담긴 음식이 가장 많았다. 접시에 반쯤 담아 온 동료들은 그중 맛있는 것은 더 먹고 또 새로운 것을 가져왔다. 세 번 네 번 가져오는 동료를 부럽게 바라보았다. 첫 접시에 욕심을 부린 나는 접시를 겨우 비웠고 디저트도 조금밖에 먹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 얼마나 담아 오든 어차피 먹을 양은 다르지 않았을 터였다. 그날부터 나는 그 동료들에게 존경심을 갖게 됐다. 그들은 소욕지족의 도를 아는 도인들이었다. 


그 뒤에도 몇 번 더 뷔페식당에 가보았지만, 욕심 조절의 문제를 매번 겪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는 아무리 고급이라 해도 뷔페식당을 좋아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전처럼 많이 먹을 수도 없거니와, 내가 먹은 음식 양을 알 수 없다는 것도 탐탁지 않다. 여러 종류 음식 코너를 돌아다니는 것도 괴로움일 뿐이다. 일행과 같이 먹는다기 보다 그저 서로 먹을 것 가져오느라 바쁜 것도 즐겁지 않다. 무엇보다 여전히 내 접시에서 내 욕심의 크기를 확인하기가 유쾌하지 않다. 뷔페에만 가면 나는 어쩐지 일종의 시험대에 서거나 벌을 받는 듯 느껴진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단품을 주문하는 식당에서, 적당한 양의 음식을 천천히 먹는 것을 좋아한다. 동석한 사람들과 차분하게 담소도 나누고. 그러면 디저트를 먹거나 차도 마실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