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는 젊은 후배에게
회사에 입사해서 결혼하는 젊은 직원들은 사내 부서를 돌면서 결혼 청첩장을 돌리며 인사합니다. 십여 년 전에 남자 직원 한 사람이 청첩장을 가져왔습니다. 평소에 이야기를 나누거나 차라도 한 잔 한 적은 없었지만 성실하게 일 잘한다는 평이 있는 사람으로, 말수가 적고 온화한 표정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축하한다고 간단히 악수만 나누었는데, 돌아가는 그의 등을 보면서 뭔가 선물이 주고 싶어 졌습니다. 사내결혼이었기 때문입니다. 해외 파견근무로 부부가 먼 대륙에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부부가 회사를 같이 계속 다니는 커플도 있지만 중간에 한쪽이 그만두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는 상대 여자 직원과도 모르는 사이였지만, 두 사람이 오래도록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렸습니다.
아무개 씨,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제안 하나 하고 싶습니다. 청첩장을 세 장만 깊숙이 간직해 두세요. 밀봉을 해서,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세요. 혹여라도 그녀가 회사를 떠나는 결정을 내리게 되면 그녀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 한 장을 내미세요. 우리는 결혼할 때 어려움 없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사람 사는 게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답니다. 어려움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잘 이겨내겠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시공간에서, 돌아오는 다리를 부수며 앞으로만 가는 것이랍니다. 과거로 돌아가는 다리는 없으니까요.
혹시 어느 날 두 사람 사이에 늘 흐르던 시냇물이 너무 불어나 큰 홍수가 나거든, 그리고 그때도 이 사람을 보내고 싶지 않은데 그 진심을 전달하기 어렵거든, 두 번째 청첩장을 내밀어 다시 청혼하는 겁니다. 돌아가는 다리는 부서져 없는데도, 자꾸만 돌아보며 이미 없어진 다리를 건너서, 간절하게 간절하게 돌아가고 싶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세 번째 청첩장은, 두 사람이 낳아 잘 기른 아이들이 엄마 아빠 품을 떠날 때 사용하게 되겠지요. 자녀들 결혼식 치르고 돌아와서, 아니면 그녀가 아이들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해 자신을 제일 괴롭히면서 아이들을 힘들게 하거든, 그때 그녀에게 내미는 겁니다. 아이들 신혼여행 떠나보내고 다음날 둘이서 새롭게 여행을 떠나자고 하는 겁니다. 결혼해서 살다 보면 아주 이상한 일도 있답니다. 특히 여자에게는. 처음 결혼할 땐 남편만 보고 결혼했는데도, 살다 보니 이상하게 아이들 때문에 사는 것 같고, 게다가 결혼을 결심할 때 마치 '남편이 데리고 있던 이 아이들(그땐 없었는데)이랑 살고 싶어서 내가 결혼을 결정했던 건 아닐까?' 하는 황당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 아이들 없이 저 남자랑 둘이서 어떻게 살지?' 하는 걱정이 생길 수도 있답니다. 그러니 아이들을 품에서 떠나보낼 때 처음처럼 둘이만 남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이 남자가 옛날 청첩장을 이삼십 년 간직해 온 것을 알고 용기를 낼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세 장의 청첩장, 잘 사용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행복하게, 지혜롭게, 잘 살아내는 것은 두 사람의 몫입니다. 세상의 축하를 축복으로 만들어가기 바랍니다! 레반트의 현인, 칼릴 지브란의 시를 첨부합니다.
결혼에 대하여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고,
또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죽음의 흰 날개가 그대들의 삶의 날을 흩어버릴 때에도
그대들은 함께 있을 것입니다.
정녕 그렇습니다. 신의 고요한 기억 속에서조차도
그대들은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있되
그대들 사이에 공간이 있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하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도록 하십시오.
서로 사랑하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마십시오.
그보다는 사랑이
그대들 두 영혼의 기슭 사이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게 하십시오.
서로의 잔을 채워주십시오.
그러나 각자 자신의 잔을 마시도록 하십시오.
서로에게 자신의 빵을 나누어주십시오.
그러나 각자 자신의 빵을 먹도록 하십시오.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십시오.
그러나 서로는 혼자이게 하십시오.
함께 떨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낼지라도
각각은 혼자인 현악기의 줄처럼.
서로 가슴을 주십시오.
그러나 상대방의 가슴을 소유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직 저 위대한 생명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가슴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마십시오.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예언자(정창영 번역)'에서 -
그 후배 직원들은 어찌 되었을까요? 제가 이메일 보낸대로 청첩장 세 장을 보관했는지, 아니면 바로 잊어버렸거나 무시되었는지, 혹시 보관했다면 한 장이라도 사용했는지 어떤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후 그 남자 직원과 다시 이야기 나눌 기회는 없었지만, 지금도 두 사람은 같이 회사 잘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온화하고 밝은 얼굴, 밝은 음성인 것을 먼발치에서 보며 행복하게 잘 사는가 보다고 혼자 생각합니다. 언젠가 제 아이가 결혼하겠다고 하면 이 이야기를 들려줘도 괜찮을까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생각이 많이 다를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이 너무 옛날식인가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