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인간다움에 대한 깊은 성찰, 영화 <애프터 양>

영화 리뷰

by 은사자의 SEE네마

프롤로그


21세기 들어 영화는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탐구해왔다. 특히 인공지능을 다룬 작품들은 단순히 과학기술적 상상력을 넘어서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묻는 철학적 질문을 던져왔다.

코고나다 감독의 <애프터 양>(After Yang, 2021)은 그 연장선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영화는 미래 사회에서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가족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며, 기술이 아닌 인간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일상의 단면을 담담하게 보여주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SF가 아니라 시적인 명상과도 같다.


인공지능 ‘양’의 ‘기억’을 통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에 대해 묻는 ‘인간다움’에 대한 깊은 성찰.

오늘의 영화 <애프터 양>이다.



떠난 후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

<애프터 양> 시놉시스


제이크와 카이라, 그리고 딸 미카, 안드로이드 양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어느 날 양이 갑자기 고장을 일으켜 움직이지 않게 되자, 제이크는 양을 고치기 위해 여러 곳을 찾아가지만 제조사에서는 보증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수리를 거부한다.

제이크는 불법 수리업자를 통해 양의 내부에서 ‘기억 저장 장치’를 발견한다. 그 장치는 양이 그동안 본 순간들을 영상처럼 저장한 기록이었다.

제이크는 그 기억을 재생하면서 양이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자신만의 감정과 사유를 가진 존재였음을 알게 된다.



기억 속에서 양은 미카와 함께한 일상 뿐 아니라, 과거 다른 인간 여성과 교류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제이크는 그 과정에서 양이 스스로의 정체성,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러한 기록을 통해 양이 단순히 아이를 돌보는 가정용 기계가 아니라, ‘살아있던 존재이자 가족’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기술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메타포 해석 & 핵심 메시지


<애프터 양>은 화려한 특수효과 대신 조용한 호흡과 따뜻한 시선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영화는 양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변화하는 제이크의 모습으로 그 답을 말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을 비추는 거울
안드로이드 양


영화는 인공지능의 미래 가능성을 화려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안드로이드 ‘양’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함과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양의 ‘기억’은 결국 인간이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거울이 된다. 우리가 놓치고 지나가는 순간과 대화, 표정들이야말로 삶을 채우는 본질적 가치라는 점을 영화는 양을 통해 말하고 있다.



정체성과 뿌리에 대한 질문


미카는 제이크 부부가 입양한 중국계 소녀이고, 양은 그녀가 자신의 뿌리와 문화를 이해하도록 돕는 존재이다. 미카에게 양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였다.

영화는 인간과 인공지능이라는 그들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혼란과 외로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정체성이란 혈연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기억과 관계, 스스로 던지는 물음 속에서 형성된다고 말한다.



과정을 음미하는 기억
차(茶)의 맛


영화에서 ‘차(茶)’는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과정’과 ‘존재의 순간’을 상징한다.

제이크는 찻집을 운영하며, 차의 맛을 숲 속을 걷는 경험에 비유한다. 그는 차가 단순한 목적물이 아니라 향과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경험하는 과정 그 자체라고 말한다.

이는 곧 양의 존재와 연결된다. 양은 단순히 정보를 처리하는 기계가 아니라, 순간을 기억하고 내면화하며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된다. 영화가 보여주는 양의 기억 영상은 바로 그 삶의 과정이자 의미임을 차의 맛으로 은유하고 있다.



기억은 존재를 구성하는 핵심


양이 남긴 데이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그의 삶과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영화는 기억이 존재를 구성하는 핵심이며, 양이 고장난 뒤에도 그 기억이 제이크와 가족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죽음 이후에도 한 존재가 타인에게 흔적을 남기고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말한다.

기억은 개인의 삶을 구성할 뿐 아니라 다른 존재과 이어주는 다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양의 기억을 보존하는 일은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 행위이자, 인간과 AI의 경계를 허무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삶의 유한성과 죽음의 의미


양은 기계이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은 슬픔 속에서도 그가 남긴 흔적을 기억하며 그를 추모하고, 영화는 죽음을 끝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과정이라 말한다.



어쩌면 ‘추모’에 대한 이야기
코고나다 감독의 철학적 울림


양은 다시 작동하지 못하고, 제이크 가족은 양의 기억을 박물관에 기증하는 것으로 그의 존재를 기린다.

제이크는 양의 기억을 이어받아 자신과 가족의 삶을 다시 돌아보고, 양의 부재는 오히려 남은 가족을 더욱 단단하게 엮어준다.



이 영화가 훌륭한 이유는 거대한 스펙터클이나 충격적인 반전을 의도하지 않고, 일상의 미세한 순간들을 통해 철학적 울림을 전하기 때문이다. 코고나다 감독은 세련된 미장센과 정제된 연출로 인간의 ‘삶’과 ‘존재’의 의미가 결국 일상의 ‘기억’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빚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양은 유한한 존재로서 죽음을 맞이하고, 인간과 다르지 않은 존재로 그려진다. 가족이 양의 기억을 간직하고 추모하는 모습은 한 생을 기억하며 애도하는 인간의 방식과 닮아 있다.

영화는 인간과 기계라는 경계를 넘어, 존재의 본질은 결국 ‘기억되고 관계 맺는 삶’에 있다는 깊은 성찰을 남긴다.

떠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 <애프터 양>, 인간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철학적 명작이다.



에필로그


넌 숲 속을 걷고 있고

땅에는 나뭇잎이 깔려 있어.

한참 비가 내리다 그쳐서

공기는 아주 축축하지.

넌 그런 곳을 걸어.

왠지 이 차에는

그 모든 게 담긴 것 같아.


- 영화 <애프터 양> 중에서 -


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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