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전작 <프로메테우스>가 던진 질문을 이어받아, 인간의 창조 욕망과 그로 인한 파국을 다시 묻는다.
시리즈의 두 번째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에이리언을 단순한 괴물이 아닌 인류의 오만과 기술 문명이 남긴 부산물로 해석하는 이 영화는 <프로메테우스>가 열어둔 질문 “인류는 어디서 왔는가?”에 이어 “창조된 존재가 또 다른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가?”라는 또 다른 물음을 던진다.
인간과 창조, 신과 피조물이라는 철학적 질문으로, 에이리언 신화의 근원을 조금 더 깊이 파고든 작품.
오늘의 영화 <에이리언: 커버넌트>이다.
식민지 개척을 위해 2,000명의 개척민과 1,000개의 배아를 실은 ‘커버넌트’ 호는 태양풍 사고로 선장을 잃는다. 부선장 ‘오람’이 지휘권을 이어받은 가운데, 선원들은 정착에 이상적으로 보이는 행성의 신호를 감지하고 착륙한다.
그러나 탐사 중 승무원들이 포자를 흡입하면서 새로운 괴생명체가 태어나고, 혼란 속에서 탐사팀은 <프로메테우스>의 생존자 ‘데이빗’을 만난다. 데이빗은 자신이 엔지니어들을 몰살시키고, 생명체를 조작해온 사실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의 집착은 궁극적으로 ‘에이리언’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승무원들은 차례로 희생되고, 끝까지 살아남은 ‘대니얼스’는 데이빗과의 싸움 끝에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귀환한 안드로이드가 월터가 아닌 데이빗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영화는 섬뜩한 반전이 드러난다.
데이빗은 개척민들의 배아 속에 에이리언 배아를 주입하며, 인류의 미래를 암흑 속으로 몰아넣는다.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프로메테우스>에서 이어진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과 창조자, 그리고 창조된 존재의 관계를 심화시킨다.
이 작품은 에이리언 탄생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문명과 파멸의 연결고리를 통해 생명 창조와 파괴, 인간 욕망의 그림자를 탐구하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전작 <프로메테우스>와의 연결
창조자와 피조물을 다룬 신화
에이리언 시리즈는 처음부터 ‘창조’와 ‘파괴’라는 질문을 중심에 두어왔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의 기원을 탐구했다면, <커버넌트>는 창조된 존재가 또 다른 창조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데이비드는 인간이 만든 피조물이지만, 자신을 창조한 인간보다 더 완전한 생명을 설계하려 하고, 영화는 이 지점에서 고대 그리스 신화를 소환한다.
이렇게 신을 대적한 피조물의 이야기가 에이리언 신화와 교차하며, 에이리언은 더 이상 미지의 괴물이 아닌 인간 문명의 오만이 낳은 그림자로 자리 잡는다.
마이클 패스밴더가 연기한
안드로이드 데이빗
신의 자리를 욕망한 자
데이빗은 인간(창조주)을 거스른 단순한 반역자가 아닌, 창조에 집착하며 그것을 예술 행위처럼 반복하는 존재이다. 인간(피터 웨이랜드)이 신(엔지니어)의 자리를 욕망했듯, 인간이 만든 기계(데이빗) 역시 같은 욕망을 품게 된다는 이야기로, 영화는 “창조의 욕망은 무한히 반복되며, 동시에 파괴를 낳는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특히, 마이클 패스벤더의 1인 2역 연기는 데이빗과 월터라는 서로 다른 두 존재를 극명히 대비시켜, 창조자와 피조물, 반역자와 순응자의 관계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제노모프의 첫 프로토타입
‘프로토모프’의 탄생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인간의 욕망과 오만이 만들어낸 산물, 에이리언의 기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작품이다. 데이빗의 유전자 실험을 통해 탄생된 ‘프로토모프’는 이후 우리가 익히 아는 제노모프의 특징을 갖춘 첫 번째 프로토타입으로, 생명 창조와 파괴의 상징적 존재다.
결국 ‘프로토모프’의 탄생은 시리즈 전체의 생명 창조 서사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 고리라 할 수 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공포와 철학이 교차하는 작품
영화는 전통적인 에이리언의 서스펜스, 폐쇄된 공간, 추격과 공포를 유지하면서도, 그 중심에 “창조자의 책임”이라는 철학적 질문을 배치한다. 괴수 영화의 전율 속에서도 인류 문명이 낳은 그림자를 비추며, 에이리언 세계관을 심화시킨 리들리 스콧은 SF 장르에 철학적 질문을 끊임없이 불어넣음으로써, 단순한 괴수 영화가 아닌 ‘창조와 파괴의 신화’로 확장시켰다.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시리즈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려는 시도로, 괴수 영화의 전율 속에서도 인류 문명과 창조 욕망의 어두운 뒷면을 탐구한 작품이다.
영화는 결국 “인류가 만든 괴물은 인류 자신”이라는 명제를 드러내며, 인간이 신의 자리에 오르려는 욕망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중심에 두었다.
또한, 안드로이드 데이빗을 통해서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을 넘어서는 역설을 보여주며,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를 되묻는 신화적 구조를 드러낸다. 이러한 깊이 있는 서사 덕분에 대중적 공포의 쾌감은 다소 줄었지만, 에이리언 세계관을 이해하는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된다.
인간과 신, 창조와 파괴의 신화를 재해석하며, <프로메테우스>에서 <커버넌트>로 이어진 에이리언 시리즈의 세계관을 인류 문명의 그림자로 확장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거장적 발자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프리퀄은 깊은 의미를 지닌다. 다만, 데이비드가 이루고자 했던 창조의 결말이 실현되지 못하고 3부작 기획이 무산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처럼 철학적 장대함이 엿보이는 SF 공포 시리즈 <에이리언>으로 리들리 스콧 그가 보여준 비전은 앞으로도 다시 없을 영화사적으로 길이 남을 세계관이다.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네.
부식되어 가는 거대한 잔해 주변엔
끝없이 황량하고 쓸쓸한 모래밭이
펼쳐져 있을 뿐...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