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 May 02. 2024

평생 들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 인생의 색깔은 제 몫의 명찰이 없어

 이따금씩 생각했다. 세상이 말하는 보통이라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아예 기준점 자체가 다르게 태어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어떤 이는 그 기준이라는 것에 사로잡혀 보통에 가까워지려고 하거나 혹은 보통인 척을 할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가 그랬다.


 기억이 아득해질 만큼 어렸을 때를 떠올려보면, 나는 말 그대로 사고뭉치에 육아 난이도 최고치에 달하는 아이였다.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나 나이가 같은 여동생이 있었고, 그 애는 나와 성별을 제외한 모든 게 정 반대였다. 얌전하고 말도 잘 듣고, 떼를 쓰지도, 잘 울지도 않았다. 피부 색도 달랐다. 나는 까맣고 동생은 새하얬다. 목소리도 컸고 고집도 내가 더 셌다. 까만 곱슬머리에 땀이 맺힐 정도로 머리숱이 많던 나는 늘 짧은 숏컷이었고, 동생은 단정하게 기른 머리를 묶거나 가끔 예쁘게 땋기도 했다. 나보다 더 여자아이 같은 여자아이였다.


 우리 부모님은 그런 나를 머시마 같다고 했다. 사실 그건 애정 어린 표현에 불과했다. 전형적으로 보수적인 60년대생 아버지에 어머니였지만, 내가 머시마 같이 구는 걸 고치려고 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인형보다 장난감 총이나 자동차를 더 좋아했던 나를 위해, 아버지는 여자아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장난감을 직접 사다 주시기도 했다. 목수였던 아버지는 종종 야구배트나 블록을 직접 만들어주시기도 했는데, 그 야구배트를 휘두르고 있으면 어머니가 투수가 되어 테니스공을 던져주시기도 했다. 긴 머리에 늘씬한 몸매를 가진 사람모형의 인형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더니, 동생은 기꺼이 자기 인형의 머리카락을 내주었다. 짧게 자른 머리를 가지게 된 인형을 보며 함께 낄낄거리며 웃기도 했다.


 이렇듯 가족들은 어린 나에게 '여자다운'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주지 않았다. 그건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내가 처음으로 투블럭 컷을 했을 때도 드디어 군대에 가는 거냐며 까끌거리는 내 뒷머리를 신기해하셨고, 남자친구 한번 사귀지 않는 나에게 의문을 표하신 적도 없다. 아버지 시점에서 나는 단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못한 딸이 되었지만, 무슨 생각이신지 결혼 안 하냐는 말씀도 없으시다(가끔 여태껏 낸 축의금만 따져봐도 차 한 대 값이라며, 한번 다녀오라더라도 일단 가보라는 무서운 농담을 종종 하시지만). 그런 점이 지금도 마냥 감사하다. 당시 가족은 어린 내 세계의 전부였다. 그 세계에는 국경도, 차별도, 남녀 구분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어린 나의 내면은 그리 자유롭지 못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작아졌고, 말수가 점점 줄었으며 누구의 눈에도 띄기 싫어했다. 특히 놀리기 쉬운 이름 때문이었는지 짓궂은 남자아이들에게 종종 놀림받거나 하는 일을 극도로 싫어했다. 한때는 남녀 할 것 없이 모두를 아우르던 골목대장이었지만, 어느새 반에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할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다행히 점점 고학년이 될수록 원래의 성격을 조금씩 되찾긴 했지만, 본래의 활발한 성격으로 완전히 돌아오진 못했다. 여자아이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더욱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소심한 아이였다. 지금 내 성격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골목대장이었던 그때와 비슷하다.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본래의 성격이 변했다기 보단 감추고 싶었던 것이다. 이성과 동성을 바라보는 시각과 감정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동성에 대해 또래 친구들과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던 나는, 그 비밀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감추고 싶었기에 누구의 눈에 띄어서도 안되었다. 보통의 성격과 보통의 성향으로 위장하여 남들 사이에 숨어야만 했다.


 초등학생이 되고나서부터 나는 빽빽한 긴 머리를 하나로 꽁꽁 묶고 다녔다. 머리숱이 많은 건 여전했지만, 다시 숏컷으로 자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다른 많은 여자아이들이 그랬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내가 어떻게 하고 다니던 간섭하지 않으셨지만, 어느 순간 긴 머리를 유지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짧게 자르고 싶진 않았다. 대신 한 번도 치마를 입지 않았다. 긴 머리를 숨기고 싶어서 당시 유행하던 캡모자를 쓰고 다닌 적도 있었는데, 학교에서 모자를 쓰고 다니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긴 머리가 어울리지 않았음에도 별다른 방법 없이 선호하지도 않는 스타일을 고수해야 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어색했다. 못나지 않은 외모임에도 스스로가 못나보였다. 그게 점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새 나는 예민하고, 주변 눈치를 살피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개성 없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첫 남자친구가 생겼던 그 해에 같은 반이었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까칠한 성격에 말투도 불친절했지만, 또래보다 어른스러운 분위기 같은 게 있었다. 어른스럽다고 느낄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전국에 걸쳐 친구가 있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당시는 인터넷 보급이 그리 잘 되어있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터넷 커뮤니티를 한다는 자체가 신기했고, 겨우 13살밖에 안된 어린이가 인터넷으로 친해진 친구들이 전국에 있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사실 이 모든 이야기는 그 애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는 아니었다. 당시 나와 단짝이었던 여자아이가 그 애와 친한 사이었는데, 나는 단짝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커뮤니티인지는 몰랐지만, 그저 유명 가수의 팬클럽 정도로 생각했다.


 학교가 끝난 후 단짝친구의 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친구네 집에는 무려 인터넷이 연결된 최신 컴퓨터가 있었다.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싶었지만, 친구는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나에게 질문을 하나 했다. 혹시 '이반'이라는 단어 알아? 아니. 그게 뭔데? '일반' 적이지 않은 사람을 '이반'이라고 한대. 그럼 '이반'적인 건 뭔데? '일반' 적으로 나와 다른 성이 아닌 같은 성별을 좋아하는 사람을 '이반'이라고 한대. 즉, 동성애자들을 말하는 거지. 그 얘기 누구한테 들었어? 그 애가 알려줬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너도 말하면 안 돼. 그 애는 어떻게 그런 걸 알았대? 그 애가 하는 커뮤니티 있잖아. 그런 사람들이 하는 커뮤니티래. 그럼 그 애도 동성애자인 거야? 그렇겠지. 이미 사귀는 사람도 있다던데. 너는 그 애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 이상해. 그렇지만 재밌잖아. 우리 반에 동성애자가 있다니.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두근거렸다. 동시에 갑자기 덜컥 무섭기도 했다. 동성애자라니. 말로만 듣던 그 무시무시한 동성애자가 우리 반에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그 단어가 무섭게 느껴졌을까? 나 역시 동성을 좋아하면서. 아니,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야. 그냥 남자아이들보다 여자아이들이 좋을 뿐이야. 아직 연애감정을 잘 모를 뿐이야. 다들 말은 안 해도 나처럼 혼란스러운 친구들이 있을 거야. 그런데 내 단짝친구는 그 애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혹시 나도 그렇게 생각할까? 내 고민을 말한다면, 내 친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며칠 후 그 애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퍼졌다. 나는 내 단짝친구를 의심했지만, 친구는 나 외에는 절대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 애가 스스로 몇 명의 친구에게 자랑을 하고 다니다가 소문이 퍼졌던 것이다. 그 소문은 드라마처럼 빠르게 퍼져서 파국에 치닫는 그런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반 여자아이들은 전국에 친구들이 많은 것을 부러워했고, 그 애는 또래 친구들과 다른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남자아이들은 레즈비언이라는, 동성애자보다 더 무시무시한 단어로 그 애를 공격했지만, 그 애에겐 이미 또래 남자애들은 그냥 애들일 뿐이었다. 그게 조금 부럽기도 했다. 그 사건이 있던 후 몇 번을 고민했지만 결국 나는 아무에게도 내 얘기를 털어놓지 않았다. 그 애와 친해졌을 때도 말하지 못했다. 그 애에겐 고민이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큰 고민인 그 비밀을, 같은 무게로 비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애는 동성애자가 아니었다. 당시 동성애자들이 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소통하다 보니 다소 자극적인 내용이 많았는데, 그 애는 호기심에 동성애자로 위장하여 활동했다고 한다. 그렇게 전국에 인터넷 친구가 생겼고, 그게 그 애에게는 또래 아이들보다 앞서나간다는 일종의 우월감을 맞보게 했던 것이다. 이 사실 역시 내 단짝친구에게 듣고 알게 되었다.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나 같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전국 어딘가에 있다고는 하지만 내 주변에는 나 혼자였다. 혼자 그들을 찾아 나서기엔 어린 나에겐 너무 멀고도 험한 여정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롭고 고요한 나의 세계에서 절대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아주 잠깐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빛이 아주 꺼져버렸을 때, 더 이상 어떠한 빛도 희망이라 여길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평생 들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가을방학_샛노랑과 새빨강 사이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데 첫 연애는 남자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