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귀골스러운 됨됨이
똥고집 막냇동생이 사무실로 연락이 왔다. 진즉에 연락해 줄 것이지 오후 두 시가 넘었는데 이제 와서 성북동 길상사에 가잖다.
양치 후 리본핀 하나 꼽아주고서 청바지 차림으로 전철 1호선 역으로 향했다. 인천시청역 5-3구역에 먼저 나오더니 내 가방에서 책부터 꺼낸다.
가족은 모두 그렇다. 회사 부이사장인 김재용 변호사 시는 내게 주면서 아침 발행 내 글을 추천해 줬는데 쳐다도 안 본다. 읽어주지 않는다.
이성지간이 아니면 어떠랴. 사위가 여기여기 가자고 하면 어떠랴. 옆에서 말도 못 붙이게 하는 막냇동생과 출생 후의 초행길. 길상사로 가는 길. 부평역에서 환승 동대문역까지는 자리에 앉아서 간다. 여기서 4호선 환승해서 두 정거장인 한성대에서 하차한다. 2번 마을버스로 아홉 번 가면 목적지인데 구간이 다 짧다. 나도 책 한 권을 펼쳤다. 가장 불편한 동생과의 동행.
그래도 쫓아나섬은 막냇동생도 머리 식히고 나도 가슴에 뭣 하나 담아 오게.
길상사는 백석시인과 길상사의 터주 김영한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도 있지만 문학계는 이를 사랑이 아니라며 조작되고 윤색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실제는 모르겠다. 백석은 명문학교 여성들과만 관계를 맺었다고 하는데 김영한은 백석을 연인이었다고 말했으며 중앙대 영문학을 졸업했다. 내가 보기엔 백석은 이쁘장한 형이다. 내 친구 꽁춘이가 따르기 좋은 스타일이며 요즘의 ○○씨처럼 그런 관계를 맺은 건 아닌지 의구심은 든다. ᆢ
불필요한 것을 가지지 말라는 비움, 무소유를 깨우쳐주신 법정스님이 시주받아 길상사 사찰을 짓고 진향이란 이름의 기생이었던 김영한과 법정스님 모두 이곳에서 별세하여 터주는 산골 하여 뿌려졌고 스님은 평소에 애착을 가지셨던 곳에 한 줌으로 묻히셨다.
진영각 안에 법정스님 낡은 의류와 유품 몇 점이 있으나 사진 촬영은 엄금이라서 속으로 기도하고 합장으로 끝냈다. 유품 중에 정말 필요를 느끼셨던 탁상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스님 살아생전의 일화다. 예불 마치고서 스님은 기거하시는 방에 들어오니 도둑이 들었음을 아셨다. 생필품 몇 가지와 탁상시계를 가져갔다. 불편함을 못 이겨 며칠 후 청계천 시계방에 들렀는데 그 점포에 스님 방에 있던 탁상시계가 있지 않았는가. 본래는 내 시계인 것을 천 원을 주고 사서 제자리에 갖다 놓으시며 내게도 잃어버릴 물건이 있었는가. 나는 불필요한 용품을 욕심처럼 갖고 있었는가 적잖이 부끄러워하셨다. 붉은 보자기 하나만 위에 덮고 열반에 드신 스님의 방송을 진지하게 보았었다.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여 연등이 화려하게 달려있으나 사찰은 고택 같은 분위기였다. 기독교와 별개로 카톨릭교와는 친교 하는 모습을 방송에서도 봐왔기에 수녀님이 108 염주를 목에 거시고서 출행하셨는데 아무렇지 않았다. (손에 거는 54개 미만의 염주는 단주다.)
모카레몬 작가님하고 지금 때쯤 이곳 위쪽에 있는 조셉의 커피나무에 와서 앤티크 한 분위기를 내며 웃음을 많이 가지려고 했는데 기회를 못 잡았다. 갑자기 오후에 연락이 와서 부랴부랴 성북동을 찾게 되어서였다. 그런데 차량 없이 혼자서 오기란 쉽지 않은 길이기도 하다.
굳이 절이란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 이곳은 살면서 서너 번 와 봤는데 조셉의 커피나무도 그렇고 운치가 꽤 있다. 대사관이 밀집해 있고 외교차라고 써 붙인 외제 차들이 퇴근 시간 맞게 수시로 통행한다. 고급진 동네라서 몇백억을 밟아보니 좋은가. 글쎄ᆢ
평소에 법정스님을 위인으로 존경했기에 합장도 하고 명당의 기운을 여기저기서 받았다. 스님들 숙소와 템플스테이가 방갈로처럼 깔끔하게 해 놓은 걸 내려가는 길에 보면서 막냇동생이 실금해졌다. 스님이 계신 절에 와서 마음 수양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눈 수술 끝나면 안국동의 창덕궁과 노무현시민센터와 북촌 한옥마을에 가보자고 한다. 그때도 목전에 도착하면 언니 언니 하며 잘 따르겠지.
같이 다니는 이와 밥을 같이 먹는 이는 편해야 살로 간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다가 정작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산다는 삶의 방향에 제안해 주신 스님 말씀이 가슴을 울림 한다.
늦은 커피는 삼가야 해서 조셉의 커피나무에도 사랑이야기가 있으며 커피 맛도 좋은데 들르지 못했다. 명당을 밟아보고 기도하는 도량의 마음으로 다녀와서 발걸음은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