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 어긋난 시선이 머문 곳

by bookground

그날 나는 그저 공연 하나를 보러 간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오… 오… 오… 잠깐만, 잠깐만.”


내 목소리가 내 귀에 닿기도 전에 부서졌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말을 해야 하는데, 혀가 말을 따라오지 못했다. 시선을 핸드폰에 머물러 채,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어서 아무 의미 없는 소리만 반복해서 내뱉고 있었다. 숨이 가빠졌고,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한참을 핸드폰을 들로 그대로 멈춰 섰다. 마치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처럼, 문장을 읽고, 다시 읽고, 또 읽었다. 내가 보지 않으면 글자가 사라질까 봐 화면을 꾹 누른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어떻게.... 이거 어떡해...."

"뭐가 어떻게인데?"


나는 대답 대신 핸드폰 화면을 내밀었다.


[공연 초대권에 당첨되셨습니다.]


소영이는 화면을 받아 들고 잠시 말을 잃었다. 그 짧은 침묵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와, 진짜야?”

“응. 나도 안 믿겨.”

“그거 네가 엄청 보고 싶어했던 공연이잖아.”

“맞아. 아무리 해도 못 구하던 거.”


나는 핸드폰을 다시 가져와 화면을 확인했다.

날짜, 시간, 좌석 번호.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 보듯 확인했다. 숫자들이 이상할 정도로 또렷했다. 현실이라는 확인하고 싶어서.


“나 진짜 이 공연 보러 가는 거야?”

“그러니까.”

“나 이 공연 정말 보고 싶었단 말이야. 내 최애 배우가 나온다고. 초대권 2장 준대. 너도 같이 가자.”

“그럼 난 너무 좋지. 가자.

소영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오랜만의 문화생활 좀 해 보자. 네 덕분에.”


그 순간, 웃음이 터졌다. 이유도 없이, 멈출 새도 없이.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가 갑자기 멈췄다가, 다시 웃었다. 웃음이 몸 밖으로 넘쳐흘러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집 안을 서성였다. 왜 그렇게 집 안을 돌고 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감각만 유난히 또렷했다. 손은 여전히 핸드폰을 쥔 채였고, 심장은 계속 빠르게 뛰고 있었다.

막이 오르기 직전, 객석 전체가 조용히 숨을 고르는 시간처럼.


공연은 1주일 뒤였지만 나는 이미 그 자리에 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객석을 바라보고 있었고, 곧 켜질 조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나의 심장은 이미 커튼콜까지 다 보고 나온 사람처럼 뛰고 있었다.




공연 시작 일주일 전. 달력 위의 날짜는 생각보다 느리게 가고 있었다. 그 시간이 초초하여 나는 인터넷에 떠도는 모든 리뷰를 찾아 읽고 있었다. 그 문장들 사이에서 나는 ㄴ공연을 미리 살펴보려 애 섰다.

시놉시스를 몇 번이나 읽었고, 어느 장면에서 숨을 죽여야 하는지, 어느 대사에서 박수가 터지는지까지 숙지하고 또 숙지했다. 예습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나는 그 공연을 마음속에서 여러 번 먼저 보았다.


공연 날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자주 일정표를 확인했고, 휴대폰에 저장된 초대권 문자를 괜히 다시 열어 보았다. 그 문자를 볼 때마다 심장은 조금씩 다른 속도로 뛰었다.


공연 당일,

나는 공연시간보다 훨씬 일찍 집을 나섰다. 공연 시간이 3시간이나 남아 있었지만, 괜히 마음이 급했다.

그 시간에 가지 않으면 그 공연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만 같은 막연한 예감 때문이었다.


공연장 앞 카페에서 소영이를 기다리면서 창밖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분명 오가고 있었지만, 그 장면은 내게 제대로 닿지 않았다. 흑백 TV 화면처럼, 그리고 누군가 슬로 모션 모드를 켜 둔 것처럼 움직임은 지나치게 느리고 둔했다. 발걸음은 늘어졌고, 표정은 흐릿했으며, 소리는 모두 지워진 것 같았다. 그 시간 속에서 나만 정상 속도로 숨을 쉬고 있는 느낌이었다.


“왜 지금에서야 와?”

내 목소리에는 들뜸과 짜증이 조금 섞여 있었다.

“지금 공연 시간 1시간 전이야. 이 정도면 빨리 온 거지.”

“가자, 요 앞이 공연장이야.”

“야, 나 방금 막 왔어.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가자.”

“늦는다 말이야. 빨리 가서 사진도 찍어야 하고....”

결국 소영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포장한 채 나를 따라나섰다.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공연장으로 향하는 길 내내 따라왔다.


극장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캐스팅보드 앞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최애 배우, 그가 출연하는 공연.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라 숨이 잠시 멎는 것 같았다.


좌석에 앉아 프로그램 북을 펼쳤지만 글씨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지만 그 소리마저 내게 닿지 않고 그대로 튕겨 나갔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객석이 조용해지자 그제야 내 심장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박동은 규칙적이지 않았고, 한 번 뛸 때마다 머리를 띵하고 두드리는 것 같았다. 마치 이 공간에서 나만 너무 크게 살아 있는 것처럼.

공연이 시작되지 나는 반사적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생각보다 가까운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무대 중앙에는 내 최애 배우가 서 있었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얼굴. 그가 등장하자 객석 여기저기서 조용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박수가 나오는 타이밍도, 웃음이 터지는 타이밍도 어긋나지 않았다. 모든 장면이 예상 가능한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내 시선은 자꾸 다른 곳으로 향했다.


주인공의 바로 뒤,

조명이 완전히 닿을 듯 말 듯 한 그 자리. 빛과 그림자의 경계에 서 있던 한 배우에게로.


대사는 많지 않았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도 아니었다.

그는 주인공의 말을 받아 다음 장면으로 넘기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럼에도 장면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말을 아끼는 대신, 무대의 중심을 묵묵히 붙들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가 움직일 때마다 무대의 공기가 먼저 바뀌는 것 같았다. 주연 배우가 감정을 터뜨릴 때보다, 그가 아무 말 없이 동작 하나, 발걸음을 한번 옮길 때 나는 더 오래 숨을 멈추고 지켜보게 됐다.

연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그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대사를 건네는 것도 아닌데, 시선을 한 번 스치기만 해도 그 순간이 나를 향해 열리는 것 같았다.

그가 고개를 돌리는 짧은 순간마다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한 장면을 건너뛴 사람처럼 마음이 박자를 놓치고 있었다.

장면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지만, 내 시간은 그가 멈춘 자리에 붙들려있었다.


'저 배우는 누구지?'


공연 중에 나는 처음으로, 공연과 상관없는 생각을 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이 시작되자 객석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나는 한 박자 늦게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끝까지 치지 못했다.

주연 배우가 나오기 직전,

공연 내내 내 시선을 붙잡고 있던 그 배우가 무대 위로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그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순간, 숨이 멎는 것처럼 박수도 함께 멎어 버렸다.

손은 멈췄는데 손바닥은 뜨거웠다.

힘껏 치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열이 남아 있었다.


극장을 나와 나는 프로그램 북을 다시 펼쳤다. 배우들의 이름을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훑어 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이름을 찾았다.


알베르트 역, 전태일.


‘아, 전태일이구나.’


다른 공연을 보러 갔을 때 몇 번 이름을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 배우의 연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나는 이름을 다시 한번 읽었다. 확인하듯, 괜히 한 번 더.


옆에서 소영이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지자 나는 서둘러 프로그램 북을 덮었다.


“그 주연 배우 말이야.”

“응?”

“오늘 연기 진짜 좋지 않았어?”

“… 좋았지.”


소영이는 내 대답을 기다리다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이렇게 시큰둥해?”

“시큰둥한 건 아니고.”

“그럼?”

“그냥.”


소영이가 밥을 먹자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날은 그냥, 바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공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말로 옮기는 순간 이 감정이 너무 분명해질 것 같아서.


그날 밤, 나는 그 감정을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채로 조용히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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