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나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 왔을까?
한국에 태어난 것, 주민등록증에 박힌 출생연도와 생일, 태어나 보니 이미 결정되어 있던 내 부모
이 모든것들은 나의 선택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주어졌다.
누군가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부터 자신의 운명은 결정된다고 한다. 과연 그 말은 사실일까?
어떤 경우는 맞고, 어떤 경우는 틀리다고 생각한다.
요즘같은 시대에 부모의 경제적 수준과 교육 수준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하다는 말은 어느정도 맞는 것 같다. 서울대 의대생의 부모는 대부분 강남에 살며 전문직을 갖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치열한 경쟁속에, 1-2점이 당락을 결정하는 대학 입시에서는, 사교육 시장에 얼마나 노출되느냐에 따라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아버지의 무관심과 할아버지의 재력이 아이의 성적을 결정한다"는 말처럼, 경제력이 학력을 결정하는 건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부모의 원대한 계획에 의해 키워진 아이들은 대학에 가서도, 심지어 그이후까지도 부모의 선택에 의해 의해 인생을 사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땠을까? 역시 반항과는 거리가 먼 사춘기와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을 갔다. 처음에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수강신청을 직접해야 하는 거였다. 늘 정해진 수업만 듣던 사람이 전공 필수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게 어려웠다.
우리 부모 세대도 그러한 교육을 받지 못해, 자신의 자녀를 그렇게 키울 수 밖에 없었겠지만,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선택을 강요하며 우리를 키웠다.
선택을 존중하고 그 선택에 대한 결과도 오로지 네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가르쳤으면, 지금과는 조금 더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물론, 부모를 원망하고 지금의 내 모습이 모두 부모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인생은 유기적으로 흐르고 지금의 내 모습은 과거의 내가 한 선택들의 집합적 결과일 것이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텐데 하고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일이 정말 많다. 지금도 그 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너무 쉽게 간과한 일들이 이렇게 큰 결과가 낳을수 있을지 그때는 몰랐다.
마치 단추를 처음에 잘못 잠그면 계속 어긋나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살아 왔을까?
중요한 시점에 인생의 선택들. 학교, 전공과목, 친구, 사람, 일, 직업, 시간, 감정의 반응들...
매일의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다.
운동을 할까 말까?
이걸 먹을까 먹지 말까?
이 시점에 무례한 저 사람에게 내가 화 났다는 걸 표시할까? 말까?
어떤 선택은 의지적으로 했고, 어떤 선택은 나보다 강한 힘에 눌려 내 인생의 결정을 고스란히 두손에 담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이기에 실수도 많이 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좋은 방향으로 선회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때로는 우리가 잘못 잠근 단추를 처음 부터 다시 잠글 수 없다면 가감하게 도려내는 결단도 필요하다.
이성적일때 감정적이었고, 지극히 논리적이어야 할 순간에 말도 안되는 결정을 하고 살아온 나에게 내 선택은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선택의 오류를 줄이려면, 깊이 사고하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나을지 예측하며 인내하며 감내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했다.
"골치 아픈 문제는 내일 생각하지 뭐." 이렇게 미루고 미룬 결과들이 지금의 내 모습을 결정했다. 또 어떤 부분은 너무 성급하게 결정해 버린 것도 있다.
과거의 선택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할까?
지금은 핑계대기엔 너무 많이 인생을 살았고 경험치가 쌓여있다.
때문에 지금부터의 선택은 좀 더 신중해야 하며 지혜로와야 한다.
선택의 주도권을 남에게 넘겨서도 안되며, 순간의 실수나 겉의 화려함과 상황에 밀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면서 더 이상을 살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내면 깊이 들여다보며, 조급함 대신 깊은 사고를 통해 선택의 폭을 줄이고 성급한 결정을 뒤로 미루는 것. 선택을 했다면 최선의 결과가 나오도록 노력을 하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많은 선택을 통해 이 자리에 왔고, 다시 미래의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 나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 왔을까?" 에세이 제목을 생각하게 하고, 이런 글을 쓰게 한 어떤 작가분을 만났다.
그녀는 고아였고 아동 학대를 받았으며 그로 인한 자살 시도와 상처가 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가장 좋은 최선의 선택을 하고, 옳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다.
최근 10년 동안 약 3,400권의 책을 읽고 긍정적인 마인드와 도전 정신, 꾸준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킨 사람이었다.
이분 앞에서 감히 자신의 운과 선택을 핑계 삼을 수 있을까?
부모는 선택할 수 없고, 가장 최악의 선택지를 어쩔 수 없이 받았지만 그 선택을 옳은 방향으로 틀고 자신이 주도권을 갖고 인생을 선택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한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 내가 쓴 에세이는 그래서 내 자신의 반성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전안나 작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아래의 내용을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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