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로 접어들어 마시는 티도 아침과 동일하게 2종류였다. 먼저 시음해본 티는 바로 루이보스 바닐라였다.
루이보스 바닐라의 찻잎. 뒤에는 그린 자스민트의 찻잎이다.
마시기에 앞서그린 자스민트 때처럼 작가님께서 그릇에 루이보스 티의 찻잎들을 담아 돌리셨고향을 맡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전시 오픈일 때 이미 시향을 해봤지만, 다시 맡아보니 감회가 있었다. 그때와 똑같이 연하고 은은한 바닐라향이 감돌았다.
찻잎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차로 우릴 때와는 다른 이것만의 정취가 있었다.
루이보스 바닐라는 천연 바닐라향과 천연 크림향을 가미한 루이보스 티다. 마시기 전, 차의 향을 맡아보니 찻잎을 시향했을 때처럼 바닐라향이긴 했는데 그보다는 조금 더 묽은 아이스크림 같았다. 한 모금을 마시자 뜨거운 물 온도와 더불어 향처럼 옅은 바닐라 아이스크림 맛이 났다.
찻잎을 맡아볼 때였는지, 차를 마실 때였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작가님께서 내게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셨고 그때 아이스크림 같다고 답을 했다.
오후의 두 번째 티는 서울 블렌드였다.
티 라인에 서울 블렌드가 들어간 것을 보며 이전에 아이코닉 티 테이스팅 세션에서 미리 시음을 해봤기에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규 티라는 점으로도 상징성으로도 이번 테이스팅 라인에서 빠진다면 아쉬웠을 터라 역시나 싶기도 했다.
이전 두 차처럼 시음 전에 원료의 시향을 했다. 그전에 마셔서 맛과 향은 조금 익은 감이 있지만, 원료를 가까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시향기 때 원료의 향을 맡아보고 틴 안에 들어있는 걸 보긴 봤지만, 아주 짧은 시간이라 자세히 관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찬찬히 들여다볼 기회가 있어서 좋았다.
서울 블렌드는 엘더베리 꽃, 히비스커스, 수레국화 꽃잎의 꽃들과 사과 비트, 딸기 비트, 포도의 과일들이 들어갔다. 여기에 블렉베리 잎과 로즈힙 열매 껍질을 넣고 천연 딸기향을 가미한 카페인 프리의 Exclusive 티다. 이렇듯 꽃과 과일이 들어간만큼 원료의 비쥬얼이 예뻐서 자세히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다채롭게 들어간 서울 블렌드. 그런만큼 예뻤고,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광경에 눈이 즐거웠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마시게 될 티 라인은 어떤 티들로 구성될지 궁금했는데, Iconic Tea 라인의 티나 신규 티가 모두 서울 블렌드 1개 뿐이었다는 게 아쉬웠다. 대체로 에디션 덴마크 때부터 있었던 기존 티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거 같았다.
작가님께 서울 블렌드 외에 다른 Iconic Tea 라인의 티들을 마셔보셨는지 여쭤봤다. 그러자 당연히 다 마셔보셨다면서, 에디션 덴마크 측으로부터 10개의 신상 차들을 받아서 마셨다고 답해주셨다. 내가 알기로는 이번 한국 공식 런칭을 하면서 Iconic Tea 라인의 5종류와 Core Tea 라인의 2종류가 신상이라, 작가님께서 마셔봤다는 티들이 궁금했고 구체적으로 듣고 싶었다.그런데 이건 티를 마시느라 아쉽게도 물어보지 못했다.
서울 블렌드와의 재회는 오묘한 감흥이 일었다. 시음회 때 마셔봤지만 이렇게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만나서 마셔볼 수 있어 좋았다. 서울 블렌드와 의도치 않게 여러 만남을 갖게 되었는데, 그런 경험들이 좋았던 거 같다. 천연 딸기향을 가향해서 그런지, 향기에 딸기가 가장 두드러졌다. 맛 역시 은은한 딸기맛이 감돌았는데 전에 마셔봤던 때와 동일했다.
테이스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5종류의 티들을 전부 똑같은 잔으로 마셨다는 거였다. 그전의 아이코닉 티 테이스팅 세션의 경우 티마다 다른 잔을 준비해서 각각의 풍미를 뒤섞임 없이 그대로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같은 잔으로 마시다보니, 이전 티와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전에 마셨던 찻잎들이 그대로 남아있게 되는 경우도 생겨서 다음 티를 마실 때 조금 난감했다.
남은 찻물을 버릴 수 있도록 따로 큰 접시 비슷하게 용기가 있긴 했으나, 너무 앞쪽에 놓여있었고 토크와 더불어 찻잎을 시향하고 차를 시음하는 과정이 금방 지나가다보니 더 버릴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서울 블렌드를 마실 때쯤이면 아예 멀리 구석 쪽으로 치워져 있어서 이용하기가 더 어려웠다.
위의 2개의 사진은 모두 서울 블렌드를 찍었지만, 찻잔 속 찻잎들은 그전에 마신 루이보스 바닐라의 남은 찻잎들이다. 가능하면 서로 다른 티의 찻잎과 차가 섞이질 않기를 바랐으나, 처리하기가 어려워서 불가피하게 서울 블렌드를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아쉬운 점은 하나 더 있었다. 아이코닉 티 테이스팅 세션에서는 티들을 5종류나 마시다보니 맛이 섞이지 않도록 탄산수를 미리 준비해서 입을 씻어낼 수 있게끔 했다. 이번에도 5종류의 차들을 마셔서 그런 준비가 되어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미리 생수를 가져가서 맛이 섞이지 않도록 중간중간 마시면서 시음을 했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이때쯤 작가님께서 본인의 경험담도 풀어주셨던 거 같다. 코로나 시절이라 다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지인들이 작가님께서 차를 좋아하시는 걸 알고 자녀들에게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재료들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마음대로 차를 블렌딩해보라고 하셨고, 저마다 개성적이고 자유롭게 차를 만들어서 하나도 같은 게 없었다고 하셨다.
서울 블렌드는 다른 티들과 달리 한 번을 더 마시게 되었다. 붉은 기가 더 두드러지도록 진하게 우려내서 한 번 더 마셨는데, 그전에 마셨을 때는 연한 딸기향이 주를 이뤘다면 좀 더 우려내서 그런지 약간의 신맛도 함께 느껴졌다.
궁금한 것이 있어 질문을 했는데, 이에 대한 것과 마지막 남은 가을 밤의 티는 다음 편에 이어 쓰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