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흔적만 남은 땅
태백산맥이 동쪽을 굳게 감싸고, 낙동강이 대지를 가로지르며, 동해와 남해의 너른 해안선이 열린 바다를 향해 뻗어 있는 경상도. 이 지형적 구조는 수천 년 동안 경상도 사람들의 삶과 문화, 산업 구조를 형성해 왔다.
경상도의 지리적 특성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태백산맥 동쪽 해안을 따라 형성된 항만과 평야 지대.
둘째, 낙동강 유역의 넓은 분지와 평야 지대.
셋째, 남해안을 따라 발달한 복잡한 해안선과 천연 항만이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은 근대 산업화 시대에 경상도를 한국 제조업의 중심지로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삼국시대 신라의 중심지였던 경주를 제외하면, 고려와 조선시대에 경상도는 정치적 중심지와 멀리 떨어진 변방 지역이었다. 한양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에서,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으로 가로막힌 경상도는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상대적 소외를 경험했다.
그러나 근대 산업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지리적 '소외'는 오히려 '기회'로 전환되었다. 바다를 향해 열린 경상도의 지리적 조건은 대외 무역과 중화학공업 발전에 이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내륙 중심의 전통 경제에서는 불리했던 경상도의 지리적 위치가, 해양 중심의 근대 경제에서는 오히려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는 '지리는 운명이다'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같은 지리적 조건이라도, 시대와 산업 구조에 따라 그 의미와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조선시대에 '변방'이었던 경상도가 산업화 시대에 '중심'이 된 것은, 지리적 조건의 의미가 시대에 따라 재해석된 대표적 사례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 발전 전략은 '바다를 통한' 세계 시장 진출이었다. 원료를 수입하여 가공한 후 완제품을 수출하는 가공무역 구조에서, 항만의 존재는 결정적인 이점이었다. 경상도의 자연 항만들은 이 전략의 핵심 기반이 되었다.
부산항은 일제강점기부터 한반도의 주요 무역항으로 기능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는 임시 수도로서 정치·경제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후에도 부산은 한국의 주요 수출입 관문으로 자리 잡았다.
울산, 포항, 마산, 진해 등 경상도 해안을 따라 발달한 항만 도시들은 수출 주도 산업화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이들 도시의 성장은 정치적 결정이나 인위적 개발의 결과라기보다는, 지리적 조건과 산업화 전략이 맞아떨어진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특히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은 경상도 해안 지역의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철강,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은 넓은 부지와 해안 접근성을 필요로 했다. 경상도의 해안가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켜 주었다. 포항의 제철소, 울산의 자동차·조선·석유화학 단지, 창원의 기계공업단지 등은 모두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결과였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적 고려도 작용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지리적 조건이 이러한 산업 배치를 가능케 했다. 만약 경상도가 해안선 없는 내륙 지역이었다면, 아무리 정치적 결정이 있었다 해도 중화학공업 중심지로 발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경상도의 산업화는 지역 내부의 불균형을 심화시켰다. 해안 공업 지역은 급속히 성장한 반면, 내륙과 산간 지역은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뎠다. 이러한 불균형은 인위적 차별이나 정책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지리적 조건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경상도의 산업 발전은 주로 해안을 따라 이루어졌다. 부산, 울산, 포항, 마산, 진해 등 해안 도시들은 항만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급속히 성장했다. 반면, 경북 북부의 안동, 영주, 상주 등 내륙 지역과 경남 서부의 진주, 함양, 산청 등 지리산 주변 지역은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뎠다.
이는 지리적 조건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해안 지역은 항만을 통한 수출입이 용이하고, 대규모 공장 부지를 확보하기 쉽다는 이점이 있었다. 반면, 내륙 지역은 물류 접근성이 떨어지고, 산지가 많아 대규모 산업 부지 확보가 어려웠다.
경상도 내에서 1인당 지역 내 총생산(GRDP)은 울산이 가장 높고, 경북 북부와 경남 서부 지역이 가장 낮다. 이러한 격차는 '차별' 때문이 아니라, 지리적 조건이 산업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지리적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경북 북부 지역에도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교통 인프라를 개선하는 등의 노력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역 간 격차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안동, 영주 등 경북 북부 지역에 조성된 산업단지의 대부분은 분양률이 저조하거나, 입주 기업의 가동률이 낮은 상황이다. 이는 지리적 제약을 인위적으로 극복하려는 시도의 한계를 보여준다.
경남 서부의 진주, 사천 지역에 조성된 항공산업 클러스터 역시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물류 인프라와 연관 산업 부족 등 지리적 제약이 여전히 큰 장벽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리적 조건을 무시한 '중구난방' 개발의 한계를 보여준다. 아무리 정책적 의지가 있더라도, 지리적 특성에 맞지 않는 개발은 지속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북 북부와 경남 서부의 많은 지역이 이미 '지방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젊은 인구가 일자리와 교육 기회를 찾아 대도시나 수도권으로 유출되면서, 농촌 지역은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다.
이러한 지역 소멸은 '문제'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은 산업 구조 변화와 도시화라는 세계적 흐름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농업 사회에서 공업 사회로, 다시 정보 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인구의 도시 집중과 농촌 공동화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미국의 중서부 농업 지역, 일본의 지방 소도시들, 유럽의 농촌 지역들은 모두 인구 감소와 고령화를 경험했다. 이는 '문제'라기보다는 산업 구조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경상도의 지역 소멸 현상을 무조건 막으려는 노력보다는,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효율적인 국토 관리와 남아있는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집중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접근일 수 있다.
앞서 전라도 편에서 상세히 다루었듯이, 포퓰리즘적 지역개발은 한국 국토개발의 고질적 문제점이다. 경상도 역시 이러한 현상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특히 지역주의 정치와 맞물려 독특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경상도와 전라도 간의 인위적 경쟁 구도는 불필요한 중복 개발의 원인이 되었다. '전라도에 있으면 경상도에도 있어야 한다'는 식의 논리가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균형 발전'의 명목 하에 추진된 개발 사업들은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역의 지리적 특성과 실제 수요를 무시한 경우가 많았다.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각각에 혁신도시를 조성하고, 각 도별로 비슷한 기능의 공공기관을 유치하는 등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진정한 균형 발전이란 모든 지역이 같은 것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이 자신의 특성에 맞게 다양하게 발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이 무시된 채, 정치적 논리에 따른 개발은 국가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으로 이어졌다.
경상도 내에서도 지리적 현실과 맞지 않는 개발 시도가 있었다. 경북 내륙의 구미는 전자산업 기지로 개발되었으나, 항만과의 거리, 물류 인프라 부족 등의 지리적 제약이 있었다. 이는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2000년대 이후 구미 전자산업의 경쟁력 약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안동, 영주 등 경북 북부 지역에 조성된 산업단지의 대부분은 분양률이 저조하거나, 입주 기업의 가동률이 낮은 상황이다. 경남 서부의 진주, 사천 지역에 조성된 항공산업 클러스터 역시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는 지리적 제약을 인위적으로 극복하려는 시도의 한계를 보여준다.
지리적 조건을 무시한 '중구난방' 개발은 단기적으로는 지역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속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러한 개발은 지역 경제의 허약한 토대를 만들고,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21세기 들어 세계 경제와 산업 구조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경상도의 주력 산업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 탈탄소화, 인공지능 발전,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커다란 변화의 물결 속에서 한때 경상도의 번영을 이끌었던 조선,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산업은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위기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경상도의 지리적 조건이 가진 의미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항만과 넓은 부지라는 지리적 이점이 중화학공업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면, 이제는 같은 지리적 조건이 새로운 산업 환경에서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 재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로벌화, 디지털화, 자동화 등의 변화는 경상도의 전통적 주력 산업인 제조업에 큰 도전을 가져왔다. 특히 중국, 동남아시아 등 신흥국의 부상은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조선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심각한 침체에 빠졌다. 해운 시장 위축과 중국 조선업의 급성장으로 한국 조선업은 구조조정을 겪어야 했다. 거제, 울산 등 조선업 중심 도시들은 인구 감소와 지역 경제 침체를 경험했다.
자동차 산업도 글로벌 경쟁 심화와 전기차로의 전환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울산, 창원 등 자동차 관련 산업이 밀집한 도시들은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경상도의 산업 구조와 도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급성장했던 공업 도시들이 정체 또는 쇠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산업 구조 변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산업 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지리적 조건의 의미도 재해석되고 있다.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지식산업 중심으로 경제 구조가 변화하면서, 과거의 지리적 이점이 약화되거나 새로운 지리적 조건이 중요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부산은 항만 도시라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발전했지만, 제조업 쇠퇴와 함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영화, 관광, 마이스(MICE) 산업 등 서비스업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지만, 이는 항만이라는 지리적 조건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울산 역시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전통적인 중화학공업에서 환경·에너지 산업 등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임해 공업 지역이라는 지리적 조건의 의미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산업 구조 변화는 지리적 조건의 의미를 재해석하게 만든다. 과거의 지리적 이점이 미래에도 이점으로 작용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지리적 조건이 중요해질 것인지는 각 지역이 직면한 중요한 질문이다.
산업 구조 변화에 따라 일부 도시는 성장하고, 다른 도시는 쇠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문제'라기보다는 경제와 사회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러스트 벨트(Rust Belt)나 일본의 공업 도시들도 비슷한 변화를 겪었다. 디트로이트나 피츠버그 같은 미국 공업 도시들은 제조업 쇠퇴로 인구가 크게 감소했지만, 일부는 첨단 산업, 의료, 교육 등으로 산업 구조를 전환하며 새로운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경상도의 공업 도시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부 도시는 산업 구조 전환에 성공하여 새로운 성장을 이룰 것이고, 다른 도시들은 인구 감소와 경제 축소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는 '실패'가 아닌, 시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조정'으로 볼 수 있다.
모든 도시가 영원히 성장할 수는 없다. 인구가 감소하고 산업 구조가 변화하는 시대에, 일부 도시의 축소와 재편은 필연적이다. 중요한 것은 이를 '문제'로 인식하고 무리하게 저항하기보다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효율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경상도가 직면한 도전을 고려할 때, 지리적 현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맞는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지역이 동일하게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해안 지역의 항만이라는 기존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되,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 맞는 전환이 필요하다.
부산은 항만 물류와 금융, 영화, 관광 등 서비스 산업을 중심으로 한 발전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 부산의 지리적 위치는 동북아 물류 허브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나,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항만 인프라의 혁신과 물류 서비스의 고도화가 필요하다.
울산은 기존의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산업이 직면한 변화를 고려하여, 환경·에너지 산업 등으로의 전환을 검토할 수 있다. 특히 수소 경제, 재생에너지, 친환경 선박 등의 분야는 울산의 기존 산업 기반과 연계 가능성이 있다.
포항은 철강 산업을 넘어, 첨단 소재 산업으로의 확장을 고려할 수 있다. 포항공과대학(POSTECH)과 연계한 연구개발 역량 강화도 한 방안이다.
경북 북부와 경남 서부 등 내륙 지역은 해안 공업 도시와는 다른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 이들 지역은 대규모 제조업 유치보다는, 지역 특성에 맞는 틈새 산업 발전이 보다 현실적일 수 있다.
안동, 영주 등 경북 북부 지역은 전통문화와 자연환경을 활용한 관광, 고품질 농식품 생산, 바이오산업 등의 가능성을 검토해 볼 수 있다. 특히 안동 하회마을, 영주 부석사 등 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 산업과, 인삼, 사과 등 지역 특산물의 고부가가치화는 내륙 지역의 대안적 발전 모델이 될 수 있다.
진주, 사천 등 경남 서부 지역은 항공우주 산업, 농식품 가공업, 교육·연구 기능 등을 중심으로 한 발전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 진주는 교육 도시로서의 특성을 살려, 지식 기반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전라도 편에서 다루었듯이 인구 감소는 불가피한 추세이며, 이에 맞는 공간 구조 재편이 필요하다. 경상도의 경우 특히 산업도시와 농촌지역 간 격차, 해안과 내륙 간 발전 불균형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
울산-포항-경주-대구를 잇는 동해안 산업벨트와 부산-창원-진주를 잇는 남해안 벨트를 중심으로 한 거점 도시 네트워크 구축은 경상도의 지리적 특성을 반영한 공간 구조 재편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들 거점 도시들은 각각 특화된 산업과 서비스 기능을 담당하면서, 주변 지역에 필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경상도는 한국에서 대도시가 가장 많이 분포한 지역으로, 이 대도시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분산된 집중' 전략이 가능하다. 각 대도시가 특화된 기능을 담당하면서도 상호 연결되어 시너지를 창출하는 모델이 경상도의 지리적 특성을 살린 효율적 공간 구조가 될 수 있다.
경상도의 산업화와 이후의 변화 과정은 지리적 조건이 지역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준다. 해안 지역은 항만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급속히 산업화되었고, 내륙 지역은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뎠다. 이는 인위적 차별이나 정책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지리적 조건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21세기 들어 산업 구조가 변화하면서, 경상도의 주력 산업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일부 도시는 성장이 정체되거나 인구가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역시 '문제'라기보다는 시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경상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보면, '지리는 운명이 아니라 조건'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같은 지리적 조건이라도 시대와 산업 구조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조선시대에 '변방'이었던 경상도가 산업화 시대에 '중심'이 되었듯이, 현재의 '중심' 지역도 미래에는 변화를 겪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인위적으로 억제하려 하기보다,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이다. 모든 지역이 영원히 성장할 수는 없다. 일부 지역의 성장과 다른 지역의 축소는 경제와 사회 발전의 필연적 과정이다.
경상도 내에서도 부산, 울산, 포항 등 해안 공업 도시와 경북 북부, 경남 서부 등 내륙 농업 지역 간의 불균형은 '문제'라기보다 지리적 조건과 산업 구조에 따른 '현실'이다. 이를 인위적으로 '균형'시키려는 노력은 한정된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앞서 전라도 편에서 다룬 포퓰리즘 정치의 문제점과 마찬가지로, 경상도 역시 정치적 논리에 의한 개발 결정이 지역 발전의 장애물이 되었다. 이제는 정치적 포퓰리즘을 넘어 지리적, 경제적 현실에 기반한 국토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진정한 지역 발전은 정치적 수사가 아닌 지리적 조건과 산업 구조의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 모든 지역이 동일한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특성과 강점에 맞는 차별화된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비현실적 공약보다, 지역의 현실과 가능성에 대한 정직한 진단을 제시해야 한다. 시민들 역시 당장의 화려한 개발 약속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현실적 비전을 지지하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하다.
경상도는 이제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과거의 성공 모델에 집착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것인가?
첫째, 모든 지역을 동일하게 발전시키려는 비현실적 노력보다, 각 지역의 특성과 강점에 맞는 차별화된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 해안 공업 도시들은 기존 산업의 고도화와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에 집중하고, 내륙 농업 지역은 지역 특성에 맞는 틈새 산업과 고품질 농업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둘째, 인구 감소와 산업 구조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를 '문제'로 인식하고 무리하게 저항하기보다, '현실'로 받아들이고 효율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모든 지역의 인구를 유지하려는 비효율적 노력보다, 거점 중심의 효율적인 공간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셋째, 지역 간 불필요한 경쟁과 대립을 넘어, 광역적 협력과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처럼, 개별 도시의 한계를 넘어 광역적 발전을 추구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동시에 전라도, 충청도 등 다른 지역과의 상호보완적 협력 관계도 중요하다.
경상도의 미래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변화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지리적 조건과 산업 구조 변화를 받아들이며, 이에 적응하는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하다. 그것이 '중구난방'이 아닌 '조화로운' 국토 발전의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