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oyager 은애 Jun 07. 2024

알래스카 초등학교 졸업식


슬이의 졸업식이 있는 날이다.

날씨가 좋았으면 했지만, 이곳 캐치캔 일상 날씨.

비 오고 흐림.

그럼에도 야외에서 행사는 계속된다.


한국에서 "졸업식"이라고 하면 어떤 분위기인지 파악이 되는데 여기서는 처음이라 꽃을 사가는 건지, 선물을 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릴 때 생각하면 졸업식 하고 나서 자장면 먹으러 가는 게 즐거운 기억인데, 여기선 자장면 집도 없지만

졸업식 끝나고서도 오후 학교 스케줄이 계속된다.


몇 달 전부터 주변 엄마들에게 졸업식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슬이 친구 엄마가 묻는다.

"졸업식을 해요?"

자기 딸이 다니는 학교는 졸업식이 없고

6학년 마지막날 아이들이 두 줄로 서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끝난다고 했다.


아마도 6학년 선생님이 어떤 분이냐에 따라서 행사를 하는 곳이 있는데

5개의 초등학교 중에 딱 한 군데만 작년에 졸업식을 했다고 한다.

그것을 담당했던 선생님이 올해 우리 아이들 다니는 학교 6학년 선생님이다.

이제 이해가 된다.

그래도 졸업식을 안 하는 것보다는 약소하게 라도 하는 것이 의미 있지 않은가! 감사하다.


고등학생 딸을 둔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꽃을 사준 적도 없고 선물을 준 적도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졸업은 졸업인 것이다.

대신 여기선 고등학교 졸업식을 거창하게 한다. 왜냐하면 대학을 안 가는 학생들도 많기 때문에 공식적인 졸업식이 고등학교인 것 같다.


6학년을  담당하는 두 분 선생님이 학부모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졸업식 순서에 관련된 것이다.


졸업식 순서 안내


11시에 밴드 공연이 있고

11:30분에는 비가 오든지 해가 뜨든지 무조건 밖으로 나가서 간단한 축하를 한다.

12:15분에는 피크닉과 게임. 피자 제공됨

가족들도 같이 참여할 수 있다.




슬이의 졸업식을 생각하니

3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학교를 정할 때 에피소드 《 알래스카 시골섬 초등학교》라는 글에도 썼지만,

《 알래스카 초등학교 적응기 》에서는 처음 학교 간 둘째 날 밤에, 펑펑 울면서 잤던 기억들...

그랬던 아이가 4학년 1년을 보내고 5, 6학년에서는 학교 대표로 Spelling Bee 대회와

Battle of the books 대회에도 나갔다.



스펠링 비(Spelling Bee) 대회는 "영어 단어를 듣고 그 철자를 맞추는 대회"이다.



<아키라 앤 더 비> 영화


배틀 어브 더 북스(Battle of the books)는 3~12학년 학생들을 위한 자발적 독서 장려 프로그램이다. 학년 별로 도서 목록이 나오고 팀을 만들어 대회에 참가한다. 쉽게 말하면 교회에서 하는 성경퀴즈와 비슷한 것 같다.


누구보다 교장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을 자랑스러워하셨고 많이 신뢰해 주셨다.  

처음 우리 아이들이 이 학교에 왔을 때 영어실력을 아시기에

예슬이 반 친구들을 보면서, 영어를 1년 배우고 대회를 나가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된 거냐고?

얘길 하셨다고;;


사실 졸업식이라고 하니, 교장 선생님이 제일 많이 생각나고, 가장 고마운 분으로 마음에 남아 있다.

지금은 아프셔서 다른 큰 도시에 가서 치료받고 계신다. 졸업식 때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참 많이 아쉽다.  




드디어 졸업식, 11시가 다가온다.

여유 있게 가려고 계획했으나, 차로 3분 거리인 우리 집에서 시간에 딱 맞춰서 겨우 도착했다.

밴드 공연이 시작된다.

작년 겨울 음악 발표회 때 들었을 때는 이게 정말 무슨 곡인가 했는데

오늘도 좀 이상하고 박자도 안 맞지만

지난번보다는 훨씬 낫다.

절대 한국을 생각하면 안 된다. 그냥 연주하는 것 자체로 귀하게 여기고 즐거워하며 잘했다고 손뼉 쳐 주는 우리 부모님들!! 처음엔 정말 적응이 안 됐지만 이제는 학생들 그 모습 그대로, 존재를 나타내 주는 것 자체로 손뼉 치며 환호한다.^^


밴드 공연


학교 뒤편 축구장으로 이동. 흐리고 춥다. 다행히 비는 그쳤다.

졸업축하라는 거창한 데코레이션은 없지만 그래도 나름 준비해 주셨다.

벤치는 비 때문에 젖어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모든 부모님들이 앉는다. 이곳에서는 일상적인 분위기이다. 비가 온다고 행사를 취소하면 행사를 할 수 있는 날이 거의 없다.


데코레이션



먼저 학생 세 명이 나와서 "알래스카에 원래부터 살았던 원주민들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선서를 한다.



그러고 나서 한 명씩 그 학생의 특징을 담은 상장을 주었다.



그다음 졸업장. 정확히 말하면 졸업장은 아니다. 그리고 졸업식이라는 용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냥 6th grade celebration 인 것이다.


그리고 난 후 단체 사진 찍기.

6학년 학생들


슬이 단짝 친구들과 사진
피자 먹고 게임하고 놀기



이렇게 초등학교 6학년이 마무리된다.


생각해 보면 어른인 내가 이곳에 적응하는 것보다, 우리 아이들은 훨씬 더 많은 것을 뚫고 나아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정말 감사하다. 아이들이 잘 적응해 주어서 이곳에서의 시간들을 잘 지나올 수 있었다.

이제는 어디를 가면 친구들이 먼저 와서 인사한다. 예슬맘이죠?

사실 외국인들이 동양 사람을 보면 잘 구별하기가 힘들듯이, 나도 이곳 사람들을 주의 깊게 자주 보지 않으면 얼굴을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게다가 모자를 쓰느냐 안 쓰느냐에 따라서 확연히 달라 보인다. 그럼에도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들 때문에 나와 남편을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아이들은 정말 축복의 통로이다.


이제 이 섬에 하나 있는 중학교에는 모든 초등학교 학생들이 다 모이는데, 과연 어떤 학교 생활이 될지~~


아이들이 성장해 감에 따라 나도 같이 성장하고 있다.


알래스카 중딩 생활!

To be continued~






매거진의 이전글 알래스카 겨울나기 필수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