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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nightBlue May 26. 2024

가정의 달, 푸르른 주말

가족 식사를 곁들인 쁘띠 나들이


빡빡한 업무에, 시외 출장에, 여느 때보다 바빴던 5월 둘째 주를 보내고 맞이한 주말. 가정의 달답게 지난주에 이어 이번에도 가족들과 식사 일정이 있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찾다가 예약한 곳은 결국 전에도 한번 가본 적이 있는 자연 속 고깃집이었다. 개별 건물로 이루어진 룸에서 구워 먹을 수 있는, 토마호크, T본, L본, 포터하우스 등의 소고기와 더불어 삼겹살, 목살의 돼지고기도 즐길 수 있는 곳. 엄마 아빠는 동생 내외가 차로 모셔오고, 우리 식구는 따로 이동하여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고 운전자를 제외한 이들은 반주도 조금씩 곁들여가며 가진 시끌벅적하고 정겨운 시간.


술을 잘 못 드시는 엄마는 청하 스파클링 몇 모금, 소주파인 아빠와 동생은 소주 몇 잔, 나는 간단하게 작은 글라스와인을 한잔 시키고, 잘 익은 고기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자니, 어쩐지 평소보다 조금 취하는 느낌이었다. 식사의 마무리로 라면까지 야무지게 셀프로 끓여 먹고 나자 평소 산을 잘 다니시는 아빠가 근처에 좋은 폭포가 있다며 같이 들렀다 가자 하신다. 다들 조금씩 상기된 기분으로 폭포와 절이 함께 있는 조금 더 깊은 산속으로 향했다.


갈수록 짙어지는 푸른 나무들, 점점 가까워지는 폭포수 소리, 조금 떨어진 곳에서부터 존재감을 뿜던 폭포는 근처에 다가가자 더 크게 그 위용을 드러낸다. 저렇게 떨어지는 폭포수를 마지막으로 본 적이 언제였던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지만, 오랜만에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묵은 마음의 찌꺼기 같은 것이 조금은 싹 씻겨 내려가는 기분도 들었다. 아이들도 신기한지 물줄기가 만들어 내는 거품과 물안개 같은 것을 열심히 바라보고, 저 물속에도 물고기는 있을까 하는 질문을 천진하게 던진다. 물고기가 있다면 떨어지는 물 때문에 너무 아플 것 같다는 귀여운 걱정도 함께.    

절 근처에서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자라고 있던 거대 죽순

폭포의 바로 옆에는 오래된 절이 하나 있었다. 크기는 자그마하지만 위치해 있는 장소의 버프를 받아서인지 괜히 영험해 보이는 절이었다. 절에 오면 꼭 절도하고 짧게나마 기도도 하시는 엄마는 이번에도 법당에 들어가셨다. 그 뒤를 따라 나도 살짝 들어가니, 역시나 오랜만에 맡는 향냄새와 초냄새에 어쩐지 그리웠던 걸 우연히 만난 것 같은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딱히 독실하게 무언가를 믿는 편은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기도한 바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나일론 신자의 마음으로 나도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법당을 나오고 보니, 맞은편에는 작은 대나무 밭이 있었다. 곧게 뻗은 대나무들 사이에 시커멓게 올라온 저게 뭔가 했더니, 이제 올라오고 있는 죽순이었다. 죽순이라기엔 너무 크게 컸나 싶었지만 모양을 봐선 영락없는 죽순이었는데, 나는 그 크기와 모양을 신기해하는 한편 저것도 먹을 수 있는 것일까, 딱딱하지는 않을까, 죽순이 생기면 어떤 요리를 해야 하는가, 스님들은 저 죽순을 캐다가 드시는 것일까 와 같은 대중없는 의식의 흐름으로 그 잠깐의 시간을 채웠다.


이 절에서 지내는 듯한 예쁜 얼굴의 삼색 고양이.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

죽순... 아니, 대나무밭에서 반대쪽으로 눈을 돌리니 이번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고양이를 원체 좋아하는 아이들은 가까이 다가가며 호들갑을 떨었다. 미동도 없이 소리도 내지 않고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절고양이라 그런지 녀석도 어느 정도 심신 수양이 된 것인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 1차 식사에 이어 2차 절구경 폭포구경도 마치고, 왠지 그냥 바로 헤어지기는 아쉬워 다들 커피라도 한잔 해야 하나 어쩌나 하던 찰나, 아빠가 본인이 커피를 사시겠다며 근처에 잠시 앉아 쉬었다 가자신다. 요즘은 조금 깊다 싶은 산속이나 바닷가에도 워낙 대형 카페들이 많아 근처 카페를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넓은 공간에 탁 트인 풍광이 있던 카페에서 남녀노소 여덟 명의 식구들이 둘러앉아 음료를 한잔씩 마시며 또 각자의 이야기들을 도란도란 나누었다. 

카페에 있던 오브제. 산호초 같기도 하고, 맨 아래에 있는 건 베이글 같기도 하다.  

그렇게 카페까지 야무지게 들른 것으로 가정의 달 친정 식사 일정은 끝이 났다. 이렇게 온 식구가 모이는 다음 모임은 아마도 부모님의 생신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집에 오는 길에 이런 식으로 만날 날이 앞으로 며칠이나 될까,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라는 조금은 서글픈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기우는 얼른 지워버리고 온 가족이 건강하고 지금처럼 여기저기 다닐 수 있을 때 많은 추억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홀로 해보았다. 다음번엔 더 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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