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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nightBlue May 19. 2024

한적함을 찾는 분주함

자연, 또는 시골에서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다

도시는 늘 분주하다. 지방 소멸의 위기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지내고 있고, 특히 집이나 직장 근처, 외식을 하거나 모임을 가지는 장소들에선 바쁘고 조급한 사람들의 달뜬 얼굴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어느새 '바쁨'이라는 상황은 이미 일상이 되어 버린지라 내 요즘 삶의 디폴트 값처럼 스스로 느끼고 있는데, 그렇다고 남들에게까지 '바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고 싶다면 좀 웃긴 일일까.


너도 나도 바쁜 현대인들의 마음은 오가는 인사말이나 업무상 건네는 말에서도 잘 느껴진다. 경조사를 치른 후의 답례문자 속 "바쁘신 와중에도 귀중한 시간을 내시어..."라거나, 메일이나 메신저 속 "업무에 많이 바쁘시겠지만... 검토를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들여다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바쁨'이 전제되어 있다. 이렇게 된 이상, 안 바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 지경이다.(하지만 사실은 진짜로 바쁜 게 대부분이라는 슬픈 현실이 안타까울 뿐!)


어디선가 들었다. 한국인들은 휴가를 가서도 바쁘다고. 쉼을 찾아 떠난 휴양지에서도 맛집은 또 찾아가야 하고, 현지에서의 각종 활동을 즐겨야 하며, 마사지도 부지런히 받아야 하고, 쇼핑도 해야 하니 말이다. 나 역시 유유자적, 한가로움을 표방하며 떠난 몇 차례의 여행에서 정작 오롯이 한적하고 여유로웠던 시간은 얼마 기억나지 않는다. 애당초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간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시작이었는지도.


그렇게 시달리고 찌들고 바쁜 우리네 마음은 어디에서 쉴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그 답을 시골, 또는 자연에서 찾는 것 같다. 실로 그것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기도 하고 말이다. 한창 캠핑을 다닐 시절, 출발 전과 다녀온 직후 그 극강의 피로함은 차치하고, 캠핑장에 도착해서 피칭하는 고단함은 살짝 뒤로 하고 생각해 보면, 캠핑장 안에서 지내는 2박가량의 시간은 참 여유로웠다. 릴랙스 체어에 앉아 있다가 졸기도 하고 맥주를 마시며 책을 보기도 하고 때가 되면 슬슬 고기나 굽고 냄비밥을 안치며 있든 없든 대충 장 봐간 것으로 식사를 하고 씻는 것도 시설이 허락하는 만큼, 여차하면 선크림만 가볍게 바른 채 종일 모자나 눌러쓰고 지내도 되고. 물이 있는 곳이라면 물소리, 산이 깊은 곳이라면 새소리,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 날개를 부대끼는 풀벌레소리에 모처럼 귀 기울이며 가지는 여유로움은 참 달콤했다. 물론 요즘의 캠핑장은 사람들이 많아 주변의 소음도 제법 끼어들지만, 내 마음이 바쁘지 않으므로 그 정도는 얼마든지 허용 가능한 자연의 소리라 치고.


하지만 그런 시골 또는 자연이 내 일상생활이 되어버리면 그때부터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는 듯하다. 실제로 귀촌을 하신 주변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시골에서의 삶이 그렇게 바쁠 수가 없단다. 기본적으로 '단독주택'이라는 주거공간이 필연적으로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과업들이 그 대표적인 것. 시시때때로 들어오는 흙먼지 때문에 잦아진 청소(어쨌든, 아파트와는 다르게 땅바닥과 가깝게 지어진 단독주택의 비극Ⅰ), 거기에 더해 서슴없이 가택침입을 해대는 각종 벌레들 퇴치노동(역시나 앞선 이유와 유사한 단독주택의 비극Ⅱ), 앞마당에 잔디가 깔려 있거나 작은 정원이 있다면 거기에 드는 크고 작은 관리손(나밖에 할 사람이 없으므로 내손 내일 해야 하는 단독주택의 비극 Ⅲ), 텃밭이 있다면 또 추가로 드는 일손(지어본 사람은 알, 회사 상무급 뺨치는 업무 강도를 자랑하는, 연장근무와 주말근무는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농사의 고됨)... 나열하자면 끝도 없이 바쁜 것이 바로 시골의 삶인 것이다.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고 여유로워 보이는 것의 대표랄까. 물론 그것도 즐기면서 가꾸고 여유롭게 척척 해치우는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어쩐지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어쨌든 지금의 나로서 자연 속에서의 한가로움을 얻기 위한 대안은 캠핑 또는 시골에 계신 가족 찾아뵙기 정도가 되겠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찾아뵌 시골에서 함께한 식사 장소는 집에서 좀 떨어진 약간 더 깊은 시골이었다. 식당에 도착했을 땐 마침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었기에 저 멀리 산 너머로 지고 있는 해를 바라보는데 문득,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매일 볼 수 있다면 시골에서의 생활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감상적인 것도 잠시, 이내 위와 같은 시골 속 분주한 일상생활을 떠올리며 나는 그렇게 부지런하지 못한 사람이라 아직은 안 되겠구나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늘 마음 한편에는 자연 또는 시골 풍경의 여유로움을 품고 살고 싶다. 바쁘고 어렵고 소란하고 복잡하고 시끄럽고 차가운 도시의 삶에서도 잠깐 눈 감으면 차분하고 포근하고 단순하고 느긋한 어떤 장면을 금방 떠올리며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것들을 차곡차곡 모아 보는 것은 아마도 그 누구도 대신해주지 못할 각자의 몫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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