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골목엔 이야기가 숨어있다

by 봄날의꽃잎


1982년 여름


그땐 골목도, 마당도, 담벼락도 전부 우리 차지였다.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어느새 골목 어귀는 우리의 운동장이 되었고,

마당 한쪽은 회의실,

돌담 위는 전망대였다.


세 명이 나란히 서 있던 사진 속 골목길,

지금은 차가 가득 들어차 있지만

그 시절엔 발소리가 전부였다.

누가 먼저 골목을 달려오는지

발소리만으로도 알아챌 만큼

우리는 그 길을 잘 알고 있었다.

1985년 봄

그때는 늘 돌담 위에 앉아있었다.

앉아만 있어도 좋았다.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

어른들은 위험하다며 소리쳤지만

우린 몰래, 또 올라갔다.

그 높이가

우리 마음속 세상을 얼마나 멀리까지 보여줬는지

어른들은 몰랐다.


그 시절 최고의 놀이는

단연 고무줄놀이였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세명이 서서 삼각형을 만들어 고무줄을 붙잡고

나머지 세 명이 동시에 뛰던 그 박자.

전봇대에 고무줄을 묶고

혼자라도 계속하던 친구,

그 집중력과 리듬은

어쩌면 지금까지도 우리 삶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른다.

1980년 가을

할머니 집 마당도 빼놓을 수 없다.

앵두, 비파, 복숭아,

이름만 불러도 입 안에 단물이 맴도는 나무들.

등나무가 피어나면

보라빛 그늘 아래서 숨바꼭질도 하고

그늘진 벽에 기대어 쉬기도 했다.

사진 속의 나와 동생,

그림자와 햇살에 뒤섞여

마치 만화 속 장면 같았던 그 시간.


그땐, 놀이를 배우지 않아도

몸이 먼저 알아서 움직였다.

뛰고, 숨고, 웃고, 부르고

작은 실수도, 소란도

다 골목이 품어주었다.


지금 아이들은

그 시간을 모른다.

골목 대신 스마트폰,

마당 대신 유튜브.

세상이 너무 편해져서

놀이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래도 나는,

이 사진들 속 시간처럼

‘누군가의 골목’에

다시 햇살이 내려앉길 바란다.

누군가는 다시

돌담 위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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