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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최기자 Apr 20. 2024

[에세이] <행복의 철학>

왜 철학은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무지할까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어느 쪽이 더 고상한가?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참고 맞는 것과
밀려드는 역경에 대항하여 맞서 싸워 끝내는 것 중에.
죽는다는 건 곧 잠드는 것. 그뿐이다.
잠이 들면 마음의 고통과 몸을 괴롭히는
수천 가지의 걱정거리도 그친다고 하지.
- 셰익스피어 <햄릿>



운명(Fate).

자연(Nature).

시간(Time).

죽음(Death).

고전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요즘에는 시간의 한계도 극복하고 노화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었지만, 고대, 중대, 심지어 근대시대까지도 시간과 운명은 극복할 수 없는 대상, 체념하며 수용해야 하는 존재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시학>에서 비극(tragedy)이 인간의 삶을 행복하고 윤택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말했다.
빛와 어둠의 양면을 모두 지닌 삶의 굴곡을 압축된 예술적인 형태로 감상할 때 사람은 치유받는 느낌, 즉 카타르시스(catharsis)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는 보통 사람들이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의 경지를 경험하고, 가장 직관적인 형태로 그것을 풀어썼는지도 모르겠다.



정신병리학에는 조증(mania)이라는 증상이 있다. 
상황과 맥락에 관계없이 비정상적으로 고양된 기분상태가 계속되면서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삶에는 긍정적인 순간들과 위축되는 순간들,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기 때문에, 인간은 행복이라는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먼(가까운) 미래에 소설 <멋진 신세계> 같은 사회가 도래해 인간의 모든 유전적 특성과 행동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면, 인류는 ‘적정 수준의 쾌락’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몰라도 '행복'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 혹은 '불행과 고통을 겪을 자격'을 얻은 소수의 지도층이나 성직자층만 행복에 대한 감각을 유지할지도. 이런 생각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기억 전달자> <이퀼리브리엄> <매트릭스> 같은 작품을 통해 전해져 왔다.



행복이란 단순한 긍정적 느낌의 연속이나 ‘최대 효용’이 아니다.
행복은 내 삶을 온전히 이해할 때, 모든 순간들의 의미를 이해하며 좋음도 나쁨도, 평범함도 위대함도 없다는 자각에서 오는 편안함이고 자유로움이다. 그러기에 시베리아 유형지나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 십자가에 매달려 총살을 앞둔 상황에서도 행복을 느꼈다고 고백하는 게 가능할지도.

어쩌면 그래서 행복이란, 미지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과 숭고함에 대한 각이 있어야만 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다만 직관할 수 있는 어떤 신성(divinity)의 영역이 있다는 생각. 과학이 모든 종류의 앎(scientia)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겸손함에서 우리는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미술관의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깊은 행복감느꼈다.
<모나리자>처럼 시대를 뛰어넘는 명화 앞에선 약점을 들킨 어린아이처럼 머쓱해지고 미소가 나오기도 한다. 삶의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순간을 멋진 한 폭으로 담아낸 사람이, 종종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걸 알면 더 그렇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 불행했다는 것도 어쩌면 내 오만함이 부른 착각이 아닐까. 삶의 여러 단면들을 두려움과 편견 없이 바라본다면, 그리고 모든 것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아마 이들이 참 행복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삶은 신성한 광기를 향한 춤이다'라고 말한 니체는 행복했을까 불행했을까. 



진정 솔직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느끼고 이해한다면, 세상에는 위대함도 보잘것없음도, 좋음도 나쁨도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짜 자유로움, 진짜 나다움을 느낄 것이다. 이런 자유로움을 평생 누리며 살 수 있다면 어떨까.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에세이집 <내겐 너무 예쁜 손님들>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행복과 불행은 대부분 그렇게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이 순간의 내 상태를 규정짓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사실, 이 세상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나’라는 존재는 그만큼 위대하다.

나는 내 삶의 여러 측면을 골고루 다듬으면서,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더 내 마음에 드는 나, 더 행복한 나를 만들어 갈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해 봤다. 그리고 나도 성공한 사람이라며 스스로 나를 칭찬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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