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1월 초, 추위가 오기 전 미리 김장을 끝냈다. 절임배추의 시세나 알아보자며 갔던 농산물 시장.
“사장님, 절임배추 얼마예요?”
“20kg 37,000원이요.”
“배추값 비싸더니 많이 내렸네요. 20kg면 배추 몇 포기 정도 돼요?”
“속 꽉 차고 좋은 배추 기준으로 7~8포기정도 되요. 몇 개 필요하신데요?”
“집에서 먹을 거라 20kg 한 박스면 될 거 같은데, 다음 주에 할까해서 시세 여쭤본거예요.”
“이번 주 싼데 온 김에 가져가요. 다음 주 날 추워진다는데 추워지면 가격 올라가요.”
함께 장을 보러 갔던 남편에게 절임배추의 가격이 싸니 이번 주에 할까? 물으니 욕심을 낸다.
“싸니까 40kg 하자.”
“김치도 많이 안 먹으면서 또 욕심 부린다. 그 많은걸 누가 다 먹어? 애들도 많이 안 먹는데.”
“겨울동안 열심히 먹으면 되지. 도와줄게 두 박스 가져가.”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남편 탓에 20kg 한 박스만 하려던 김장의 양이 배로 늘어났다. 절임배추 두 박스를 사고, 무, 갓, 쪽파, 생강, 마늘, 새우젓, 멸치액젓 등 김장 재료를 추가로 구매했다.
고춧가루는 미리 10kg을 사둔 상태였다. 냉동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춧가루를 보며 '배추만 버무리면 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막상 재료를 다 들여놓으니 엄청난 양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렇게 남편의 욕심대로 사온 김장재료가 한 무더기다. 일단 장을 봐왔으니 좀 쉬어야 한다. 몰아치듯 일을 하면 몸에 무리가 와서 안 된다. 쉬엄쉬엄 해야 한다. 힘쓰는 건 남편이 다 도와주는데도 일단 쉬어야 한다.
“장 봐온 거 옮겼으니 앉아서 좀 쉬고 좀 있다 시작하자.”
TV를 보며 쉬고 있는데 엄마의 전화다.
“응, 엄마.”
“엄마 여기 결혼식 끝나고 올라가는 길에 너희 집에 들렀다 가려고 하니 정확한 주소 좀 찍어봐.”
“어? 엄마 누구랑 올라오는데?”
“어, oo언니 올라가는 길에 그 차타고 같이 가려고. oo언니가 너희 집에 엄마 내려주고 간데.”
이런 문제 발생이다. 주말 친척 결혼식에 가셨던 엄마가 사촌언니의 차로 우리 집에 오신단다. 시장에서 김장을 하겠다고 사온 재료 한 무더기를 보면 분명 팔을 걷어붙이고 김장을 해주신다고 할 게 뻔했다. 김장을 함께 하자고 하던 엄마의 제안을 거절한건 엄마 일이 너무 많아져서다. 매번 함께 김장을 하면 엄마는 김장 일주일 전부터 알타리김치, 파김치 등 이것저것 미리 해두시고, 기본 재료 준비도 혼자 다하시고 정말 배추김치 버무릴 것만 남겨두신다. 사남매 김장이니 조금한다고 해도 조금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꺼라도 빼면 엄마 일을 줄인다 싶어 혼자 알아서 하겠다고 한 건데. 엄마가 지금 오시면 엄만 김장을 두 번하는 일이 발생한다. 엄마의 고생이 두배가 된다.
“자기야, 비상. 엄마 오신데!”
“장 봐온거 다 어디로 치우지? 어머니 보시면 분명 김장 해주신다고 할텐데.”
엄마가 오신다는 전화에 남편과 난 서로 마주보고 장봐온 저 재료를 어디로 치울 것인가 고민이 시작되었다. 일단 재료를 베란다로 다 옮겨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감췄다. 중간 중간 엄마가 어디쯤 오고 계신지 확인을 했다. 도착 하실 때가 된 거 같아 전화를 드렸다.
“엄마, 도착할 때 된 거 같은데 어디쯤 오셨어?”
“여기 용인 고속도로인데 길이 막혀도 너무 막힌다. 아무래도 너희 집 못 들렸다 가겠어.”
그렇게 엄마는 막히는 길 때문에 우리 집에 들르지 못하고 바로 가셨다. 우리 집에 들르지 못하신 건 좀 아쉽지만 두 번의 김장은 안하셔도 되니 다행이었다.
장봐온 재료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주고, 생강은 껍질을 벗기는데 1kg의 양이 꽤 된다. 생강 껍질을 다 벗기고 나니 손이 아프다. 또 쉬어주어야 한다. 일을 하다 쉬다를 반복하며 배추 속에 들어갈 무를 채 썰어야 했다. 어른 장딴지 만한 무를 써는 것은 무리다. 채썰기 좋게 큰 무를 잘라주는건 남편이, 채를 써는 건 내가. 분담을 해서 진행하니 속재료 준비도 비교적 쉽고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 김장을 할 때 의외로 힘쓰는 일이 많다. 이것을 도와주는 이 하나 없이 혼자 하려면 곤욕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도 혼자 다 감당하려 했으면 엄두도 안 났을 일이다. 절임배추와 남편의 적극적인 도움이 아니었다면 ‘몰라 몰라 배째. 그냥 사 먹을 거야.’ 이렇게 나왔을 수도 있다.
토요일에는 속재료 준비를, 일요일에는 본적적으로 양념을 만들고 배추에 속을 채우는 작업을 했다. 고춧가루, 새우젓, 멸치액젓, 설탕, 다진 마늘, 다진 생강, 멸치육수를 넣고 기본양념을 만들었다. 엄마는 황태대가리 육수와 황석어젓갈까지 준비했겠지만, 나는 최대한 간단하게 했다. 일을 크게 벌이지 않았다. 최대한 쉽게 쉽게 일하자 주의여서 멸치육수도 전날 잔치국수를 해먹고 남은 육수를 사용했다.
김장용 큰 대야에 채 썬 무와 갓, 쪽파가 가득이다. 두 개의 큰 대야에 나누고 기본양념을 넣어가며 속의 간을 맞췄다. 기본양념과 속 재료를 잘 버무려 그 맛을 확인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1년간 먹을 김장의 맛이 결정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김치를 반찬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느냐, 찌개의 재료로만 전락하느냐. 절임배추의 야들야들 연한 속잎을 떼어 양념된 속을 싸서 맛을 봤다.
“오, 맛있어. 짜지 않고 간도 딱이야.”
남편과 나는 감탄과 자화자찬을 하며 열심히 배추 속을 채웠다. 그런데 배추 속이 모자랄것 같았다. 그때부터 남편에게 폭풍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속 좀 아껴 넣으라니까! 나중에 모자라면 어쩌려고 그래!”
배추 속을 너무 많이 넣지 말라는 나의 잔소리를 들으며 남편은 묵묵히 함께 김장을 해주었으며, 힘쓰는 많은 일을 처리해 주었다.
배추김치를 끝내고 기본양념으로 파김치와 갓김치를 버무림으로 김장을 종료했다.
절임배추 40kg으로 만든 배추김치는 깊이가 깊은 큰 김치통 두 개와 일반 김치통 네 개가 나왔다. 내년 여름까지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일주일이 지나 김치를 맛봤다. 아삭아삭하고 적당히 익은 김치 맛에 아이들도 모두 “맛있다!”며 칭찬했다. 이번 김장은 뿌듯함 그 자체였다. 혼자였다면 절대 엄두도 못 냈을 일이지만, 남편과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큰일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김장은 단순히 밥반찬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가족의 손발이 맞아야만 해낼 수 있는 커다란 프로젝트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