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편집자가 될 수 있을까 -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차용
“너 정말 대단하다.”
보통 정말 멋진 일을 하면 듣는 말이다. 출판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이후 많이 들은 말이기도 하다. 듣고 나서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여느 유행하는 일과는 다르다는 생각 때문일 테다. 하지만 사실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을 읽는 행위가 좋다거나 책을 만드는 일을 신성시한다는 등의 이유와 다르다. 그냥 물질로서의 ‘책’을 정말로 좋아한다. 마치 소품샵에 들어가 어떤 문구가 가장 예쁜지 구경하는 것처럼 서점에 꽂힌 책을 좋아하고, 구매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좀처럼 바뀌지 않을 취향이라는 점도 알고 있다. 책을 물질로써 좋아하는 사람이 책 만드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일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다만, 자꾸 대단하다는 말을 들으며 오히려 반문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안전하지 않은 일인가? 아마 작년에 평소보다 긴 슬럼프가 온 이유도 이 때문인 듯하다. 열심히 일하고 벌어도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사양 산업에 뛰어드는 짓을 혹자는 미련하다고 한다. 그래서 미련한 사람에게 차마 대놓고 쓴소리할 수 없으니 대단하다고 추켜세우는 것이라면. 남의 꿈을 꺾지 못해 응원만 받다가 함몰한다는 자각도 못한 채로 무너지게 된다면. 생각이 많지 않은 편이지만 한 번 꼬리를 물면 끊을 수는 없었다. 분명 내가 하고자 하는 일임에도 의심을 멈출 수 없었다.
물론 그 걱정과 응원을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다. 오로지 입시를 위해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시험만을 준비한 세대에게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렇기에 ‘너라도 꼭 하고 싶은 거 해’라는 말을 응원으로 들어왔다. 그렇지만 나만? 출판사에 취직한 나는 불안에 시달리며 박봉에 허덕이게 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안정된 직장을 찾아 떠나 잘 살게 되는 걸까? 굳이 너만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건 대리만족을 위해 부추기는 일처럼 느껴진다면 예민하다고 손가락질 받게 될까. 차라리 그런 건 살아가는 데 필요하지 않으므로 굳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당위성을 찾아 반박해주고, 출판사에 취직하고 싶다는 나를 같잖게 여긴다면 남의 꿈을 짓밟는 못된 사람이라 욕하기라도 할 테다. 하지만 스스로도 이렇게 불안정하니 주위에서 하는 말들이 이제는 가끔 슬프게 들린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출판 일이 불안정하니 하나라도 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가족들의 의견이었다. 그렇다고 자의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그 의견에 동의했으니 진학을 결정했고, 실제로 출판 일을 하며 산업 자체의 전망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안전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맞나 끊임없이 고민한다. 나를 돌아봤을 때 안정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높으니 대학원 공부를 하다보면 교사라는 직업도 고려해보게 된다. 걱정되는 교육실습을 준비하고 스스로 전문성도 어느 정도 기르기 위해 학원 아르바이트 또한 병행하고 있다. 학업과 출판 일, 아르바이트까지 하다 보니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일을 하며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일들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한 수단으로만 삼는다면 그 모든 일을 하는 의미는 없다. 내가 하기로 택했으니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진다. 별다른 의미는 없다. 불안한 미래에만 인생을 걸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일은 대단하지 않다. 그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고, 내가 아닌 어느 누군가도 하는 일이다. 이 일이 있으니 아주 소소하게, 올바른 맞춤법을 알려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주며, 빈 책장을 메울 수 있다. 필요하지 않다고 할지언정 가끔은 누군가의 심장에 스며들고, 친구가 되어주며, 삶을 바꾸기도 한다. 때문에 출판은 사양 산업이며 책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견은 믿지 않는다. 대단하지 않게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적어도 나에게 책을 만든다는 건,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