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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향 Apr 20. 2024

잘 웃어서 좋단다

나도 좋다, 존중이 바탕되는 한

웃음이 어찌나 헤픈지 주변 사람들이 다 본인이 재밌는 줄 알 정도다. 억지로 웃어주는 것도 아니고 진짜 웃겨서 웃는 것도 아니다. 물론 웃길 때도 잘 웃지만 난 어색해도 웃고 당황했을 때도 웃고 상대방이 민망할까 봐도 웃고 어리둥절한 상황에서도 웃는다. 사회적 가면이라기보단 자연본능적으로 나오는 웃음기라서 스스로 제어가 안 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힘들고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이런 부정적인 제어장치가 있지 않은 이상 내 기본값은 항상 웃는 얼굴이다.


사는 내내 이랬던 건 아니고, 대학생 때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를 이것저것 하는 동안 서서히 바뀐 것으로 짐작된다. 원래도 웃음이 많긴 했지만 학교 다닐 때는 인상도 곧잘 쓰고 다녀서 모르는 사람과 초면에 오해가 생긴 일도 있었을 정도니 늘 웃는 얼굴이 아니었던 건 확실하다. 그런데 사회에 나오게 된 시점부터는 어딜 가나 어른들에게 인상이 참 좋다, 잘 웃어서 좋다, 예의가 바르다 등의 이야기만 들었다.


웃는 얼굴은 좋은 첫인상을 남기니 분명 장점인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사실 불필요한 불편함을 많이 느끼며 살았다. 지속적인 불편함을 느끼는 건 나 스스로가 부정적인 생각을 꽤 많이 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웃음은 곧 긍정으로 치환되는 게 일반적인데 나는 웃음을 긍정의 의미로만 사용하지 않다 보니 어떤 상황에서는 종종 사회적, 내면적 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부탁받으면 이유를 둘러대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런데 상대방은 내가 웃는 얼굴이어서 쉽게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몇 번을 반복해서 부탁한다. 나는 싫다는 소리를 반복해서 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몇 차례에 걸쳐 거절하고 나면 오히려 내가 진이 빠지곤 했다. 어떨 땐 상대방이 던진 무례한 농담에 기분이 상했는데도 어떻게 그 무례함을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멋쩍은 웃음으로 넘기고는 뒤늦게 내 기분을 현명하게 전달할 방법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할 말 제대로 못하는 답답한 성격을 타고난 게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다만 할 말을 곧이곧대로 하는 것보단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해서 좀 다듬어진 말로 풀어내는 게 낫다 보니 그 전달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게 번거로웠다.


게다가 실수는 상대방만 하나? 나도 한다. 농담을 주고받다 보면 아차 싶은 순간에 선 넘는 발언이 나가기도 하고, 리액션이 과한 탓에 대화에 끼어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은 소외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웃는 얼굴과 빠른 사과로 상황은 대개 잘 무마되지만 이런 일들 이후엔 결국 또 내 마음이 괴롭다. 왜 경솔하게 말을 해서는, 쓸데없이 행동이 커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거냐고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금방 또 잊어버리고 말긴 하지만 신경 쓰이는 자잘한 일이 무수하게 많다는 건 결국 내가 피곤하다는 뜻이다.


이러나저러나 사람을 대하고 나면 늘 후회가 남으니 어렸을 땐 그렇게나 사람이 좋아 죽고 못 살겠던 내가 지금은 웬만하면 사람을 만나고 싶지가 않다. 어떤 실수를 하게 될지 걱정되고 어떤 무례함을 마주하게 될지 벌써부터 꺼려지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계속해서 웃는 얼굴로 사람을 만나게 될 테니까, 어떤 종류의 관계이건 그냥 서로 예의를 지키고 존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무례한 발언을 삼가고 가벼운 농담보다는 좀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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