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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향 May 10. 2024

괌이라는 작은 섬에 5년을 살았다

처음 갔을 때는 지상낙원이라는 말로밖에 설명이 안될 만큼 너무 좋았다. 괌 시내에 있는 리조트에서 1년짜리 인턴쉽을 하는 동안 다른 대학교에서 온 한국인, 일본인, 대만인, 러시아인부터, 괌에서 나고 자란 차모로 현지인, 이웃섬에서 온 필리핀인, 미국 본토에서 건너온 미국인까지 정말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다. 당시 호텔에 근무하던 직원 수가 총 750명이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호텔을 벗어나지 않고도 사람을 많이 사귈 수 있었다.


3교대 호텔근무를 하느라 오프인 날을 미리 알기가 어렵고 스케줄이 서로 다 들쭉날쭉해서 다 같이 놀 수 있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친한 친구들이랑  오프가 겹칠 때는 호텔 시설물에서 배드민턴을 치거나 카약 또는 패들보드를 빌려 물놀이를 했고, 아니면 호텔 밖에서 쇼핑을 하거나 맛있는 디저트를 찾아다녔다. 차가 없어서 주로 걷거나 쇼핑몰에서 공짜로 태워주는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로컬 친구들한테 운전을 부탁할 때도 있었고 어쩌다 한 번씩은 직접 렌트카를 빌려서 놀러 다니기도 했다. 별 것 하지 않아도 그냥 드라이브하고, 바다에서 수영하고, 맥주 마시고, 별 보러 다니던 날들이 밤낮으로 아름다워서 마음 가득 행복했던 기억이다.


괌에서 가장 많이 한 일을 꼽자면 쇼핑이랑 물놀이. 괌에 로스(Ross)라는 저렴한 아웃렛이 있는데 신발, 액세서리, 의류부터 주방용품에 생필품까지 말마따나 없는 거 빼곤 없는 게 없어서 정말 자주 갔었다. 물놀이도 얼마나 자주 다녔는지 모른다. 관광객 북적이는 유명 바다부터 섬 곳곳에 숨어있는 조용한 바다는 물론, 투몬 시내에 몰려있는 호텔들까지 모조리 섭렵해서 틈만 나면 물놀이를 갔다. 처음 괌에 도착했을 때는 물에 뜨는 법조차 모르던 내가 나중에는 비록 개헤엄이지만 수영도 제법 할 수 있고 심지어는 수심 깊은 바다 한복판에 어설픈 모습으로 떠있을 수도 있게 됐다.


물속에 있는 생명체들을 보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보통은 그냥 모래사장에 수건 한 장 깔고 누워 태닝하다가 더워지면 물에 들어가 몸을 식히곤 했다. 아예 작정하고 나가는 날에는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채워 물과 맥주를 잔뜩 챙기고 또 휴대용 그릴에 숯, 고기, 집게, 버너와 라면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바다로 갔다. 친구들과 힘을 보태 셋업을 마치고 나면 아일랜드뮤직이 크게 흘러나오는 나무 그늘에서 바다에 지는 석양을 보며 바비큐파티를 했다.


누군가의 생일이나 작별이벤트를 할 때는 보트 파티도 제법 자주 했다. 탑승인원이 50명인 배를 빌려서 바다 한복판에서 우리끼리 술 마시고 수영하고 노는 괌에서의 특별한 놀거리를 우리는 뱃놀이(boating) 대신 부즈 크루즈(booze cruise)라고 불렀다. 배 한 척과 항해사 한 두 명을 3시간 빌리는 데에 $1,500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50명이서 나눠 내면 인당 $30이었고, 먹고 마실 거리는 각자 좋아하는 것들로 챙겨갔다. 보트 대여시간은 항상 4시에서 7시였기 때문에 해가 너무 뜨겁지 않은 오후 늦은 시간부터 해질녘까지 파티를 즐겼다. 운이 좋으면 돌고래 떼도 만날 수 있었다.


행복했다. 성격도 아주 많이 순해졌다. 한국에서 맨날 책상에 앉아 책 속의 깨알 같은 글씨만 보다가 괌에서는 바다 수평선 너머를 멀리 내다보다 보니 시력마저 좋아졌다. 그렇게 매일이 천국 같더니 11개월이 지날 즈음엔 작은 섬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로스 쇼핑도 지겹고 수영도 귀찮아졌다. 그렇다고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진 건 아니다. 다만 좀 따분했고 괌의 모든 게 익숙해서 새롭지가 않았다. 12개월의 인턴쉽이 끝나고 나머지 4년 정도를 그냥저냥 살았다.


괌에서 할 수 있는 다른 활동들이라면 차모로야시장 주변의 푸드트럭이나 주말에 열리는 농산물시장, 아니면 일요일에 호텔 뷔페를 이용하는 선데이브런치 같은 게 있다. 거의 집에만 있다가 가끔씩 이런 먹거리를 찾아 나서는 게 1년에 몇 번 없는 행사가 됐다. 경치 좋은 괌에 살면서 자연을 그닥 못 누리고 사는 것 같아 억울한 기분이 들 땐 삼각대를 들고나가서 바다를 배경으로 셀프 스냅 촬영을 했다.


원체 술 마시는 건 좋아해도 클럽이나 바에 가서 노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서 친구들이랑은 항상 집에서 만나 놀았다. 다 같이 수다를 떨거나 보드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술을 마셨다. 아주 가끔씩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땐 가라오케(karaoke)에 가서 바 안의 모든 사람들과 돌아가며 노래를 했다. 부르고 싶은 노래 제목과 가수 이름을 적어서 카운터에 건네면 바텐더가 노래 예약을 해줬다. 대부분의 술집들이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에는 문을 닫았기 때문에 늘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집에 귀가했다.


대체로 건전하고 한가로운 삶이었다. 모든 게 느리고 평온했다. 꽤 오랫동안 유지됐던 그 단조로운 일상이 참 감사했다. 이윽고 괌을 떠나게 됐을 때는 아무런 미련도 느껴지지 않았다. 남은 친구들과의 이별이 아쉽긴 했지만 이미 많은 내 친한 친구들은 미국 본토로 옮겨간 지 오래였다. 작아도 너무 작은 그 섬에 평생토록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떠나온 지 1년이 더 지난 지금 생각한다. 괌, 떠올리면 포근하지만 정작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별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내 제2의 고향. 많이 애틋하면서도 또 그립지는 않은 나의 작은 섬. 평생 잊지 못할, 내 어린 날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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