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의 장소 : 유성구 작은 도서관 기행 (프롤로그)
대한민국에는 6,899개의 작은 도서관이 있다.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 2022). 최근엔 마을 안의 작은 도서관을 위한 예산을 전면 삭제하고 공간의 용도를 변경한다는 등 이런저런 소란이 발생한다. 아무래도 작은 도서관을 마을 곳곳에 심게 된 이유를 잊은 듯하다. 잊어서는 안 될 명분을 앞세워 만든 공간임에도 말이다. 작은 도서관을 논하며 투자비용 회수, 많은 사람의 이용, 경제적 가치 등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초에 작은 도서관의 가치는 계산적인 도시의 법칙에 담을 수 없다. 마을의 작은 도서관을 없애려는 움직임은 초심을 잊었거나, 그들의 가치와 영향력에 대한 이해를 잃었기에 일어나는 참변이다. 어느 쪽이든 부끄러운 결과이다.
작은 도서관을 답사하기로 마음먹은 순간까지도 이 시간들이 나의 삶에, 관점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함부로 외면할 수 없는 세계를 경험했다. 가장 궁극의 문장을 먼저 이야기해 보자면, 작은 도서관의 역할은 ‘인간다움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그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귀한 마음들로 운영되는 공간이다. 소리 소문 없이 사람 냄새가 삭제되는 도시 안에서 작은 도서관은 일종의 <틈>이자, <쉼>이자, <숨>이 된다. 보다 많은 이가 작은 도서관에 주목하길 바란다. 어떠한 판단의 잣대도, 차별의 시선도 없이 그저 사람을 사람으로서 바라보는 이 귀한 공간을 말이다. 이 공간의 가치를 곱씹거나, 나처럼 외면할 수 없는 책임감을 느껴버리거나, 도서관에서 마음으로 사람을 마주하는 참여인이 되길 바란다. 더불어, 이해 없이 함부로 생태계를 파괴하기로 맘먹은 이들은 자신의 이기적인 민 낯을 마주하며 일말의 수치를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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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유성구에 있는 작은 도서관을 탐방한다’라는 목표뿐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만나게 된 사람, 공간, 도서관의 신비로움은 예측하지 못했다. 작은 도서관들 사이를 뚜벅뚜벅 걸어가며 답사했다. 도서관의 생김새를 관찰하고 자원봉사자와 한 시간 남짓의 대화를 나눴다. 후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대화를 곱씹어 보거나 이용자를 조용히 지켜보거나, 서가에서 책을 꺼내 훑어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유성구’를 관찰하겠다고 다짐한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대전은 작은 도서관의 규모가 가장 크지도, 이용객이 가장 많지도, 보유한 장서수가 유별나지도 않다. 전국 통계를 앞에 두고 조사지를 선정했다면 주목도가 떨어지는 지역이다. 그런데 내가 궁금했던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작은 도서관은 나의 생활 권역 안에서, 친근하게 드나들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큰 강점을 갖는다. 내 주변에 어떤 작은 도서관이 있고, 어떤 마음들로 운영되고 있으며, 어떤 이야기가 흐르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다음의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
유성구 안에는 총 80개의 작은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다. 작은 도서관 중에서도 사립인지 공립인지, 나아가서는 운영 주체가 교회, 주민센터, 평생학습원, 개인인지, 아파트인지, 테마가 있는지 없는지 등등을 척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나는 조사 대상 도서관을 테마, 공립, 아파트, 주민센터, 문화센터 등으로 나누고 각 유형별 기관을 탐색하는 것으로 목표를 설정했다.
여행하듯 도서관을 방문한 날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우리는 내내 이 도시에서 작은 도서관의 역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공간을 지키는 이들이 내내 고민한 숙제였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어떤 이익 없이, 그저 나와 이웃의 안녕을 빌며 태운 희생을 말이다. 자본은 없고 명예는 외면되는 이 공간에서, 도시 외곽을 조용히 관찰하고 기꺼이 둥지를 마련하는 마음이 유의미하길 바랐다. 그 노력들이 빛을 보는 것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라며 다음의 글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