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야의 다섯 번째 레터
연아 안녕! 슬슬 너한테 인사를 건네는 게 어색하지 않은가 봐. 차가운 계절에 만난 우리가 이렇게 따스한 날을 보내고 있으니 말야. 여유로운 연휴! 수요일 아침 잘 보내고 있어? 요즘 날씨 정말 장난 아니지! 5월부터 더워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가벼운 가디건을 걸칠 만큼 청량해. 맑은 하늘과 바람을 느낄 수 있음에 기분 좋은 요즘이야. (아쉽게도 연이가 레터를 읽고 있을 5월 15일, 오늘은 흐리지만.) 요즘 같은 날씨가 전시 보러가기 가장 좋은 것 같아.
나는 지난 주말에 어버이날을 맞아서 주말에 부산에 있는 본가에 다녀왔어. 부모님과 전시회 데이트하려고 집 근처의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어떤 전시를 하는지 찾아봤는데, 전시 제목이 딱 꽂히는거야! 심지어 관람료도 무료. 꽤 관종같은 오늘 레터의 제목, 《능수능란한 관종》이었어. 요즘 '나는 관종인가 아닌가'에 대해 자주 고민했었는데(!) 전시의 형태로 보여지는 관종은 무엇일지 궁금증이 샘솟았어. 이메일 제목을 보고, 다야가 '능수능란한 관종'이란 뜻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 전시 제목을 강조하고 싶어서 나름대로 시도해본 언어유희적 제목이야 ㅋㅋㅋ 사실 관종보다도 '능수능란'한 사람이고 싶더라.
《능수능란한 관종》
부산현대미술관
기간 3.16-7.7
《능수능란한 관종》은 현대 사회에서 관심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다양한 방법을 동시대 예술의 관점에서 탐구한다. 전시는 관종이라는 다소 과격한 용어를 넘어 관심을 추구하는 행위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직면한 사회의 본질적인 부분임을 탐색한다. 여기서 우리는 예술·광고·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관심을 얻기 위해 사용되는 전략들을 조명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모순 그리고 창의성을 들여다 본다.
전시는 관심을 얻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을 얼마나 잃어버릴 수 있는지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관심의 추구가 아니라 우리의 본질적 가치와 우리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고찰로 이어질 수 있다. 전시를 통해 어느 정도는 관종이 되어야 하는 현대 사회의 압박 속에서 어떻게 일상을 유지하고 의미 있는 삶을 구축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연이는 '관종'이란 무엇인지 고민해 본 적 있어? '관심종자'의 줄임말인 '관종'은 말 그대로 사람들의 관심을 과도하게 갈구하고 독점하고 싶은 욕망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야. 이 단어에는 타인의 시선을 갈구하는 욕망 자체에 대한 폄하, 그리고 관심을 받기 위해 수행하는 의도적 행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비치게 하지. 하지만 우리는 아주 명백하게 '관종의 시대'를 살고 있어. 인터넷과 휴대폰은 이미 수많은 관종들의 터전이 된지 오래이고, 노력을 통해 얻어낸 관심은 '관종'들에게 경제적, 심리적 풍요를 누리게 해. 오히려 이런 세태가 '관종'이란 말을 강화하고, 노골적인 관심의 갈구를 폄하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 같기도 해. 사실,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멸시받아야 하는 일은 아니잖아? 다만, 전시 서문에서 언급된 것처럼 '관심을 얻기 위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고찰해야 할 만큼 관심에 집착하고 갈구하는 사람들과 사회의 모습은 나름대로 살펴보고 진단해 봐야 하는 것 같아.
사람들은 왜 관심을 받고싶어 하는 걸까? 책 「관종의 시대」에는 현대 사회를 '대상'(타자성)이 소거되고 '나'만 남은 시대라고 진단해. 타자성이 사라진 주체(나)는 투쟁도 하지 않고, 존재감도 흐려지며, 수치심도 없는, 그저 관심만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는 존재가 되는거지.
책의 내용과 조금 다르지만, 내 생각에 관심을 갈구하는 심리의 본질은 결국 '사랑'과 '소통'의 갈구야. 정도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일상에서 충분히 사랑받고 소통하는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소위 말하는 '관종짓'을 하지 않을거야. 관심의 갈구, 혹은 소통의 욕구와 '관종'은 여기서 분리되어 탐구되어야 해. '관종'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히 사용하는 말이지만, 곧 '관심받는 것을 조금 즐기는' 정도에도 남용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전시 《능수능란한 관종》은 관심을 얻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통한 예술작품을 선보이고 있어. 자기 신체를 한계치까지 몰아붙이는 행위, 충격 효과, 실험들을 통해 얻은 관심으로 예술가들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과연 관종의 행위는 충만을 경험할 수 있을까, 아니면 공허할까?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을까? 분명한 건, 우리가 이 시대를 사는 것만으로 어느정도 관종이 되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는 거야. 지금부터는 개인적으로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작가 세 팀을 소개해 볼게!
크리스 버든
크리스 버든의 초기 작업은 자신의 신체를 사용한 극단적이고 충격적인 퍼포먼스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팔에 총을 쏘거나 (<쏘다>) ... 자신의 신체를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 사회 문제에 관한 탐구와 비판을 시도했다. 그는 자신의 퍼포먼스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강렬한 정서적 반응을 유도하고 예술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함으로써 개인의 행동이 사회적 맥락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질문한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충격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사회 문제에 관한 보다 깊은 질문들을 제기하고 대중의 인식을 전환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있다. (이하 생략)
출처: 《능수능란한 관종》,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장에 첫 입장을 하자마자 만났던 이상한 작품이야. 헤드셋을 착용하고 비디오를 봤는데, 사람(들)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우물 같은 웅덩이에 얼굴을 처박았다가 고개를 들며 헐떡이는, 긴 분량의 비디오였어. 헤드폰에서 헐떡이는 숨소리와 찰박이는 물소리가 들리는데, 어딘지 오싹하고 이상하면서 ASMR같다는 느낌이...들더라. 그런 감상을 느끼는 것 또한 2024년에 할 수 있는 독특한 감상이라고 생각해. 목숨을 담보로 한 행위 예술들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줌과 동시에 담론의 장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 다만 최근에는 더이상 이런 식의 퍼포먼스가 성행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행위들조차 새롭지 않은 시대가 되었기 때문일테고, 한 편으론 다른 방식이 더 관심을 끌기 효과적이기 때문인 것 같아.
조영남
가수 겸 화가인 아트테이너 원조 조영남은 가수로서만이 아니라 화가로도 50여년간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왔다. 2016년 그림 대작 사건으로 기소되면서 방송과 전시 등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이번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작품을 처음 대면하는 기회일 수 있겠다. 당신은 그의 작품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의 작품에 관한 평가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는 예술이 개인의 주관적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출처: 《능수능란한 관종》, 부산현대미술관
조영남씨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우리나라 대표 관종 엔터테이너지! 평생을 대중 예술가로 살아온 사람에게 '관종'이라는 말을 붙이기 우습기도 하지만, 현재 조영남씨가 한국의 대중 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사건들을 생각했을 때, '관종'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랐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관종을 탐구하는 전시에서 당당히 조영남을 제시했다는 점 자체가 현대미술 같아서 흥미로웠어! 비록 대작 논란이 있었다고 하지만, 처음 보는 조영남 '작가'의 작품들은 정말 좋더라! 그 유명한 화투화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에게'라는 제목의 작품은 장미 꽃만 그려지니 화투들로 꽃다발을 만든 그림이였는데, 친구를 향한 순수한 애정과 순애보같은 정서가 느껴져서 정말 마음에 들었어. 백남준과의 대화를 남긴 '백남준과의 대책없는 대화'에서도, 자신을 향한 대중의 시선이 어떠한지를 아주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인지하면서도, 인간적인 변명과 솔직함이 돋보여서 영화감독 홍상수가 떠오르기도 했어. 그들의 인생이 어찌되었건 작품은 빛난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겠더라고.
컨아밈 Contemporary Arts Meme
컨아밈은 온라인에 부유하는 이미지들(짤방)에 문장을 입혀 동시대 미술에 관한 미술을 생성한다. 특히 미술 관련 학생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한 밈을 제공하며 팔로워 수를 늘리고 있다. 종종 「컨아밈 상담소」를 열어 인생 상담을 해주는데 이를 통해 예술가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
@contemporary_arts_meme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트리는 방법:
어린 아이가 그림을 그렸을 때 재능이 보인다고 칭찬하기
출처: 《능수능란한 관종》, 부산현대미술관
컨아밈은 평소에 인스타그램으로 팔로잉 하고 있었는데, 예술가들이 스스로에게 가하는 자조와 자책, 그럼에도 남아있는 '관종력'을 한 데 뭉쳐놓고 우스운 밈으로 만드는 데 탁월하다고 생각했었어. 전시에서 작품으로 걸려있는 걸 보니 '밈'이 드디어 예술의 영역으로 침투하기 시작했구나! 싶더라고. 밈을 활용한 예술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 전개될지, 그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작업들이었어.
저마다 '능수능란한' 관종력을 펼쳐보이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맛보기 해봤어. 어때? 저들의 관종력과 이를 기반으로한 작품들이 연이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 궁금하다. 앞서 소개한 세 작가 외에도 정말 많은, 23팀의 작가들을 만날 수 있어. 그 중에서는 충격은 줄 지언정 불쾌감이 느껴지는 작품들도 있었고, 예술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람들의 이목을 받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적절한 방식과 결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어. 의도와 맞지 않게 받은 관심은 물음표만 남을 뿐이더라고. 또는 의도 자체를 잘 파악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있었어.
개인적으로는 전시의 규모가 상당히 커서 놀랐어! 족히 1시간 30분은 걸리더라고. 부산현대미술관은 그 크기나 규모, 그리고 현대미술의 최전방을 자처하는 그 기획에 비해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워. 지리적인 위치가 부산에서도 조금 외곽에 있는 편이라, 가기로 마음 먹기가 아주 쉽진 않거든. 그래도 7월 초순까지 긴 기간 진행되는 전시니까, 관심있는 연이들은 부산에 방문할 일이 있으면 시간내서 꼭 들러봐! 가슴 속에 샤이 관종 하나씩은 품었을 연이들의 답장 기다릴게.
다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