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터어리 Jun 25. 2024

재미없고 지긋지긋한 것의 위대함

다야의 여섯 번째 레터

연아 안녕! 우리 너무 오랜만이다. 늘 그렇듯 3주 만에 보는 건데  호들갑인가? 지난 3주 동안 나한테 되게 많은 일들이 있던 것 같거든. 그만큼 여러 생각이 들었고,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어. 오늘 레터는 전시 소개가 아닌 내 에세이가 될 것 같아. 전시 이야기까지 하려다 분량 조절에 실패했어. 오늘 전하지 못한 전시는 다음 레터에서 소개할게!


2주 전, 친구 K의 단편영화 촬영을 도와주러 경주와 양평에 다녀왔어. 경주에서는 1박 2일간 짧은 여행 겸 경주를 돌아다녔고, 전시도 봤어. 여행은 아니었지만 날씨는 미치도록 화창했고, 아주 오래된 천년의 도시답게 모든 것들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어. 봉긋한 동산들, 나무 한 그루마저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더라.


경주의 풍경




촬영지 주소를 받고 숙소 근처에서 택시를 잡아 내린 곳은 ‘경주 오릉’이었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헤매는데 저 멀리 사람들이 모여있는 게 보였어. 다가가니 몇몇은 익숙한 얼굴. 현장에서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학교 선후배들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대학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어.


나는 학생무리 역할로 보조 출연을 하러 간 거였는데, 롯데월드에서도 입은 적 없는 교복을 촬영 때문에 10여 년 만에 입으니 너무 어색하고 웃기더라. 사이즈가 남아있는 교복이 몇 벌 없어서 겨우겨우 몸을 욱여넣었어. 우스꽝스레 교복을 입은 채 조연출 선배에게 다가가 “선배, 잘 지냈어요?” 했는데 그 선배도 나도 어이가 없어서 막 웃었어. 뭐하고 지냈느냐며 안부를 묻고, 사는 얘기를 나누다가 곧 촬영 순서가 되어 대화는 중단됐어.

대기 시간, 보조출연진 중에는 실제 고등학생들도 있었어.


돌아갈 시간이 될 때까지 스태프로 참여하던 후배 하나와 이야기를 나눴어. 영화감독을 준비하던 그 후배는 힘들어서 회사 취업을 하려다 마침 영화제에 출품했던 게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참이었어.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식이 그 아이를 다시 ‘영화인’의 길로 불러들일 갈림길이 되어, 마냥 기쁘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었나 봐.


그다음 주에는 추가 촬영이 있어 스태프로 일하러 양평에 다녀왔는데, 내내 야외촬영에 닦이지 않은 자갈길과 폭포 사이를 계속해서 오가서 그런지, 다음 날은 온몸을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어. 그럼에도, 이 과정들을 통해 나는 하나의 생각에 골몰하게 됐지.


기분이 이상했던 게 뭐냐면, 여전히 ‘같은 일’을 하는 K의 모습이었어. 몇 년 전 K의 현장에서 일했을 때 정말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나. 스태프로서 영화를 만드는 행위에 더 이상 재미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 육체적 피로와 내가 지닌 책임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거든. 근데, 그런 나보다도 K의 고통이 더 컸을 거야. 개인이 영화를 만든다는 건 어마어마한 경제적, 체력적, 사회적 리스크를 끌어안는 일이고, 그렇게 만들어 냈다 하더라도 영화의 성패는 노력과 비례하지 않으니까. 촬영이 끝난 후에도 꽤 오랫동안 K는 정말 힘들어했어. 경제적 이유,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 결과물에 대한 아쉬움...... 그 모든 것들이 다 내포된 괴로움이었지. 아무리 친해도 그 시기에는 감히 K에게 말을 걸기조차 어려웠어. 그 영화는 세상에 나와 나름대로 많은 사랑을 받았어. 크고 작은 영화제와 상영회들에 종종 불려 가곤 했거든. 이후에도 꾸준히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 연출의 길을 멈추지 않는 K가 대단했지만 늘 그래왔으니 그러려니 했지. 그리고 몇 년 만에 새 영화 현장에 가게 된 거야.


K는 더 이상 몇 년 전 내가 봤던,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콘티를 혼자서 닥치는 대로 찍는 아이가 아니었어. 아수라장일 거라 예상했던 엑스트라만 50여 명이 넘는 규모의 현장을 질서정연하게 진두지휘했고, 여유 있고, 노련했어. 큰 규모를 감당할 그릇이 됐다는 인상을 받았지. 몇 년간 지지부진하게 느껴졌던 시간을 통과해서, K는 어엿한 영화감독이 되어 있더라. 그 시간이 너무 대단해서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었어.


사실, 나는 끈기가 없는 사람이야. 싫증을 잘 내고, 단기적인 성과를 내는 데엔 강하지만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꾸준하게 노력하는 데는 젬병이지. 내게 가장 어려운 건 반복적인 일을 계속, 오랫동안, ‘스스로’ 하는 거야. 여기서 ‘스스로’가 중요해. 나는 강제적인 상황이 주어져야만 겨우 몸을 일으킬 정도로 게으르거든. 회사를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고,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 스터디를 만들고, 공부하기 위해 학원을 끊어. 만약 내 삶에 그런 장치들이 없다면 어딘가 씻지도 않고 누워서 휴대폰만 보고 있을지도. 나처럼 싫증이 잘 나는 사람은 조금만 성과가 없거나 반복되어도 지겨움을 느끼거든? 그러니 하나의 목표를 위해 홀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모든 유형의 행위가 얼마나 재미없고 지긋지긋할지 상상하기 어려워.


내가 이전에 K의 노력을 그러려니 했을 땐, 그게 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아. 그런데 막상 K가 보낸 시간의 결과물 같은 것들을 눈앞에 마주하니까, ‘K가 견뎠을 지겨움, 외로움, 고통이 K를 이렇게 성장시켰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아픔이 손에 만져지는 듯했어. 예술가가 걸어야 할 필연적이지만 막연한 일상, 매일 같지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갈고닦아야 오랜 시간 후에 결과로 나타나는 것들. 어쩌면 내가 지겹다고 느끼며 쉽게 포기해온 그 과정들을 K는 군말 없이 걸어왔던거야.




왼쪽부터 <위플래시>의 앤드류, <블랙스완>의 니나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무언가에 미쳐있는 캐릭터들을 동경해. 위플래시의 주인공 앤드류는 최고의 재즈 드러머가 되기 위해 말 그대로 온몸을 내던져. 악마로 유명한 플레쳐 교수의 폭언과 휘몰아치는 채찍질에도 절망하긴 커녕 죽자살자 피투성이가 될 때 까지 드럼 연습에 매진해. 블랙스완의 니나는 흑조와 백조 1인 2역을 완벽하게 해내겠다는 압박이 공포스런 환영이 되어 괴롭혀도, 무대에서 의식을 잃는 그 순간까지 “완벽했다”며 자신의 퍼포먼스를 가늠하려 해. 무언가에 미친 듯이, 계속해서 몰입해 있는 이런 인물들은 내가 결코 될 수 없는 부류의 인간상이야. 세상에 이런 캐릭터가 정말 있을까? 싶지만 내게는 K가 저들과 다름없이 느껴져.


결과를 알 수도 없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을 보낸다는 건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하는 일이야. 영화제에 초청받은 후배가 마냥 웃을 수 없었던 것도, 다시 연출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보다 더 지난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과정들이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것임을 직감하기 때문이겠지. 그저 꾸준히, 각자의 방식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K를 비롯한 친구 몇의 얼굴이 떠올라. 글을 쓰면서 더 실감하게 됐어, 그들은 위대하다는걸!


어쩌면 예술가의 숙명이자 저주는 내 안에 끊임없이 할 말이 생겨난다는 것 아닐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남들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지속적으로 자기 세계를 확장하려고 한다는 거야.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그 재미없고 지긋지긋한 시간을 통과해 지금도 여전히 그 것들을 반복하면서, 그렇게 그들의 위대함은 차곡차곡 쌓이는 것인지도 몰라.

작가의 이전글 나의 사춘기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