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야의 일곱 번째 레터
연아 안녕! 6월이 되자마자 온몸에 힘이 쭉 빠질 만큼 더운 나날들이야. 습기도 더위도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요즘, 건강 유의하고! 아이스크림 많이 먹고 시원 달달한 여름 보내자.
연이들은 아트페어에 가본 적이 있어? 난 일러스트 페어나 디자인 페어는 가봤어도 아트페어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어. 전시나 미술에 관심이 생긴 이후부터는 쭉 아트페어에 가볼까 생각만 했었는데, 우연히 춘천에서 열리는 '춘천 아트페어 아르로드'에 지인의 초대로 방문하게 됐어. 아트페어 가면 뭘 해야 하지!? 점잖 빼며 그림을 '흠흠'구경해야 하는지, 무조건 작품 하나는 사야만 하는건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이번 기회를 통해 아트페어를 조금은 체감할 수 있어 정말 즐겁고 재밌는 경험이었어. 나처럼 아트페어가 생소한 연이도 있지 않을까 해서 오늘은 연이들에게 나의 아트페어 방문기, 그리고 첫 작품 구매기를 소개하려고 해.
기억하는 연이도 있겠지만 원래 이번 주 레터에는 경주에서 방문했던 우양미술관의 전시들을 소개하려고 했었어. 하지만 우양 미술관의 전시는 9월 초까지 이어지는데 반해, 아트페어처럼 짧게 운영되는 행사의 현장성을 빠르게 보여주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양미술관 방문기는 다음 레터에 소개할게!
· 아트페어 란?
여러 갤러리가 연합하여 미술품을 전시, 판매하는 행사. 미술 시장의 최신 경향을 살펴볼 수 있고 미술 관계자 및 미술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되기도 한다.
아트페어는 수많은 갤러리와 예술가들이 참가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일반 전시와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어. 부스 별로, 혹은 작가 별로 다양한 개성을 만날 수 있거든. 한 자리에서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까지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에 연이들도 작품 구매를 해보고 싶다면 아트페어에 방문해 보는 걸 추천해!
✔️ 2024.6.21(금) ~ 6.25(화)
✔️ 오프닝 6.21(금) 14:00
내가 방문했던 춘천 아트페어 아르로드 R.OAD는 Arte(예술)에서 파생된 ‘아르’와 실크로드의 ‘로드’를 조합한 단어로, 춘천에서 동시대의 예술가와 관람객을 잇고자 하는 취지를 가졌다고 해. 춘천내 지역작가와 지역외 작가까지 두루 소개했는데, 원화와 판화 모두 개성 넘치고 독특한 작품들이 많아서 눈이 참 즐거웠어. 맥주와 지역 탁주 시음회도 함께 하고 있었고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 관람객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도 하고 있어서 아트페어를 넘어서 하나의 문화 행사나 지역 축제처럼 느껴졌달까.
큰 중정을 가운데 둔 멋진 건축사무소에서 진행된 아트페어는 그 규모가 아주 거대하진 않아도 매일 새로운 이벤트와 행사가 있고 모든 연령대를 아우르기 위해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았어. 고고하고 딱딱한 분위기 보다는 편안하고 모두가 즐길 수 있었고,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찾은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했어. 특히 좋았던 건, 이 곳의 큐레이터님께서 계속 돌아다니며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작가에 대해 자세히 설명 해주셨다는거야.
총 45명의 작가가 참여한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1층에는 주로 MZ세대의 젊은 신진 작가 작품이, 2층에는 중견 작가들의 작품과 도자기등 조형 예술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어. 이 가운데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 몇 점을 보여줄게!
멋지지 않아? 과연 다양한 작가들이 모인 곳 답게 개성있고 멋진 그림들을 보고있자니 눈이 돌아가는줄 알았어. 일러스트처럼 현대적이고 세련된 작품들도 있었고, 특히 원형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들이 좋더라고. 신나게 구경을 하다가, 어느새 나는 어떤 그림 앞에 서 있게 됐어.
산 위에 지어진 집을 그립니다. 저는 자연과 문명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산 위에 집을 그리고 다시 뜯어내는 작업을 통해 자연이 드러나는 작업을 합니다. 혼합재료를 이용해 레이어 차이가 나게 작업을 하면서 가려지기도 혹은 드러나게 하기도 합니다.
파스텔 빛 주황 바탕색이 주는 따스하고 동심에 가까운 느낌, 그리고 마치 자동차나 비행기 따위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장난감처럼 선이 굵고 귀여운 탈 것들이 보여. 그 뒤로는 반짝이는 산이 떡 버티고 있어. 다채로운 주황, 분홍, 파랑의 컬러칩들과 비행기의 민트, 초록색이 절묘하리만치 잘 어우러지고 조화로웠어. 마치 아이들의 동심 세계를 그려 놓은 듯한 이 그림은 사실 한국 전쟁 때 고향과 집을 잃고 피난을 떠났던 실향민들에 대한 작업이기도 해. 어쩌면 이 그림이 지닌 해맑은 컬러는 우리 민족의 내밀한 슬픔을 감추기 위한 걸지 몰라.
한국 전쟁 당시 부산에 피난민들이 모이면서 산 위에까지 집을 짓고 살았는데, 어쩌면 인간의 이기심이 고이다 못해 폭발한 것 같은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산'은 사람들에게 자기의 자리를 내주었다고 생각하셨대. 나는 살아본 적 없는 전쟁 실향민들의 마음. 그러나 갈 곳이 없어 늘 불안했던 이들의 마음 한편에는 '그림 같은 집에 살리라' 하는 소망이 늘 있었을 거야. 그 소망의 색은 꼭 마치 이 그림과 같았을지도.
실은 나도 집이 없어. 뚜렷한 거처 없이 해마다 재계약이나, 이사를 하며 월세를 살고 있기도 하지만 어쩌면 '마음의 고향'이 없는 것이기도 해. 고등학교 때 쭉 살아왔던 성수동을 떠나 부모님은 지방으로, 나는 서울 이모 댁으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으니까. 언젠가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땐 '저 많은 건물 중 내 집이 없다니.' 또는 '내 일자리가 없다니' 한 적이 있어. 갈 곳 없이 정처 없는 마음을 전쟁 통의 실향민과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현대인이라면,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구나 마음 속 전쟁과 폐허에서 고통스러워 한 적이 있었을거야. 어쩌면 그 전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고.
산에는 빽빽한 네모들이 가득 차있어. 마치 모두의 작은 '집' 한 채씩은 마련해주려는 듯, 색이 다른 네모 칸들로, 그 안으로 우리는 모두 거처할 수 있을까? 그러기를 바라면서 나는 이 그림을 나의 월세 집에 데려가기로 했어. 모두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그림, 위로에 색이 있다면 그건 파스텔 주황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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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표를 결제할 때 빼곤 비교적 고가의 물건을 덥썩 구매해 본 적이 없었고 가격이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라 무척 고민이 됐어. 결국, 그림을 본 첫날은 '좋다' 라는 생각만 가지고 돌아갔다가 다음날 그림을 보러 다시 방문했지. '그림을 걸어둘 멋진 장소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걸 사는 건 사치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연이들에게만 얘기하는 건데, 내가 받은 감동에 비해 가격이 나쁘지 않았어. ㅋㅋㅋ 이런 그림을 다시 만나려면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겠단 생각이 들었거든.
큐레이터님이 나를 맞아주셨고 그림이 걸려있는 흰 벽에서 그대로 작품을 떼서! 포장을 시작했어. 내가 잘 몰라서 그런 건지, 나로선 상당히 고가의 작품을 산 건데 스티로폼에 적당히 둘둘 말아서 테이프 붙여주시더라고? 그래서 또 '아 이런거구나' 했지.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 나도 잘 모르겠어. 어쩌다 보니 인생 첫 컬렉팅을 하게 됐는데,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와서 너무 기쁘고! 근데 또 걱정되고 얼떨떨하고 내가 잘한 건가 싶고. 확실한 건, '연이들한테 얘기 해야겠다'였지. 근데 뭐 막상 사보니까 이젠 말할 수 있겠다. 그림 사는거 뭐 별 거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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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집에 가져오니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어서 포장된 그대로 둔 상태야. 앞으로 이 그림을 친구 삼아, 거처가 어디가 되었든 함께 해보려고.
오늘 레터는 말보다 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서 사진을 많이 넣었는데 결국 둘 다 많은 레터가 되어버렸네. 연이들에게 즐거운 간접 체험이자 재미있는 콘텐츠가 됐으면 좋겠다. 내 그림 어때? 나 잘 샀어? 잘 샀다고 해주라.
9월에는 세계 3대 아트페어로 불리는 '프리즈'의 서울 페어, '프리즈 서울'이 있어! 이번 레터를 통해 아트페어에 관심이 있는 연이는 9월에 프리즈 서울에 방문해봐도 너무 좋을 것 같아. 우리 9월에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