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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터어리 Oct 17. 2024

정반합 맛있게 써먹기

주영화의 열한 번째 레터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맛있게 먹고 게임도 해본 사람이 재밌게 하는 법. 문화생활도 마찬가지야. 취향에 정답은 없지만 잘 즐기는 방법에는 몇 가지 정석이 존재하거든. 오늘은 연이 네가 영화를 보거나 문학 작품을 읽거나 전시를 감상할 때 자주 써먹을 수 있는 치트키 하나를 알려줄게.


도식화한 정반합. (출처-막강생각)


  연이는 ‘정반합’에 대해 들어봤어? 어디서 주워듣기는 했는데 정확한 의미를 몰라서 의식의 저편으로 흘려보냈다면 오늘 이 레터가 도움이 될 거야. 이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식으로 범용성이 넓은 데 반해 실제로 적용했을 때 유의미한 결론이 딱딱 도출되는 쾌감이 있거든. 


  정반합은 말하자면 육즙을 기가 막히게 살리는 스탠 팬이자 고사양 게임을 온전히 플레이할 수 있도록 돕는 그래픽카드인 셈이지. 정반합으로 모든 창작물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해하기 어려워서 생각하기를 포기했거나 심지어 반감까지 들었던 작품을 연이만의 해석으로 흡수할 수 있을 거야.


<양들의 침묵>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정반합이 뭔지 설명하기 전에 영화 <양들의 침묵>을 소개할게. 1991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FBI 요원 ‘클라리스’와 식인 살인마 ‘한니발’의 묘한 관계성을 다루고 있어. 


  클라리스는 한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한니발에게 조언을 구해. 한니발은 범인을 추적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클라리스의 내적 성장에 크게 기여하지. 이 과정에서 한니발도 클라리스의 순결한 사명감에 감화돼. 법의 수호자와 무법자가 공생하는 것에서 나아가 고차원적인 세계로 서로를 인도하는 결말은 기존의 히어로-빌런 영화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져.


  일반적인 영웅 서사는 정의를 비호하는 히어로와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빌런의 갈등을 통해 전개되다가 종국에 빌런이 패배하고 평화를 되찾으면서 끝나. 히어로가 ‘정(正)’이고 빌런이 ‘반(反)’이라면, 반의 혁명이 실패로 끝나고 정의 가치가 긍정되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안도감을 주는 셈이야. 


  이런 방식은 무난하게 즐겁기는 하지만 사실 뜯어보면 다 거기서 거기라 지루하기도 해. 한두 개 정도 작품이야 눈과 귀의 자극으로 충분히 재미를 맛볼 수 있지만, 하고많은 히어로물을 보다 보면 다 똑같은 조미료가 들어갔다는 생각에 이내 물리기 마련이거든. 그런데 <양들의 침묵> 같은 비범한 영화는 뭔가 달라. 쉬이 맛보기 어려운 짜릿함이 느껴진달까.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정도 반도 강화되는 결말이 아닌 둘 모두를 초월한 합(合)으로 귀결되기 때문이야.


<양들의 침묵>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법의 수호자인 클라리스를 정(正), 무법자인 한니발을 반(反)으로 보자. 보편적인 정의의 원칙에 따라 악인을 검거하려는 클라리스는 선하지만 그다지 성숙하지는 않아. FBI에 요원이 된 이유도 단순히 수사관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잇고자 했을 뿐이야. 그런 그에게 한니발은 ‘왜 피해자를 범죄로부터 구하려고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해. ‘선이니까 당연히 행해야 한다’는 정언명령은 한니발의 심리 수사에 의해 철저히 해부당하지. 


  한니발의 심문에 따라 클라리스는 어린 시절 양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숨이 벅차도록 달렸던 기억을 떠올려.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당위가 아닌, 사람을 비롯한 모든 위기에 빠진 생명을 구하려는 추동이 이미 자신의 본질에 깊숙이 새겨져 있었음을 깨닫게 돼.


  인간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한니발은 클라리스를 파악하면서 자신에게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껴. 악인인 자신과 정반대인 클라리스가 인간을 살리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인간은 고깃덩이가 아니라 보호하거나 혹은 군림해야 할 가엾은 존재로 여기게 되지. 물론 그에게 인간은 여전히 미물이기 때문에 살인을 멈추지는 않겠지. 우리가 돼지를 불쌍히 여긴다고 삼겹살 먹기를 그만두지 않듯이. 하지만 한니발은 과거와 달리 연민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이해하게 됐어.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 전혀 다른 필터가 생겨난 거야.  


♫•*¨*•.¸¸♪✧



  그런 두 사람의 교감은 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 정확한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은 클라리스와 한니발의 행보로 많은 이들의 삶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란 사실이야. 예수가 어린 양을 인도하고 신이 타락한 인간을 심판하듯 말이지. 


  물극필반. 극과 극은 통하잖아. 선과 악의 극한까지 치달은 두 사람은 이 세계에서 서로만이 공유하는 연대감을 품고 남은 삶을 살아갈 테지. 작품이 선을 향한 맹목적인 충성도, 악에 대한 엄중한 처단도 아닌 제3의 결말에 이를 때 관객의 지평 또한 넓어져. 이것이 바로 <양들의 침묵>이 도달한 합이야.


<양들의 침묵>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어때? 유독 클라리스에게만 친절했던 한니발의 태도나 흉포한 살인마에게 애틋함을 느꼈던 클라리스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겠어? 정반합에 따른 작품 해석은 이렇듯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풀리지 않는 복잡한 감정의 수식을 명료하게 만들어.


  영화를 보면서 이해가 가지 않았던 인물의 행동이나 당혹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의 변화도 정과 반을 세우고 합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자신만의 해석으로 완성할 수 있지. 정반합이라는 도식의 기원인 헤겔의 변증법은 이런 식으로 철학적인 개념을 논리적으로 전개할 때 자주 사용돼.



♫•*¨*•.¸¸♪✧



  정반합은 작품 내 세계를 해석할 때 말고 작품 자체를 평가할 때도 유용해. 모든 가치에는 위계가 있어서 정과 반보다 합에 도달한 가치가 훨씬 우위에 있거든. 악당을 단죄하고 영웅을 칭송하며 마무리하는 기존의 히어로물이 정, 그런 보수적인 내용에 반발해 클리셰를 비틀거나 다른 방식의 히어로를 제시하는 안티 히어로물이 반이라면, 어떤 작품은 정과 반의 모순을 끌어안고 히어로물의 한계를 극복해내고 말아. 


  숱하게 많은 마블 영화가 정이고 데드풀 시리즈가 그걸 비꼰 반이라면 내게 히어로물의 합으로 초월한 영화는 <왓치맨>이야. 왓치맨이 어떻게 합에 도달했는지 궁금하다면, 답장으로 알려줄래? 연이들 반응이 좋으면 다음 레터에서 이 이야기를 다뤄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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