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환풍구 속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바람이 자주 닳던 그 속에는 기름기 고인 웅덩이 속 동전과 펜 그리고 어떻게 빠진 지 모르는 신발 한 짝과 뿌연 내 얼굴도 같이 보입니다 겹겹이 묶어놓은 페이지 사이 압화처럼 스스로 뭉개지지 않고서는 피어날 수 없던 환풍구 사이로 내 머리카락 몇 가닥을 뽑아 일부로 떨어뜨려 봅니다
오늘과 내일 사이에 눌린 채
언제나 생생해야 했던
날들 사이
쌓이고
묻혀버린
나의 머리카락
너의 머리카락
우리의 머리카락을 보며
안쪽에서 불어오는 휘바람 소리를 귀 기울여봅니다
저 울음은 누가 덧붙인 각주일까요
어느새 웅덩이는 사라지고
엉킨 머리카락 무더기가
빽빽이
내 얼굴 위로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