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무덤 앞 놓인 어항 속 어느새 자라난 푸른 이끼들 내 그림자 밑에서 숨을 붙들고 있는
오전 12시
햇살이 허리를 구부러뜨리기 시작하면
쉽게 말라비틀어질 것 같던
어항 속 세계
이끼들은 금세 불어났다 더 이상 달라붙을 곳도 찾지 못해 서로 엉키기 시작하는 둥근 잎사귀들 입을 쩍 벌리고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괴물 같아
아슬아슬하게 굴곡진 형상들
소매를 붙잡으며 간밤 내내 곡소리를 내던 이모와 빈 소주병을 굴리던 삼촌의 얼굴 한쪽이 일그러진 채로
여러 번 흰 색종이를 접어
어항 속에 심어놓던 엄마의 손은
금방이라도 저 푸른 목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
괜스레 눈을 질끈 감았다 떠본다
어느새 부유하는 이끼들 사이
사라진 괴물의 형상을 떠올리며
어항 속 내 얼굴을 본다
번진 내 테두리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