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우월성 상세 2

앞 쳅터에 이어 우월성에 관한 사례를 이어감

by 이무경

③콰키우틀의 포틀래치

북미 인디언인 콰키우틀족에 관한 루스 베네딕트의 기술*은 상대적인 우월 제시 본성의 적나라한 증례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루스 베네딕트: 《문화의 패턴》 김열규 역. [도서출판 까치] 1980. 설명 가운데 ( )안의 숫자는 이 책의 쪽수.


북미 서부 해안의 밴쿠버섬이 본거지인 콰키우틀 인디언들의 문화에서는 모든 목적이 “경쟁 상대보다 자기 쪽이 우월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데(184p)”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중에서 [경제재(經濟財)]와 [결혼]의 두 가지 행태를 선택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콰키우틀에게 부(富)의 축적은 경제적인 욕구의 현실적인 투영과 경제적인 욕구의 충족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182 쪽). 그들은 신체적인 생존을 염려할 필요가 없는 풍부한 수산 자원을 얻을 수 있는 자연 속에 살고 있기때문에 남은 힘의 모든 부(富)를 그와 동등한 가치를 갖는 경제재를 얻는 일에는 쓰지 않고 그들이 승리하려는 게임에서 고정적인 가치의 대응물로 사용(183 쪽)하고 있었던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그들이 사용하는 재화들, 곧 매트와 망태기ㆍ삼나무 껍질로 된 담요ㆍ화폐로 쓰이는 텐타리아{조개}ㆍ캔들 피쉬에서 얻는 기름ㆍ담요의 수천 배의 가치가 인정되는 최고의 고가품인 구리판ㆍ구리판 다음의 고가품이라고 할 카누 등등이 ―신체적인 생존이나 평안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들 재화 소유주들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자료로써 쓰였다는 것이다.


콰키우틀족에게는 이와 같은 우월 경쟁이 문명사회(?)에서와 같이 은밀히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문명사회에서의 운동 경기가 그러하듯이 공공연히 전개된다는 점에서 독특성이 있다. 그들은 지는 자를 가련하게 여기는 일이 없다. 가련하게 여기기는커녕 그들은 패배자에게 조롱을 퍼붓고 동정 대신 경멸을 보낸다는 것이다.


“자기가 타인보다 더 우수하다는 마음이 그들의 모든 행동의 동기의 중심이 되고(186쪽)” 있는 것이다. 결혼식 ∙ 주술의 가면(假面) 등 여러 관습이 이와 같은 우월 과시 의도를 표현하는 형식이지만 가장 첨예한 대결은 그들이 가장 성대하게 베푸는 대축연, 곧 [포틀래치]에서 극치에 다다른다.


여기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우위 확보 경쟁은 다른 사회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특이한 방법으로 진행되는데 그것은 그들이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힘써 모은 재화들을 아낌없이 파괴하기도 한다는 사실에 나타나고 있다. “포틀래치의 목적은 경쟁 상대보다 더 많은 재산을 포기하거나 재산을 파괴하는 데 있다.*”


*마빈 해리스:《문화의 수수께끼》박종열 옮김 한길사 1985 5판 98p.


◉포틀래치에 초대받아 간 손님은, 캔들 피쉬의 기름을 쏟아부어 피우는 연회용 모닥불이 아무리 뜨거워도 이를 견디지 않으면 안 되며, 주인 역시 그 불길에 지붕의 서까래가 타올라 결국 집이 불태워 없어진다고 해도 태연히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불길의 뜨거움에 의한 신체적 고통이나 집의 소실이라는 경제적 손실이 와도 결코 동요하지 않을 만큼 담대한 용기와 부의 능력이 없으면 열등자의 치욕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축연은 서로 간에 번갈아 개최되며 서로 상대방을 초대한다.


그런데 만약에 초대자가 이전에 상대방으로부터 받았던 성대함 이상의 축연으로 답례하지 못하면 역시 산더미 같은 모욕을 당하게 마련이며, 이를 모면하고 상대방보다 더 큰 우월함을 입증하려면 더욱 대담한 방법을 사용해서 상대방의 기를 꺾어놓아야 한다.


예를 들면 도전자는 자기가 소유한 카누를 몇 척 부수어 모닥불에 던져 넣어 불길을 돋우며 상대방을 제압하려 한다. 상대방 또한 그 정도의 재물이 없어 패배할 약체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하인들을 시켜 자기가 타고 온 카누 몇 척을 박살내어 모닥불에 던져 넣어 불길을 끔으로서 경쟁에서 이기려 한다.


만약에 이것으로도 우열이 가려지지 않으면 이제 그들이 가장 고가의 재물로 여기는 구리판으로 결판을 내게 되는데 그 소중한 구리판을 누가 더 많이 파괴할 수 있느냐가 승패의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구리판이 담요 수천 장의 가치를 지니는 이유는 구리판의 생활상의 효용성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 문화에 있어서 우표나 수석(壽石), 또는 고화폐가 그러하듯이 그 자체로는 효용성이 거의 없어서 처음엔 그다지 고가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을 구입하려는 사람이 자꾸만 많은 대가를 치러 왔기 때문에 점차 값이 올라갔고 값이 올라갔기 때문에 그것의 입수가 소유자의 위신과 구매욕을 높여준 것이다.


서구식 문명사회에서의 경쟁에서 여러 가지 재화 용재를 차례로 돌려가며 과시 경쟁을 하듯이 쾨키우틀들은 매트ㆍ삼태기ㆍ요트ㆍ구리판 등을 차례로 돌려가며 과시 경쟁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처음으로 듣는 사람이라면 구리판 가격의 형성이 흡사 현대 사회의 경제 제도에서의 경매와 같아서 사려는 사람은 싸게 사고 싶어도 팔려는 이가 더욱 높은 값을 부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비싼 값으로 사는 것으로 오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놀라지 말라! 팔려는 사람인 수장(首長)이 어느 정도의 대가를 받기로 하여 매우 만족하게 생각하고 구리판을 넘겨주려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려는 이는 팔려는 이를 보고 비웃으며

“수장, 어째서 그것으로 된다고 말하는가? 그대는 너무나 성급하게 거래를 마치려고 한다. 수장, 너는 나를 매우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군.”


하면서 훨씬 더 많은 값을 치러 준다는 것이다(191 쪽). 구리판 값이 점점 더 올라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대수장(大首長)끼리의 경쟁에서는 이 문화의 진수(眞髓)인 무지막지함과 맞겨루기가 유감없이 발휘된다.”고 베네딕트는 쓰고 있다.


그러나 마빈 해리스처럼 그들을 미치광이 과대망상자라고 매도하면서 가치관적 비판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러한 심리의 배후를 탐색해야 한다.


[이상한 결혼식]

콰키우틀의 과시욕은 재화를 통해서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결혼까지도 자기의 사회적 우월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곧 자기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상상 이상외 방식의 결혼을 이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결혼을 통해 맞이한 신부는 적당한 시기에 그의 부모로부터 사회적 신분 일부를 상속받아 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분은 그의 남편의 지위를 더욱 높여주고 다양화시킨다.


물론 정략결혼은 콰키우틀에게만 해당되는 관습은 아니지만, 우리가 괴이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콰키우틀의 경우에는 심지어 딸도 없는 수장에게 사위가 생기는 괴변이 태연히 일어난다는 점이다.


수장의 특권적 지위나 명예를 상속받고 싶어 하는 상류층의 자제는 수장의 신체의 일부―예를 들어 그의 [왼발], 또는 [오른손] 등― 를 신부로 상정하고 그 손발과 결혼을 하는데 모든 의식을 정상적인 남녀 간의 결혼식과 똑같이 거행하며 이를 통해 수장의 특권이 사위에게 양도된다는 것이다.


❸허영과 거짓 우월

①거짓 우월이 조작되는 이유

①왓슨과 크릭은 윌킨스가 몰래 훔쳐다가 보여준, 어렵게 만들었던 프랭클린 로잘린드의 최신 실험 자료를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이용해 논문을 발표해 결국 노벨상까지 탔다. 왜 그랬을까? 노벨상의 상금이 필요했는가?


인기 연예인이나 선수들은 왜 인터넷 등에서의 악성 댓글에 의한 비난으로 상처를 받고 사기가 저하되거나 때로는 자살을 하는가? 대중 앞에서 자존심이 훼손될 때 사람들은 특히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껴 분노한다. 왜 그러한가?


지금까지의 고찰로서 독자들이 인간의 의지가 “자기를 상대적으로 우월하게 드러내 보이려는 의도”라는 사실의 일단은 부인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제시 본성이 남녀노소 동서고금의 인간들 모두에게 똑같은 강도와 형태로서 무차별하게 두루 미치는 것은 아니다.


제시 본성은 모든 생명체의 의지임에도 불구하고 동물에게서는 우월성의 의식이 인간처럼 명료하지 않다. 이는 비단 동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유아나 지적 지체아에게서도 높은 수준의 가치관에 의한 제시 행위는 발견되지 않음이 보통이다.


제시의〘상대성〙과〘우월성〙등의 소인(素因)은 생물의 본성으로서, 선천적으로 갖춘 채로 탄생하지만, 의식성장의 단계〘의식의 체류 단계〙*나 문화의 경향에 따라서 발현에 차이가 있게 되며 개체에 따라서는 그 일부의 발현이 정체, 또는 억제되는 수도 있다.


모든 생물 개체의 탄생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유일한 실리(實利)라고 믿는 바와 같이⎯ 신체적 생존을 지향하지만, 개체의 [의식이 발전해 나감에 따라서] 신체적 생존에만 머물지 않고 그 이상의 상태로 나아가게 되며 그때 비로소 우리의 논의인 제시 본성적 특성이 강하게 발현된다.


②명예심[名譽心]

필자가 인간의 심성을 제시 본성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이 본성이 거의 모든 인간의 핵심적 성격의 자리에 놓여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들이, 인간의 행동 가운데에서 제시 본성적 현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고 믿어지는 사례를 발견하고 필자의 주장에 의혹을 품고 있더라도 일단 인내심을 갖고 이 책을 끝까지 읽어 보시기 바란다. 그러면 의혹의 대부분은 풀리게 되리라고 믿는 바이다.


인간은 왜 명예심을 왜 추구하는가? 분명히 인간은 우월을 추구한다. 문제는 인간은 우월함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제시의 한 조건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때로 우월함이 없는 데도 우월한 듯이 보이고자 하는 가장(假裝)의 우월을 제시하는 일이 있다. 우리는 이를 허영(虛榮)이라고 부른다. 곧 있지도 않은 우월을 조작하거나 가장하여 영예를 얻으려는 망상이다.


③정신분석 학파의 심리학자인 머레이의 주장

정신분석학파의 학자인 머레이(H.A.Murray)가 제시하는 요구의 개념의 하나인 [성취 욕구(N Achievement)]라는 것이 아들러의 견해와 비슷하면서도 특색 있는 이론으로 경청할 만하다고 하겠다.


“어려운 것을 달성하고자 한다. 물체ㆍ인간 관념을 가능한 한 신속하고 독립적으로 숙달하고 조작 조직하려 한다. 장애를 극복하고 높은 목표에 도달코자 한다. 자신을 개선하고 탁월케 한다. 경쟁하고 타인을 누른다*.


❰성격심리학❱ L.A. 셀리 D.J 지글러 저 이훈구 역 법문사 1983. 3.30. 188~189


이와 같은 성취동기에 관해서는 매클리랜드(David C. McClelland)에 의해 광범한 연구가 시도되었는데 그가 내린 결론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에 의해 세워진 가설, 즉 기업가는 이윤 동기에 의해서 활동한다는 가정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기업가들은 이윤 동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취에의 욕망에 동기화되어 있다. 그들이 이윤이나 개인적 소득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이 그들의 능력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믿어지는 척도이기 때문일 뿐이라는 것이다.


기업가의 기업 활동 동기가 궁극적으로 이윤 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윤의 확보가 능력의 척도로 여겨지기 때문에 금전의 축적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다는 매클리랜드의 결론은, 이윤 추구 그 자체가 기업가의 궁극적인 동기라고 믿는 경제학자들의 상식적이고 평범한 견해보다는 분명히 본질에 진일보한 주장임을 필자는 동의한다.


그러나 기업가의 기업 활동의 궁극적인 동기가 오직 성취라고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연 이의를 제기하는 바이다. 요사이 광범위하게 회자되고 있는 성취동기의 개념에도 역시 아들러의 우월에의 의지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궁극적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필자는 성취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그 뒤에 다른 이유가 숨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자기 제시에서의 우월감 추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성취 그 자체가 아니라 성취를 이룩해 낸 자기 자신에 대한 우월감의 의식에 따르는 도취감이나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는 제시 본성 자체에 있다. 기업가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기업 활동을 하지만 그들의 업적을 단지 성취시키는 것에만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능력의 우수성을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내 보여 과시하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설명하는 데에는 [우월성의 의지]나 [성취 욕구]보다는 머레이의 또 하나의 본능 개념인 [과시 욕구(N Exhibition)]가 더 적합한 개념이라 하겠다. 이 개념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남에게 인상을 주고자 한다. 남이 자기를 보고 듣게 하려 한다. 타인을 흥분ㆍ매혹ㆍ즐겁게 해주고 충격을 주고 웃긴다. 매너리즘 동작ㆍ준엄한 연설로서 주목을 끌며 대화를 독점한다.”


이 설명은 제시 본성의 개념과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행동의 근원을 탐색하기보다는 그 현상만을 피상적으로 열거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뿐만 아니라 이 항목을 근원적으로 추적해 나가지 않았다.


그 자신의 고안인 TㆍAㆍT 검사를 활용하여 신중하게 선별한 성취 욕구와 과시 욕구는 그가 심리 발생적 욕구라고 명명한 28종의 욕구 목록 가운데 두 항목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욕구들은 일목요연한 체계에 수용되어 있지 않고 산만하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그는 아마도 이 개념이 인성의 극히 적은 일부라고 밖에 생각지 않았던 것이며 체계적으로 조직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성취동기가 단지 성취 그 자체에 있는가, 제시 본성에 있는가의 여부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실험을 예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지능ㆍ학식ㆍ기타 개인의 우열을 세밀히 파악할 수 있도록 작성된 그리 쉽지 않은 문제의 시험지를 준비하여 피험자에게 나누어 준다. 그런 뒤


ⓐ자기 자신의 문제 해결 능력을 스스로 점검한 뒤 태워 없애 버리기로 한다.

ⓑ그 결과를 동료ㆍ부모ㆍ이성의 친구 등 친근한 동료들에게 공개하기로 한다.


ⓐ번은 그 자신의 성취 가능성을 알아내기 위해서 시행하는 테스트이다. 거기에 대해 ⓑ번은 그의 능력을 남들, 특히 가까운 남들에게 제시하기 위해 시행하는 테스트이다.


이 두 경우에 피험자들은 과연 어느 쪽의 시험에 더 열의를 갖겠는가? 두 문제지 가운데 열의를 더욱 강하게 경주하는 쪽이 그의 궁극적인 의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실험의 결과가 성취동기를 지지할 것인가, 제시 본성을 지지할 것인가는 실험을 실행하기 전에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대다수의 피험자가 ⓑ번의 문제를 푸는 데 더욱 심혈을 기울이리라고 단언한다.


폭정을 일삼는 중국 고대 진(秦) 제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봉기한 초나라의 장수 항우(項羽)는 일이 성공하자 고향에 돌아가 그가 이룩한 업적을 과시하고 싶었다. 그는 자기가 이룩한 출세를 과시하지 못하는 것은 [의금야행(衣錦夜行)*]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다는 뜻의 이 낱말은 뒤에 [금의야행(錦衣 夜行)]으로 바뀌어 쓰이고 있다. 금의환향(錦衣還鄕)과 같은 뜻이다.


생물의 학명에 붙는 발견자의 이름은 하나의 참고 사항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종의 생물을 발견하는 사람들은 참고 사항으로 붙이는 학명이지만 이는 그 발견자에게 주는 영예이다. 영광이란 무엇인가? 돈이나 지위 등 현실사회에서 유용한 실질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영광을 매우 귀중하게 여기는데 그들은 영광이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영광은 돈인가? 영광은 지위인가? 영광은 과연 무엇인가? 명예가 무의미한 것이라면 왜 이미 사망한 임금을 추존하는가? 주나라의 서백 창ㆍ조선조의 장조{사도세자} 등은 뒤에 추존된 인물이다. 사후 추존은 한자문화권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생의 무대에서 이미 떠난 사람들을 추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➃빈 이름{허명(虛名)}

이처럼 인간이 추구하는바 우월이 실질적인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시 본성의 한 조건으로써 추구된다는 사실은, 우월을 진정한 실력에 의해서 성취하려 하지 않고 공허한 실력을 충실한 듯이 드러내 보이려는 허위의 우월 제시[빈 이름{허명(虛名)} 심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인간에게는 분명히 내용상으로는 우월하지 않으면서도 우월한 듯이 가장(假裝)하려는 행태가 있다. 필자는 [허명(虛名)]이라는 낱말이 이런 의미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명은 우월을 그 자체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시 본성의 한 조건으로써 추구하려는 것이다.


명예는 제시 내용의 우수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된 결과로 부여된 사회의 상찬이기 때문에 참된 명예는 실질적으로 우수한 내용의 대상에 주어져야 할 것이며 인격에 따라서는 우월 제시{과시}와 무관하게 오직 가치의 추구만을 지향해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일도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제시 본성이 추구하고자 하는 개체의 목적 대부분이, 우수한 내용의 함양(또는 가치 추구)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상대방에게 드러내 보이려는 데에 있기 때문에 내용의 실질이 우월하지 못하더라도 우월하게 보이도록 조작해서라도 이를 드러내 보이려는 위선적(僞善的) 행위가 횡행하는 것이다.


선수들이 경기에 참여하는 것은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함인가? 아니다. 그들은 경기에 참여하지 않으면 건강이 손상되어 다른 어떤 목표의 달성이 어려운 나약한 사람들이 아니라 건강이 아주 양호하고 힘에 넘친 사람들 가운데에서 가려 뽑힌 가장 건강한 사람들이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신체의 각 기능의 우월함을 과시하기에 자신 있는 전문가, 소위 선수들이다.


그들의 직접 목표는 건강의 증진이 아니라 오직 승리라는 명예를 얻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건강이 다소간 손상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승리하면 그는 기쁨에 겨워 뛸 듯이 좋아하는 것이지만 패배하면 비애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 비애는 결코 건강의 악화가 확인되거나 예상되기 때문에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패배감, 바꿔 말하면 나와 남에 대한 열등 제시의 확인, 또는 예상에 따르는 반응일 뿐이다. 아마도 독자에 따라서는 이 견해를 반박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우수 선수들에 대한 포상이나 명예의 부여는 결과적으로 대중들에게 경기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킴으로써 경기 보급에 효과를 발휘하여 참여 인원을 늘리고 결국 국민 건강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거나 경기에 걸린 상금을 얻으려는 데에 있다고. 이러한 주장은 결과적으로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운동선수들이 명예를 탐하지 않고 다만 승리라는 결과만을 얻기 위해 경기를 한다면, 그래서 진정한 승패만이 관심사라면 약물의 힘을 이용하거나 반칙을 일삼는 불공정한 일이 왜 그렇게 빈번히 발생하겠는가? 우승 상금이나 명예를 이용해 돈을 벌기 위해서일까?


이러한 사례가 비단 운동선수들에게서만 나타나는가? 학계 ∙ 예술계 ∙ 기타 모든 분야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은 허명의 유혹, 곧 거짓으로라도 자기를 우월하게 드러내 보이려는 명예심의 발로, 그 이상도 이하 ―그로 인한 재화 상의 이득을 노리는 수도 적지 않을 것이긴 하다― 도 아니다.


이는 인간의 심성이 가치의 창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우월하게 드러내 보이려는 것이며 제시가 가치 창출의 부수적인 행위가 아니라 반대로 가치 창출이 제시의 우월 달성의 한 방편이라고 보는 이유이다.


대중의 건강 증진이라는 본봉보다도 명예 획득이라는 상여금과 진짜 상금에 더 큰 매력을 느껴서 운동선수가 되려는 꿈을 키워나가려 할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의 관심 집중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회 가치관[ → 5: Ⅱ]에 있어서의 우월성을 형성시키는 중요한 요인이어서 대중의 운동 경기 열의를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결과 사회 구성원들의 건강 증진이 촉진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다. 운동 경기의 더욱 핵심적인 직접적 이유는 과시욕 발산을 위한 제도적 장치라는 점이다.


만약에 도덕적 양심의 소유자라면 자기의 제시 본성 때문이 아니라 남들에게 불쾌감이라는 폐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응당 도덕적으로 부당한 행위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며 또한 혐오나 불쾌감이 촉발될 행위는 그것이 정당한 행위가 아니라면 부끄러움 때문에라도 은폐하고자 할 것임에 틀림없으리라.


그것은 심리적 현상일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합당한 행위 ⎯비록 가언 명법적이어서 진정한 도덕적 행위가 되지는 않지만⎯ 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혀 도덕적인 의식에 의함이 없는, 그래서 그의 우월함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는 가상적인 우위를 조작해서라도 과시하고자 하는 자라도 치욕적인 사태에 봉착하면 이러한 사태는 은폐하려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은폐는 오직 그의 열등성을 감춤으로써 제시 본성에 의한 부정적 상태를 방지하려는 소극적인 행태일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그의 열등함을 은폐하려는 맹렬성은 과시욕보다도 강하고 집요한 바가 있다. 물론 이 두 행위는 표리일체를 이루고 있어서 은폐는 소극적 행동이요, 과시가 그 적극적 행동이므로 이를 분리시켜 고찰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울 정도이지만 때로는 비밀 탐지나 폭로자를 살해하는 일이 역사상에 종종 있는 것은 자신의 비위나 치부(恥部)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는 대개 자기의 우월 제시에 타격이 될 비밀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어서 직접적으로 제시 본성에 연결되는 것이지만 우월 제시 그 자체를 위해서라면 살해까지 하는 일은 거의 없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아무리 열등하고 무능하더라도 이 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은폐욕과 제시욕의 그 어느 쪽이 강렬하거나 간에 결국은 우월성이 그 자체 목적이라기보다는 제시를 위한 한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는 점이 중요한 일이다.


명예는 제시 내용의 우수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된 결과로 부여된 사회의 상찬이기 때문에 참된 명예는 실질적으로 우수한 내용의 대상에 주어져야 할 것이며 인격에 따라서는 우월 제시{과시}와 무관하게 오직 가치의 추구만을 지향해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일도 많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제시 본성이 추구하고자 하는 개체의 목적 대부분이, 우수한 내용의 함양(또는 가치 추구)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상대방에게 드러내 보이려는 데에 있기에 내용의 실질이 우월하지 못하더라도 우월하게 보이도록 조작해서라도 이를 드러내 보이려는 위선적(僞善的) 행위가 횡행하는 것이다.


내실 없는 명예는 아무리 유명해도 허명일 뿐이다. 우월을 진정한 실력에 의해서 성취하려 하지 않고 공허한 실력을 충실한 듯이 드러내 보이려는 [허명(虛名)]을 탐하는 심리를 살펴보자.


이는 대개 자기의 우월 제시에 타격이 될 비밀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어서 직접적으로 제시 본성에 연결되는 것이지만 우월 제시 그 자체를 위해서일 뿐이라면 살해까지 하는 일은 거의 없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이 점은 여기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은폐욕과 제시욕의 그 어느 쪽이 강렬하거나 간에 결국은 우월성이 그 자체 목적이라기보다는 제시를 위한 한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는 점이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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