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침실과 감격의 옷방
회사를 다니며 내가 만들어 썼던 단어 중, 특히나 주변에서 열광한 단어가 있다.
바로
“감사바구니”.
실제로 어디선가 쓰이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만 여기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했다. 감사한 마음을 1개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바구니에 잔뜩 담고, 진심으로 감사해하며 당신에게 이 감사바구니를 직접 드리는 장면을 뜻한다. 그래서 “감사합니다.”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감사감사 왕감사바구니.”를 말했다. (물론 친한 동료들 한정이다. 엄숙한 회의 시간에는 당연히 사회화된 가면을 썼다.)
“아까 말한 거 보내드릴게요.”
“아이고 감사바구니.”
“이렇게 해보는 거 어때요?”
“흑흑 완전 감동바구니 감사바구니.”
의례적일 수 있는 감사 인사가 소소한 재미 요소로 퍼지며 너도나도 감사바구니를 외쳤다. 그 위력은 매우 대단하여 동료들의 주변 지인들까지도 감사바구니에 중독되었다. 특히 교수님이신 친구의 조금 무뚝뚝한 큰 언니가 감사바구니에 빠졌다는 얘기에 크게 웃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일상의 모든 것이 소중해진다. 감사를 전할 수 있는 지금이 있어서 감사하고, 나의 감사를 받아주는 상대가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하다.
감사하게도 무탈히 흘러간 오늘을 마무리하며 다가오는 내일을 또 반갑게 맞이하는 곳, 바로 우리의 침실이다. 최대한 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커다란 침대를 배치했다. 생각보다 더 웅대한 가로180*세로 200의 라지 킹 사이즈다. 다채로운 컬러가 조합된 다른 공간과는 달리 모든 가구와 이불 커버까지 깨끗한 화이트 색상으로 맞췄다. 편안한 향기가 느껴지는 라벤더 컬러의 소품으로 포인트를 더해 가장 안락한 공간을 완성했다.
[Hello Next : 오늘에 대해 감사하며 내일을 향해 힘껏 돌진하라.]
우선 옷만 둘 수 있는 방이 생겼다는 것에 감사바구니를 드립니다.
독립하기 전에는 내 방 안에 있는 붙박이장과 서랍에 옷들을 간신히 꾸겨 넣었다. 깔끔하게 정리하며 사는 편이 아니라 큰 불편 없이 잘 살았다. 신혼집으로 입주하며 버릴 옷은 모두 버리고 괜찮은 옷 중 일부는 동생에게 뺏기며 저절로 1차 정리가 되었다. 패션에 크게 관심 없는 L은 원체 옷이 많지 않다. 나와 맞춘 커플템과 기념일마다 내가 사준 옷들이 대부분이다.
한때 나는 플로럴한 패턴과 딱 붙고 짧은 치마를 좋아했다. 어느 순간부터 불편함을 감수하는 화려함보다는 편하면서도 쉽게 질리지 않는 모던한 스타일로 변했다. 아무래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외모를 가꾸는 집착이 거의 사라지기도 했다. 외모보다 더 중요한 다른 것들이 숨 쉴 틈없이 몰려들었으니까.
아무튼 우리 둘은 깔끔하고 단정한 패션을 선호한다. 보통 드레스룸에는 시스템 행거를 맞추곤 하지만 예산을 좀 더 아끼고 싶었다.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보며 조립 행거를 찾았다. 말 그대로 조립을 우리가 직접 하니 인건비가 줄어드는 만큼 가격이 저렴해진다.
이제 과정은 간단하다. 방의 사이즈를 재고, 적합한 제품을 대강 고르고, 배치를 고민하고, 원하는 구성의 제품을 확실히 골라 결제하고, 조립하면 끝!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처음이라는 점. 옷방으로 점찍은 방은 3개의 방 중 제일 작았다. 다행히 옷이 그렇게까지 많은 편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최대한 이 방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플라스틱 서랍과 블라인드 등까지 추가하면 아무리 저렴한 조립 행거일지라도 총 단가가 꽤 높게 올라간다. 며칠 동안 머리를 굴리며 결정한 최적화된 구조로 2세트를 구매했다. 진짜 난관은 제품이 오고 나서부터다. 우리 둘 다 이렇게 구성이 많은 무언가를 조립해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배송된 부품을 찾지 못해 판매자 탓을 하며 이틀을 날렸다. ‘날린다’라는 표현하는 이유는, 하필 휴일이 껴있던터라 바로 판매처에 연락할 수도 없고, 행거가 없으니 옷을 정리할 수가 없고, 결국 집에 있는 내내 어수선한 옷방을 내버려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정리하고 싶은 나의 계획이 이렇게 틀어지다니! 정말 화가 난다! 이틀 후 컴플레인을 걸기 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번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뿔싸.
여러 개의 판 사이에 부품들이 있었다. 누락된 부품은 단 하나도 없었다.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열부터 바짝 올린 나 자신을 진심으로 반성했다. 왜 이걸 못 봤을까? 설명서에도 부품이 안에 다 있다고 친절히 쓰여 있는데 대체 왜? 앞으로 더 차분한 태도를 가져보자며 조립을 시작했다. 내가 만든 오해가 무고한 상대방에게 표출되지 않고 나만의 성찰 해프닝으로 끝나 참 다행이었다.
2세트의 행거는 이틀에 걸쳐 완성되었다. 크기도 크고 높이도 높고, 그래서 부품도 당연히 많으니 설명서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부품의 모양이 다 똑같은 것만 같았지만, 몇 번의 실수 끝에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홧김에 대충 뚝딱 만들어버리고 싶으나 옷 걸다가 무너지면 끝장나니 그럴 수도 없고 말이야. 또 꽉꽉 조여야 하니 힘도 빡빡 들어갔다. 행거의 상단 부분은 의자 위에 올라가서 위험하지 않게 시끄럽지도 않게 긴장 속에서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
악으로 깡으로 졸음을 이겨내며 겨우 1세트를 완성하니 새벽이 되었다. 빨리 씻고 일어나 다음날이 되어서야 남은 1세트를 힘겹게 조립했다. 2세트 합쳐서 대략 6~7시간 넘게 소요된 것 같다. 왜 그렇게까지 오래 걸렸는지 묻는다면,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경험도 체력도 없는 둘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을 치우고 치우다가 잠도 못 자고 또 새벽까지 행거를 조립하였으니. 그리고 다짐했다. 돈을 열심히 벌어서 다음 번엔 꼭 시스템 행거를 설치하자!
이렇게 완성된 행거는 큰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깔끔하게 옷을 정리해주었다. 최대한 많은 옷을 걸어두고 싶어 옷걸이도 고심해서 골랐다. 얇지만 튼튼하면서도 옷이 미끄러지지 않는 제품으로. 옷이 없는 편이라 생각했는데도 둘이 합치니 꽤 많아져서 대략 200개가 넘는 옷걸이와 바지걸이를 구매했다. 계절이 다른 옷들은 리빙박스와 의류지퍼백 등에 넣어두고 있다.
또한 처음부터 행거의 위치를 조금 빠듯하게 배치한 덕분에 이후 의류 스타일러와 팬트리용 수납 선반, 김치냉장고까지 옷방에 모두 넣을 수 있었다. 별도의 베란다가 없어 옷방이 다용도실의 역할까지 함께 해주고 있다. 공간이 넓지도 않은데 또 물건들로 가득 차있다보니 지금 늘어놓은 것들의 이름만 보아도 답답함이 느껴진다. 하여 꽉 막힌 분위기를 최대한 환기하고자 산뜻한 감성 소품을 활용했다. 곳곳에 살랑이는 바람을 담은 그림, 바다의 윤슬을 찍은 쉬폰 커튼, 역동적인 파도가 치는 러그를 배치했다.
앞선 고된 노동으로 완성된 행거는 비록 문은 없지만, 블라인드를 내릴 수 있어 보다 깔끔하게 정돈할 수 있다. 옷방 내 2개의 가전인 스타일러와 김치 냉장고는 브랜드는 다르지만 실버 그레이톤으로 컬러를 통일하여 갑갑한 심리적 온도를 쿨하게 낮췄다.
고로 옷방은 우리의 겉모습을 예쁘게 단장해줄 뿐만 아니라, 집에 필요한 잡동사니까지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감격스러운 공간이다.
[Fancy Zone : 결정적 매력의 시각화를 완성하는 백스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