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다. 어떤 대출은 복지 상품이라는 것을.
"집 사고 뭐 그러는 거 관심이 있어요?"
언제였을까. 직장인이었던 어느 날 점심을 먹으며 누군가 물었다. 아마도 별다른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 속 나는 그저 부모님과 사는 해맑은 캥거루족으로 보였을 테니. 그리고 조금 분하지만 반전 없이 모두 사실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해가 바뀌기 전, 그 질문과 모든 것이 반대되는 상황이 펼쳐졌다. 부동산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내 집을 마련하여 신혼집으로 독립했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 매일의 출퇴근 피로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핑계를 대며 마냥 외면했다. 마치 때가 되면 내 집이 알아서 나타나겠거니 하면서. 언젠가 결혼은 하려나? 그것도 언젠가는 고민을 해봐야겠다. 그런데 지금은 피곤하니까 조금 이따가 생각해 봐야지. 곧, 언젠가는. 눈 앞에서 무한 증식하는 일거리부터 우선 해결하고 그 다음에. 그래서 대체 언제? 아니 지금 이거 해야 돼서 바쁘다니까! 말 걸지마!
진정 중요한 것은 내 삶의 계획이지만, 나 홀로 내면의 싸움은 언제나 현재에 파묻힌 채로 끝이 났다.
공공기관에서 이제 막 대리가 된 L, 스타트업에서 3년을 채우고 퇴사한 나. 각자 모아둔 현금이 적당히 있었으나 둘은 만 28세의 사회초년생일 뿐이다. 그 언젠가는 함께 독립을 하고 싶다. 그럼 그게 결혼이려나. 결혼하면 같이 살 집이 있어야 할 텐데 어쩌지. 아파트? 빌라?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까?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뜨거운 젊음의 열정이 있다. 건장한 신체와 멈추지 않는 노력으로 지금처럼만 살아간다면 뭘 하든 소득은 계속해서 높아질 거다. 그 말은 즉, 일정 수준의 꽤 큰 돈을 빌려도 현실적으로 충분히 갚아갈 수 있다는 것. 고로 좋은 대출을 찾고 이를 통해 우선적으로 집을 사서 자산을 굴려 나가자!
그렇다면 집을 사기 위한 좋은 대출이란 무엇인가. 대표적으로 정부가 국민들의 내집 마련을 위해 복지 정책으로써 예산을 편성한 주택담보대출을 말한다. 이러한 대출은 금리가 낮고 상환 기간이 길다. 즉, 이자도 적게 받으면서 아주 넉넉한 시간 동안 집을 살 돈을 빌려준다.
우리는 정책대출 중 디딤돌대출과 특례보금자리론을 실행했다.(2023.7.기준)
1) 실거주 목적으로
2)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입하려는
3) 신혼부부인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출이었다.
“그럼 몇 년동안 갚아야 돼?”
“둘다 상환기간이 길어서 좋아. 디딤돌 대출은 30년, 특례 보금자리론은 40년이야.”
“뭐라고????”
L의 차분한 목소리에 오히려 난 패닉에 빠졌다. 내가 아직 30년을 다 못살았는데, 30년동안 돈을 갚아야 한다고? 이거 형벌아니야?
“그렇게까지 수십년동안 빚지고 사는 게 맞아? 진짜 괜찮은거야?”
“음..”
지금부터 경영학도이자 4년의 과외 경력을 가진 L의 족집게 특강이 시작됩니다.
우선 [갚는다]라는 단어의 압박에서 벗어나야 돼.
이건 신용 대출이 아니라 주택 대출이야. 우리가 살아가는 평생동안 필수적으로 ‘주거 비용’이 발생해. 누가 어디에 어떻게 살건 어차피 돈이 필요하다는 뜻이지.
화폐 가치는 계속해서 떨어진다는 말 많이 들어 봤지? 우리 초등학생 때 김밥 한 줄이 1,000원이었는데 지금은 4,000원이잖아. 엊그제 먹은 참치치즈김밥은 이제 6,000원이고. 집값도 마찬가지야. 물론 지역에 따라 거품 등의 이유로 등락이 발생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앞으로도 집값은 계속 올라갈 거야.
우리 둘이서 몇 년, 몇 십년 동안 돈을 모아 집을 산다고 해보자. 그 기간동안 당연히 집값도 같이 올라갈텐데 대체 언제까지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할지 예측할 수가 없어.
그래서 대출을 ‘활용’해서 돈을 미리 끌어온 다음에 현재의 가격대로 집을 사는 거야. 이후에 우리집 가격이 계속 올라가면 제일 좋겠지? 시세 차익을 얻고 더 높은 가격대의 집으로 갈아탈 수 있으니까. 사실 그게 목표긴 한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그 집에서 같이 재밌게 살면 돼.
제일 중요한 건 대출의 상환방식이야. 원리금은 원금과 이자를 합한 금액을 뜻하는데, 매달 내야 하니 전체 기간은 물론이고 월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잘 고려해야 돼. 우리가 받을 대출은 시중 은행에서는 찾을 수 없는 낮은 고정 금리야. 여기에 우리한테 유리한 ‘체증식 분할상환방식’을 적용할 수 있어.
발음부터 좀 어렵지? 체증식 분할상환방식. 상환액 즉 갚아야 할 돈이 점점 늘어나는 방식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원리금이 늘어나는 방식이라 초기에는 적은 금액을 낼 수 있어. 우리처럼 앞으로 더 연봉이 올라가는 사회 초년생한테 정말 좋은 선택지야.
아까 30년, 40년이 너무 긴 것 같아 걱정했었지? 그 긴 기간 동안 낮은 금리로 원리금을 나누기 때문에 아무리 커지더라도 달마다 체감하는 부담은 높지 않을 거야. 고정 금리는 우리가 내야 할 돈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서 자금 계획을 관리할 때 편리해. 무엇보다 나는 지금 재직 중인 공공기관에서 정년까지 있을 테니 내 월급에서만 충당해도 괜찮은 비중이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여기에 마지막으로 ‘장기주택저당차입금 이자상환액 소득공제’가 있어. 왠지 이름이 좀 무시무시하지? 이자 상환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데, 우리에겐 예상치 못한 선물이야.
디딤돌 대출과 특례 보금자리론은 이자 상환액에 대해서 요건 충족 시 연간 최대 1,800만원까지 소득 공제를 받을 수 있어. 이 점까지 고려하면 비슷한 컨디션의 집을 대출 없이 더 적은 비용의 월세, 전세로 살 때와 실질적인 부담이 비슷하면서 우리만의 자가를 소유할 수 있지. 지금이야. 지금이 바로 우리의 기회야.”
끄덕 끄덕.
눈을 감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몽땅 마셨다.
남은 얼음들을 와그작 와그작 깨물며 눈을 떴다.
쓰담 쓰담.
기특한 L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자 달려 보자. 미지의 우리집을 사냥하러!
혹시나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싶어 강조하자면, 아무리 금리가 낮은 정부 정책 대출이어도 그것만으로는 집을 살 수 없다. 당연히 일정 수준의 현금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추가적인 신용대출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게 정확히 얼마일지는 각자의 상황, 주택 가격 등에 따라 모두 다르다. 때문에 결국 직접! 알아봐야 한다.
또한 주택 가격뿐만 아니라 부동산 복비부터 시작해서 법무사 등기비용, 주택 취득세, 이사 비용, 가전/가구 구매 등등 나갈 돈이 매우 미친 듯이 쌓여있다. 앞으로 달마다 나갈 대출 원리금과 아파트 관리비, 생활비, 기타 비용 등 하나하나 따져봐야 한다. 나처럼 귀여운 캥거루로 오마니의 품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편하게만 살다가 독립했다면 정말 기절초풍의 일들이다. 그럼에도 꼭 말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
"대충 쓱 보니까 아마도 안 될 것 같군. 돈 빌리는 것도 싫고 복잡하고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이렇게 멈추면 안 된다. 진짜 되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직접 알아봐야 한다. 새로운 세상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단 말야!
이런 말들을 흘려라도 들으면 누군가에게 아주 유익한 인사이트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았다.
직접 옆에서 우리를 보던 L의 친한 형은 신혼집으로 전세를 알아보던 중 전략을 바꿔 아파트를 매매했다. 물론 디딤돌 대출은 여건상 받지 못했다. 하지만 월세/전세/매매와 정부의 정책 대출들을 비교해 보며 상황에 맞는 자금 흐름, 대출 등을 충분히 논의 후 그들의 목표를 달성했다.
이 세상에는 태초부터 돈이 많은 사람도 아주 많다. 그러나 내가 그렇지 않다면 웬만한 돈으로는 적당히 모아 집을 사는 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L은 뭐가 되었든 간에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만든 뒤 함께 즐겁게 먹고 살 ‘시작’을 하고 싶었다.
그리곤 영끌인 듯 영끌 맞는 그러나 세세하게 따져보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대출을 받아 먼저 자산을 확보하게 되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런 세계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자 그 요건들이 맞춰진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잡았다. 나와 같은 친구들아! 부동산 몰라도 지금부터 알면 된다! 우리에겐 가득한 열정바구니가 있지 않겠니? 후후. 계속 말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잊으면 안된다. 주택 가격에서 대출금의 비율은 영끌로 봐도 무방하지만, 좋은 대출을 찾았고, 요건을 맞추어 그 대출을 받았고, 앞으로도 원리금은 L의 월급만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