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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보 Apr 08. 2024

파리에서 생긴 일

산티아고 출발 이틀 전

   파리 몽파르나스역 주변의 호텔, 지금은 새벽 4시. 집을 나선 첫날이었던 어제 작은 일과 큰 일, 두 개의 일이 있었다. 열세 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내린 후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생긴 작은 일과 숙소를 찾으며 생긴 큰 일.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아무 생각 없이 앞사람을 따라간 것이 문제였다. 생각 없이 가다 내가 이른 곳은 공항의 출구가 아닌 비행기를 갈아타는 곳. 공항직원이 티켓을 제시하라고 해서 나는 내가 타고 온 비행기 티켓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직원은 이게 아니라고 하면서 영어와 불어를 섞어서 어디에 가느냐 등등을 묻고, 나는 어리둥절, 당황하며 서 있고. 입장하는 사람들의 흐름이 내 순서에서 갑자기 막혀버렸다. 잠시 후 뒤에 있던 사람이 이곳은 출구가 아니고 환승하는 곳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한참을 더 쩔쩔맬 뻔했다. 출구를 찾아 나오면서 든 생각. 아무 생각 없이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면 안 된다. 자기의 길이 어딘지 잘 살피면서 가야 한다. 삶도 마찬가지.

   공항을 빠져나와 예약했던 숙소로 향했다. 이번에는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도록 잘 살피면서. 파리북역에서 지하철 5호선으로 갈아타고 숙소가 있는 동네에서 정확히 내렸다. 공항에서의 일 때문에 지체된 탓에 예상보다 늦게, 어둑해서 도착했다. 그런데... 없다, 숙소가 없다. 주소는 일치했다. 이런 황당한 일이. 한참을 그 동네를 뱅글뱅글 돌았다. 그래도 없다. 예약한 사이트에 뒤져도 전화번호도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사기는 아닌데...

   파리의 변두리, 낯설고 어둑한 곳에서 시간은 벌써 열 시를 넘었고. 별 수 없이 그 동네의 호텔을 찾아 나섰다. 좀 걸으니 이비스호텔이 나왔다. 방이 있냐 물으니 직원은 '투데이? 콤플릿(complete)'이라며 이상하다는 듯 나를 본다. 구글지도에 십오 분 거리 안에 호텔이 몇 개 조회는 되지만, 빈 방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내일 기차를 타는 몽파르나스역에 가자. 큰 역이니까 호텔도 많을 것이고 빈 방도 있을 것이다.

   몽파르나스역 주변은 시내여서 과연 호텔도 많고 카페, 술집도 많았다. 그런데 호텔에 갔더니 빈 방이 없단다. 두 번째 호텔도 방이 없단다. 난감하구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침낭도 있고 판초우의도 있다. 밤공기가 쌀쌀하지만 아주 춥지는 않다. 여덟 시간만 버티면 된다. 역에서 노숙할 각오를 했다. 각오를 하고 들어간 세 번째 호텔에 마침 빈 방이 있었다. 그러나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다. 190유로, 순례길 여행에는 어울리지 않는 금액. 노숙을 할까 생각이 스쳤지만, 이제 시작인데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아 호텔에 묵기로 했다.

   더운물에 샤워를 하고 잠을 청했다. 비행기에서 긴 시간을 일부러 안 잤는데, 누워도 정신이 더 말똥해진다. 긴장을 해서겠지. 내일은 이 여행의 출발점인 생장까지 기차를 타고 다섯 시간을 또 가야 한다. 기차에서 잠이 오려나.


    산티아고 가는 길이 출발점에 서기도 전에 일이 많다. 이 여행은... 만만찮을 것 같은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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