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구하는 여행방법 - tripterian
채식요리자격증이 있는 변호사, 어느 지역을 가든 따뜻한 독립서점과 맛있는 채식식당을 찾는 그의 ‘몸은 가뿐하게, 마음은 충만하게’ 여행하는 방법
왜 채식인가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긴 뒤 맛있는 채식 한 끼로 충만한 식사를 한다. 배를 꺼트릴 겸 근처 책방에서 내 세상을 넓혀줄 책 한 두 권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상상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편해지는, 제 기준 가장 이상적인 여행일입니다.
새로운 곳을 갈 때마다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책방을 찾는 것은 책에 대한 오랜 짝사랑 때문이라고 치고, 어떻게 해서 이에 ‘채식 한 끼’가 더해진 것인지 기억을 되짚어 봅니다.
20대 초반에 공장식 축산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본 뒤 약 3년 가까이 페스코(생선은 먹되 육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의 일종)로 지낸 적이 있습니다. 이때 탐독한 채식 관련 각종 책들 속 강한 인상을 주었던 문장이 바로 ‘You are what you eat.’입니다. 직역하면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정도가 될 터인데, 하루 세끼 무엇을 먹을지는 각자의 가치관을 반영한 매 순간의 선택에 의해 정해질 뿐만 아니라, 각자가 먹은 음식은 몸 안으로 들어가 직접적으로 각자의 육체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장이었습니다.
패기 있게 시작한 채식실천이 대학원 입학과 사회생활 시작이라는 환경의 변화 속 예외와 예외를 거듭하며 흐지부지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 불편함 혹은 죄책감은 남아있는 채로 나름의 채식지향생활을 해왔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리듀스테리언(고기 소비를 최대한 지양)’ 혹은 ‘플렉시테리언(상황에 따라 채식, 육식을 병행)’ 용어도 존재하며, ‘고기 없는 월요일(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채식실천)’ 혹은 ‘주중 채식주의자(주말에만 육식을 하고, 주중에는 최대한 채식식단을 유지)와 같은 다양한 채식실천방식들이 존재합니다.
이에 착안하여, 평소에 여러 이유로 채식 실천을 못하더라도 적어도 출장이나 여행으로 새로운 장소에 갈 때 만이라도 맛있는 채식 한 끼를 찾아가는 즐거운 방식으로 최소한의 채식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트레벌테리언 travelterian’…
혹은 더 간단하게 ‘트립테리언 tripterian’ 이 어떨까요?
이전에도 새로운 곳에서는 무조건 그 동네의 작은 책방을 찾아다닌 저에게, 그 주변의 채식식당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구성하듯 내가 지금껏 읽은 책들이 나의 생각을 구성하기에, ‘여행지의 책방에서 나의 세상을 넓혀줄 책을 만나고 동네의 채식식당에서 세상에 조금 더 무해한 음식을 먹는 코스’는 환상의 조합을 이루어 저의 여행을 충만하게 해 주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기후’, ‘환경’ 혹은 ‘채식’ 코너가 없는 동네책방을 찾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채식위주의 식단이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기후위기라는 화두 속에서 무엇이라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책방지기가 어떤 책들을 권하는지 궁금하다면, 제 조촐한 가이드를 참고하여 책과 채식 식사를 곁들인 풍성하고 맛있는 여행을 떠나보길 권합니다.
이들 외에도 여행지에서 조용한 곳을 찾는 사람에게, 여행지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여행지의 여운을 조금 더 길게 느끼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몸은 가뿐하게 마음은 충만하게 여행하는 최고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제 마음 한켠에 남아 있는 그 문장에, 단어 하나를 덧붙이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You are what you eat and read.’ (당신이 먹고 읽는 것이 곧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