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큰아이와 집 뒤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아카시아들이 둘레길 곳곳에 하얗게 말라서 흩뿌려져 있네요. 벌써 시간이 이리 지났나봅니다. 아카시아 향이 산을 덮을 적에 왔었으면 더 좋았을뗀데요 아쉬었습니다.
아침공기는 쌀쌀했지만 맑았습니다.까치소리, 까마귀소리, 참새소리, 부엉이소리들과 함께 걷는 맛은 새로웠습니다.
"아빠. 음악 들으며 가면 안돼?,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들으며 가자"
"좋은생각인데. 그러면 저 새소리 들을 수가 없을 것 같아. 흩뿌려진 아카시아 밟는 소리도 듣지 못할 껄. 바위와 서현이 발소리도 듣지 못할꺼야. 새들이 어디서 울고 지저기는지 알아보는 재미를 찾아보자. 집에 가서 들어도 되지 않을까?"
"그래. 그러자"
아이는 쉽게 포기합니다. 대신 소리를 찾아봅니다. 자기 발이 바위와 부딛히며 나는 소리,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옷이 내는 소리,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아이가 찾아내는 소리는 다양했습니다.
한 나무에서 올라온 아카시아 잎사귀들이 크기와 모양이 같지만 다릅니다. 어느 잎사귀는 자기의 존재를 과시하듯 큰 모습을 보이지만 어느 것은 앞선 것의 반에 반도 되지 못합니다. 그보다 더 작은 것들도 있네요. 아카시아 한 나무에서 게다가 한 줄기에서 뻗어나온 입사귀들이 각양각색 다양합니다.
"잎사귀들 모습과 크기가 다 다르네. 아빠는 다 똑같은줄 알았는데 말이야"
"맞아. 모두 다 다른 것 같아. 그렇게보니 신기해"
"그래. 크기와 모습과 색깔들이 다 다르지만 같이 어울려지내는 것 같아. 큰 아이는 작은 잎사귀들과 함께. 색깔이 진한 친구는 엷은 친구들과 함께. 다 다르지만 같은 아카시아 줄기에 더불어 사이좋게 지내는 것 같아. 서현이 친구들도 다 다르잖아? 남자아이들, 여자아이들, 키가 크고작은 친구들, 운동을 또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 수줍음이 많거나 괄괄한 친구들 모두 다 다르지만 같은 반 친구들이네. 잎사귀들이 너희 반 친구들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
아이가 이해했는지는 모릅니다. 아버지가 내게 이야기해주셨던 수많은 얘기들을 나이를 먹으며 하나씩 깨달아가듯 언젠가는 내 아이도 아빠의 소리를 알 날이 오겠죠. 굳이 오지 않아도 그만입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 그래"
둘레길에서 스치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이 시간에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소중하니까요. 상대방도 답례를 해주시네요. 뒤따르던 아이도 왜 하는지 모르고 인사를 합니다. 맞은편의 등산객도 인사를 나눠주십니다.
또 다른 등산객을 만나도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아이도 덩달아 인사를 건넵니다. 산을 내려올 때까지 먼저 인사를 해주시는 분은 없었는데요. 인사를 받지 않는 분들도 없었습니다.
'아빠는 왜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먼저 거는걸까? 굳이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야. 아빠땜에 나도 인사해야하잖아. 쑥쓰러운데'
아이마음의 소리가 들립니다.저도 그랬으니까요.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아이라 더 크게 들립니다. 세월이 지나면 알게 되겠죠. 몰라도 그만입니다. 아버지와 산에 다닐적에 아버지의 모습들을 아들인 저도 따라하고 있는데요. 그저 흉내만 내고 있습니다. 내 아이도 흉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랜만에 아이와 둘레길을 다녀온 일요일아침이었습니다.
아이와 많은 얘기를 나눈 아침이었습니다. 더 자주 시간을 보내야겠습니다. 혹여 아카이아향을 놓치지 않도록 말이죠.